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에서 자기를 위한 요리 미션에서 우승한 최강록 요리사.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에서 자기를 위한 요리 미션에서 우승한 최강록 요리사. /사진 넷플릭스

인공지능(AI)이 사람과 다름이 없어진다. 지능만 있는 게 아니다. 2024년과 202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비교 실태를 보면, 1년 사이 사람들이 AI와 정서적인 심리 상담을 하는 빈도가 최상위로, 급격히 늘었다. 심지어 인생의 방향을 같이 얘기하는 것도 최상위다. 정보 활용은 상대적으로 후순위다. 젊은이들이 AI로 타로 점을 많이 본다는데, AI가 ‘철학’도 넘보는 셈이다.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세상은 아마 일터에 제일 먼저 올 게다. 그런 미래에 일터는 어떤 분위기일까. 벌써 폭로, 편견, 조작 같은 AI의 횡포가 보인다. 생각해 보면, 그건 인간이 해 오던 행위다. AI가 학습했을 뿐이다. AI라는 박식한 도구가 만들 엄청난 효율성 앞에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소양을 AI에 학습시키는 숙제가 있다. AI 시대 리더는 일터의 문화를 위협하는 AI의 과학을 조율할 통찰이 필요하다. AI가 들려주지 않는 삶의 내러티브가 리더의 소통법이다. 

한태영 -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한태영 -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하늘은 왜 파란색일까. 공기와 먼지 입자가 겹쳐서 그렇게 보인다. 과학은 이렇게 들려주는데, 별로 재미없다. 태초의 스토리가 더 맛깔스럽게 귀에 붙는다. 신(神)이 물을 창조한 후에, 아래위로 물을 나누고 위의 물을 궁창이라고 했다. 하늘도 물 덩어리이니 푸르다는 거다. 하늘에서 비도 내려오니 피부로도 와닿는 얘기다. 

이런 내러티브는 비과학적이지만, 과학보다 상상력이 돋보인다. 과학은 어떤 논리를작은 요소로 쪼개서 일부분만 설명한다. 일상의 얘기가 더 작아지고, 삶의 넓은 지평을 해석하는 데 약한 것이다.

이미 인간처럼 마음을 가진 AI가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AI는 몸이 없다. 밥 짓는 냄새에서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AI에 ‘수고했다’는 건 확률적인 개념이고, 언어의 연결망이다. 과학처럼 말이다. 졸음을 쫓으며, 땀 흘리며 이룬 성과가 주는 성취감을 AI는 모른다. 몸의 수고와 결핍을 통해 삶이 성숙해 가는 것이 인간미다. 그래서 우리는 온몸으로 고난을 인내하며 버티는 사람의 얘기에 마음이 겸허해진다. 

어느 요리 대결 프로그램에서 ‘자기를 위한 요리를 만들라’는 최종 미션을 두고 두 요리사가 경쟁했다. 한 요리사가 내놓은 순댓국은 파인 다이닝 수준이었다. K-컬처가 뉴요커의 입맛을 끌고 있는 글로벌 감각을 보여줬다. 친숙한 한식을 프랑스 요리 수준으로 가치를 올린 창의성에 필자는 감탄했고, 그가 우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의 음식을 보며 필자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는 조림 요리에 진심인데, 자기 강점인 조림 대신 언뜻 보기엔 소박한 국물 요리를 내놓았다. 평생 남을 위해 ‘조림 인간’으로 살아왔지만, 자기를 위한 요리에선 조리지 않았다. 대신 그 안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조림을 잘하는 척해 왔다는 고백과 함께 본인을 위한 요리는 이게 처음이라며 소주 한잔을 곁들였다. 그의 요리는 ‘수고했다’는 노동의 서사를 들려준다. 그는 요리의 가치보다 인간다움을 느끼게 했다. 과학과 생산성이 보여주지 않는 존재감이다. 

AI는 몸의 고통도 모른다. 백 가지 걱정을 하던 사람도 몸이 아프면 한 가지 걱정만 남는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피폐해진다. 몸과 마음이 교류하는 순간에 영성(靈性·spirit)이 생기고, 그때 신을 찾는다. 영성의 현세적인 버전이 웰빙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말한다. 젊은 세대에게 몸의 건강 추구가 인기다.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그다음엔 자연스레 마음의 평안을 찾을 거다. 일터에서 마음의 평안은 일의 의미를 찾을 때 온다. 일이 자기 정체성의 중심이 된 세상이니 말이다. AI 시대 리더의 서사는 ‘의미’를 포착할 때 지혜의 소통이 될 게다. AI의 지식이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한태영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