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AI G3’로 도약하려면 미국, 중국식 정면 승부보다 우리 산업구조와 기술 역량에 맞는 한국형 AI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조선·자동차·의료 등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산업과 AI를 결합해 성과를 내야 한다. 앞으로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산업별 특화 모델, 피지컬 AI 같은 영역에서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 고려대 법학 학·석사, 미국 조지타운대  법학 석사, 행정고시(제37회),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 /사진 안상희 기자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 - 고려대 법학 학·석사, 미국 조지타운대 법학 석사, 행정고시(제37회),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 /사진 안상희 기자

“지난 1년은 대한민국의 인공지능(AI) 주권을 지키고 산업의 근간을 바꾸는 AI 대전환의 초석을 다진 시간이었다.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조기 확보를 시작으로 국산 AI 반도체, 피지컬 AI(Physical AI·자율주행차나 로봇 등 물리적 형태가 있는 AI),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까지 국가 AI 생태계의 주요 축을 동시에 다지는 데 주력했다.”

박윤규(60)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취임 1주년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박 원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지낸 정보통신기술(ICT) 정책 전문가로 2025년 3월 말 제6대 NIPA 원장으로 부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직 시절 네트워크정책실장·인공지능기반정책관·정보통신산업정책관 등 통신·소프트웨어·AI 정책 전반을 두루 맡았다. NIPA는 국가 ICT·AI 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실행 기관이다. AI 인프라 구축부터 기업 실증, 사업화, 해외 진출 지원까지 정책과 산업 현장을 잇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한국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목표로 한 ‘국가대표 AI 모델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AI 생태계 경쟁력 강화와 산업 현장 확산에 힘을 싣고 있다. 박 원장은 “올해는 인프라 구축을 넘어 공장·병원·물류·행정 등 산업 현장과 국민 생활 속에서 실제 성과를 내는 단계로 AI 정책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기업을 지원했느냐가 아니라, 지원받은 기업이 실제 시장에서 성과를 냈느냐”라고 말했다. 다음은 박 원장과 일문일답. 

그동안 성과와 앞으로 과제는.

“지난 1년은 AI 고속도로의 기초공사를 한 시간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첨단 GPU를 조기에 확보해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학, 연구 기관까지 공급 기반을 넓힌 점이다. AI 개발 역량이 일부 대기업에 머물지 않고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국산 AI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의 중심축으로 끌어올리고, 피지컬 AI와 독자·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 체계에 착수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과제도 분명하다. 2028년까지 GPU 5만 개 확보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해야 하고,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생산성과 국민 삶의 질을 바꾸는 실전형 성공 모델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난 1년이 기초공사였다면, 앞으로는 그 길 위에서 산업적 성과와 국민 체감 성과를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무엇인가.

“그동안 AI 정책과 사업이 인프라 구축, 모델 개발, 시범 사업 발굴에 무게중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AI가 공장·병원·물류·행정 같은 현장으로 들어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며 새로운 매출을 만드는 단계로 가야 한다. AI는 더 이상 실험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장으로, 산업으로, 국민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확보된 독자 AI 모델과 산업 특화 모델을 제조·의료·금융·공공 전반으로 확산하고, 에이전틱 AI(Agentic AI) 시장 선점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GPU 5만 개 확보 계획과 배분 기준은.

“정부가 직접 확보하는 물량은 지난해 추경으로 마련한 1만3000개와 올해 예산에 반영된 1만5000개를 합쳐 2만8000개 수준이다. 여기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올해 9000개가량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고,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추진하는 특수목적법인(SPC)도 2028년까지 1만5000개 확보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 합하면 5만2000개 수준이다. 

배분 기준도 명확하다. 지난해 확보한 1만3000개는 독자·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 같은 국가대표 AI 프로젝트에 30%, 국가 핵심 프로젝트에 30%, 산학연 가운데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과제에 40%를 배정했다. 국가대표 AI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 이후 해당 물량을 나머지 두 영역에 배분할 것이다.” 

정부가 GPU를 확보하는 방식은.

“정부가 민간 기업에 예산을 지원해 GPU를 확보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클라우드, NHN클라우드, 카카오 같은 기업을 선정하면 이들이 제시한 물량만큼 GPU를 들여오는 구조다. 기업별로 3000개, 7000개씩 나눠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GPU는 해당 기업이 클라우드 형태로 운용하게 된다. 소유권은 정부에 있다. 기업에는 GPU 시장 가격의 5~10%만 부담하게 하고, 대학과 연구 기관 등 산학연에는 무상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NIPA 예산이 1년 만에 네 배 이상 늘었다.

“1년 전 취임 당시 7000억~8000억원 수준이던 예산이 올해 3조1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네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단순히 예산이 증가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GPU 확보를 국가 차원에서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총예산 중 2조원 이상은 GPU 구매에 투입될 예정이다. GPU만 확보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남은 예산 1조원가량은 AI 모델 개발은 물론, 공공 부문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AX(AI 전환) 서비스 개발 등에 투입할 수 있다. 결국 인프라 확보와 서비스 확산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AI 글로벌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도약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 구분해서 보면 범용 모델 개발에는 수비 역할로서 따라가는 형국이지만, 기술력 확보, 안보 차원에서 안전핀을 마련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국가대표 AI 모델 프로젝트는 글로벌 상위 모델 대비 95% 이상 성능을 목표로 하는데, 참여 컨소시엄은 그 이상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은 에이전틱 AI나 피지컬 AI에서는 공격수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같은 절대 강자와 비교하면 자원과 자본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높은 디지털 수용성, 강한 제조업 기반,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역량을 동시에 갖춘, 드문 나라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AI를 잘 쓰는 나라가 아니라, AI 모델과 반도체·제조·서비스를 결합해 산업화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다. 세계가 바로 그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이 ‘AI G3’로 도약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 우리 산업구조와 기술 역량에 맞는 한국형 AI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조선·자동차·의료·물류처럼 우리에게 강점이 있는 산업과 AI를 결합해 현장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앞으로는 범용 AI 모델 경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산업별 특화 모델, 피지컬 AI,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 PC 등 기기 자체에서 직접 AI 연산을 수행하는 기술) 같은 영역에서 경쟁 우위를 점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자본과 규모를 앞세운 골리앗 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강점에 기반한 다윗 전략이다.” 

국가대표 AI 모델 프로젝트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베트남에서 쌀을 많이 생산한다고 한국이 쌀농사를 안 지을 것은 아닌 것처럼 기술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당장은 잘 드러나지 않아도 결국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전쟁을 AI로 하는 시대인데, 남의 것만 가져다 쓰면 활용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공급이 안 될 때 대안이 없다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AI를 단편적 기술로 볼 게 아니라 핵심 전략 자산으로 봐야 한다. 한국이 처음부터 방산이나 원자력을 잘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초기 기술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AI 생태계에서 기술 경쟁력을 위해 우리 기업이 자신 있게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안상희 조선비즈 기자

심민관 조선비즈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