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수십 년간 고착돼 온 ‘삼성·SK·현대자동차(현대차)·LG·롯데’ 등 이른바 5대 그룹 체제를 깨고 재계 5위에 올랐다. 1952년 창립 이후 74년 만에 처음으로 ‘빅5’에 진입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장기 비전 아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 전략을 진두지휘하며, 그룹 체질을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4월 29일 발표한 ‘2026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한화는 공정자산총액 149조6050억원으로, 142조4200억원에 그친 롯데를 밀어내고 재계 순위 5위에 올랐다. 롯데는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자산이 감소했다. 석유화학 사업 부진과 유통 경쟁력 약화가 겹친 결과다. 한화가 재계 5위에 오르면서 수십 년간 재계 빅5 기준으로 여겨지던 삼성·SK·현대차·LG·롯데라는 공식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방산·조선으로 10년 만의 11위→5위
2016년 김동관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인 부자 경영이 시작됐다. 당시 재계 11위였던 한화는 부자 경영 10년 만에 5위까지 치고 올랐다. 이 기간 공정자산총액은 54조원대에서 149조원대로 세 배 가까이 늘었는데, 성장의 두 축으로 방산과 조선이 꼽힌다. 그룹 방산 사업의 중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6년 1분기 매출 5조7510억원, 영업이익 638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9%, 20.6% 증가한 수치다. 수주 잔고는 역대 최대인 약 39조7000억원으로, 지난 1월 체결한 다연장 유도미사일 ‘천무’ 의 노르웨이 수출 계약(약 1조3000억원)이 반영됐다. 노르웨이는 미국산 다연장 로켓포(HIMARS)의 긴 납기와 높은 가격 대신 천무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과 조선을 맡고 있는 한화오션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1% 증가한 4411억원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가 상선 비중 확대와 원가 절감 효과가 동시 반영됐다.
글로벌 생태계 진입 속도… ‘3세 경영’ 가속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월 29일 ‘한화 테크 아카데미 2026’ 행사를 열고 항공 무장 국산화를 위한 기술 로드맵을 공개했다. 또 미국 방산 기업 노스롭그루먼과 장거리 미사일 체계 공동 개발에 나서, 단순 수출을 넘어 K-방산이 미국 방산 생태계로 직접 편입되는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협회(APMA)와는 군용·산업용 차량 생산을 위한 합작 법인 설립 협약도 체결했다. K-방산의 영토 확장이 계약 수주를 넘어 현지 생산 단계로 진화하는 모양새다.
한화의 재계 빅5 진입을 두고 3세 경영 본격화가 맞물렸다는 분석이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김동관 부회장은 방산·에너지·우주 등 미래 성장 축을 주도하며 경영 승계 구도를 굳혀가는 모습이다. 한화그룹은 2025년부터 2028년까지 방산과 조선, 에너지 부문에 최대 1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인공지능(AI)·우주·친환경에너지로 성장 축을 다각화해 재계 빅5 자리를 굳히는 것이 다음 과제로 꼽힌다.
막 내린 쿠팡의 법인 총수 5년
미국인 김범석, 쿠팡 동일인으로 지정
공정위는 4월 29일 쿠팡의 동일인(총수)을 기존 법인에서 미국 국적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으로 변경 지정한다고 밝혔다. 대기업 총수로 외국인이 지정된 건 2018년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에 이은 국내 두 번째 사례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쿠팡이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처음 편입된 이후 5년 만으로, 공정위는 법인보다 김 의장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인 쿠팡은 의결권 대부분을 김 의장이 행사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번 총수 지정으로 쿠팡은 공정거래법상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내부 거래 공시 등 이전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게 됐다. 쿠팡 측은 동일인 지정에 불복해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측은 “향후 행정소송을 통해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했다.
재계는 해외 상장을 검토 중인 두나무나, 독일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 등도 쿠팡 사례를 적용할 경우 동일인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시아 부호 가문 3위 오른 삼성家
반도체 슈퍼사이클… 자산 126% 폭증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가 총자산이 455억달러(약 67조1125억원)에 달해 아시아 부호 가문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26% 급증한 수치로, AI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삼성전자 주가를 끌어올리면서 이 회장 등 오너 일가 보유 지분 가치도 가파르게 불었다.
4월 29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 부호 가문 1위는 에너지·통신·AI 인프라를 아우르는 인도 릴라이언스그룹의 암바니 가문으로 총자산 897억달러(약 133조원)였다. 2위는 홍콩 부동산 재벌 순훙카이프로퍼티스(SHKP)의 궈씨 가문으로 502억달러(약 74조원)였다.
이 회장 등 삼성가의 자산 규모가 지난해 10위에서 올해 3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 급증과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을 꼽았다. 실제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5월 6일 기준 1조달러(1475조원)를 넘었다.
다만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에서 오너 일가 자산의 급격한 증가가 성과급 갈등의 불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K-배터리 3社 1분기 영업 적자
캐즘 현실… 수주 쌓여도 이익은 안 나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K-배터리 3사가 2026년 1분기 일제히 영업 손실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4월 30일 1분기 영업 손실 2078억원을 공시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 3747억원에서 적자 전환이다. 북미 생산 보조금(인플레이션 감축법 세액공제 1898억원)을 제외한 실질 손실은 3975억원이다. 삼성SDI도 1556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SK온 역시 증권가에서 3000억~4000억원대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K-배터리의 동반 부진은 북미 전기차(EV) 수요 둔화와 생산 거점 확대에 따른 초기 비용이 겹친 탓으로 분석된다.
다만 수주 측면에서는 반등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46시리즈)에서 100 (기가와트시) 이상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이 배터리는 BMW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공급하는 것으로, 업계는 수주액이 10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SDI도 메르세데스-벤츠와 다년 공급 계약을 체결해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3대 브랜드를 모두 고객사로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