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체험형 학습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강의 위주의 수업은 줄여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학생이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마이클 혼(Michael Horn) 크리스텐슨 연구소 공동 설립자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AI 시대 대학 교육의 방향을 이렇게 제시했다. 그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을 주창한 클레이턴 크리스텐슨(1950~2020)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각별히 아꼈던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2007년 스승과 함께 크리스텐슨 연구소를 공동 설립했고, 현재 수석 연구원을 맡고 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인 그의 주된 연구 주제는 교육, 그중에서도 대학 교육 혁신이다. 관련 주제로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포브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의견을 개진해 왔다. 최근에는 AI가 대학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고가 부쩍 늘었다.
그는 “(AI를 이용한) 부정행위 확산이 큰 걱정이긴 하지만, 기존 평가 방식 자체도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다”면서 AI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과제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학습 숙달도를 평가한 뒤 평가 결과를 즉시 전달해 학생의 역량 향상을 돕는 방식을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AI가 대학 교육에 미친 영향, 어떻게 보나.
“(생성 AI의 본격적인 등장 이후) 지난 3년 동안 대학마다 ‘학생이 과제를 수행하고 학습 내용을 습득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과제를 내주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AI를 활용해 대학 운영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등 존재론적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학생도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수업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전보다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학이 제공하는 진정한 가치와 훌륭한 학습의 장이 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대해 논리 정연하고 일관된 답변을 내놓거나 AI 대응과 활용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한 대학은 여전히 매우 드물다. 애리조나 주립대(ASU)와 퍼듀대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다.”
ASU에서는 현재 약 8000개의 AI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모든 학생이 캠퍼스 어디서나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AI 교육을 이수한 ASU 교직원은 4000명에 달한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공립 명문 퍼듀대는 AI와 항공·우주, 반도체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산업 현장과 연계한 실용 연구와 기업 협력 모델이 강점으로 꼽힌다.
AI와 이전의 혁신 기술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그런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이전에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학생이 이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고등교육의 목적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AI가 특별한 건 세상과 일자리, 직업 등을 매우 빠르게,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생각과 작업물을 매우 흡사하게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밖에 AI와 대화를 인간의 사고력 발달을 도울 수 있을 만큼 깊이 있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과 ‘인지적 외주화(cognitive offloading·인간이 기억하거나 판단해야 할 일을 기술에 맡기는 현상)’의 심화도 과거의 기술과 선을 긋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AI 확산으로 인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도전을 극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대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은 체험형 학습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이는 도제식 교육이나 학습 동아리(CoP·Community of Practice) 기반 교육, 인턴십, 프로젝트 등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이 같은 교육 환경에서는 AI를 도구로 활용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고, 정형화된 교육 방식 대신 외부 환경을 활용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다. 강의 위주의 수업은 줄여야 한다. AI 시대에는 학생이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평가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부정행위 확산이 큰 걱정이긴 하지만, 기존 평가 방식 자체도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다. AI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과제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학습 숙달도를 평가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평가 결과를 즉시 전달해 학생의 역량 향상을 돕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간·기말 평가로 등급을 매기는 데 그치는 현재의 방식보다는 나을 것 같다.”
취업률을 높이는 것도 대학의 역할이다.
“체험형 학습을 늘리면 그 부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대학이 학생에게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부분 중 하나가 인맥의 중요성이다. 좋은 일자리는 궁극적으로 인맥을 통해 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체험형 학습을 통해 기업이 학생에게 기대하는 바를 알려줄 수 있는 인맥 형성을 도울 수 있다.”
AI의 확산으로 이상적인 학생, 교수의 기준도 달라졌다고 보나.
“‘대학의 근본적인 목적이 연구와 지식 창출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교육과 학습에 있는 것일까’가 모든 대학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연구 방법론에 통달한 교수진과 실제 연구 경험을 쌓고자 하는 학생이 이상적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학습 과학을 통해 검증된 교수법에 특화된 인재를 확보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지식 중심 교육의 한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난 지식이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글과 위키피디아가 등장했을 때도 ‘지식을 습득하는 대신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지식이 없다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요즘은 판단력과 식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다. 나도 동의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지식은 필수다. 앞으로는 AI가 가져온 결과물을 평가하고 더 나은 질문을 던져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변화무쌍한 AI 기술 자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깊이 있는 지식이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AI 자체가 커리어의 최종 목표가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AI를 통한 학습 효율성 증대로 교육 기간 단축도 가능해질 것 같은데.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학위 과정의 지속 기간은 학문 분야의 특성과 해당 과정의 목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역량 또는 숙련도 기반 교육이 성취도를 높이는 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웨스턴 거버너스대(WGU)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생이 필요한 역량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키웠다는 것을 입증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WGU는 재학생이 18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대학이다. 대학 본부는 미국 유타주 밀크릭에 있다.
인문·고전 교육의 가치는 변함 없을까.
“인문·고전 교육은 앞으로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 바람직한 인생과 정의로움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오늘날의 인류 문명이 있게 한 역사·문화적 흐름은 무엇이었는지 등 다양한 주제를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주제를 과거는 물론 현재, 미래와 연결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인문·고전의 통찰을 좀 더 실용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