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5월 1일(현지시각)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OPEC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요 비회원 산유국이 협력해 출범한 석유 생산 조정 협의체)를 탈퇴하면서 글로벌 석유 질서가 중대한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 7위 산유국이자, 에너지 순 수출국인 UAE의 OPEC 탈퇴는 단순한 회원국 변화가 아니라, 반세기 넘게 유지돼 온 석유 카르텔 구조의 균열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특히 OPEC 창립 66년을 맞는 시점에 미국·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에너지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OPEC의 가격 통제력과 시장 영향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약화하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가 나온다.
오일쇼크 때 영향력 정점, OPEC의 균열
OPEC은 1960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우디·이란·이라크·쿠웨이트·베네수엘라 5개국이 주도해 창립됐다. 당시 국제 석유 시장은 ‘세븐 시스터즈’로 불리는 서방 메이저 기업이 가격을 좌우하는 구조였으며, 산유국은 실질적인 가격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OPEC은 이러한 구조를 뒤집고 산유국 중심 가격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 출범했다. 이후 회원국 확대와 함께 영향력을 키워온 OPEC은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통해 글로벌 경제 질서를 흔드는 핵심 행위자로 부상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는 OPEC의 힘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건이다. 중동전쟁을 계기로 석유 금수 조치가 시행되면서 국제 유가는 네 배가량 급등했고,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당시 국제 유가는 배럴당 약 2.7~3달러 수준에서 1974년 약 11~12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는 OPEC이 단순한 협의체가 아닌 ‘정치적 무기’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어 1979년 2차 오일쇼크 역시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재확인시켰다. 이란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공급 불안이 확대되면서 유가는 다시 급등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유가는 1978년 배럴당 약 13달러에서 1980년 약 36달러 수준으로 상승했다. 1차 오일쇼크가 정치적 금수 조치에 따른 ‘공급 차단형 충격’이었다면, 2차 오일쇼크는 지정학적 불안과 생산 붕괴가 결합한 ‘구조적 공급 리스크’로 평가된다.
1980년대 이후 OPEC의 균열이 시작됐다. 비회원국의 생산 확대와 회원국 간 이해 충돌이 심화하면서 가격 통제력이 약화했다. OPEC 내부에서는 생산 쿼터를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감산 합의 이행률이 떨어졌고, 이는 시장 신뢰도를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6년에는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을 포함한 ‘OPEC+’ 체제가 출범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OPEC 영향력이 약화했음을 보여주는 조치였다.
UAE의 OPEC 탈퇴, 왜 지금일까
UAE는 그동안 사우디 중심의 감산 정책에 불만을 제기해 왔다. 자국의 생산능력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당량 규제로 인해 수익 극대화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특히 저유가 국면에서 생산량을 줄이기보다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선호해 왔다. 더 중요한 변수는 지정학적 방향 전환이다. UAE는 전통적으로 사우디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전략적 협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 수출국으로서 안정적인 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소비국과 직접적 관계 구축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반면 사우디는 러시아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OPEC+ 체제를 강화하며 중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산유국 내부에서도 ‘미국 측’과 ‘러시아·중국 측’으로 나뉘고 있는 모양새다.
석유 공급 점유율·회원국 수 모두 떨어진 OPEC
OPEC은 1970년대 점유율과 회원국 수 모두 정점을 찍었다가 내려오는 모습이다. OPEC과 EIA 등에 따르면, 1970년대 초중반 OPEC 회원국의 석유 공급 점유율은 50% 이상이었다. 다만 올해 1분기 기준 회원국의 석유 공급 점유율은 35%가량으로 줄어들었다. OPEC 내 3위 원유 생산국인 UAE마저 탈퇴를 결정하면서 향후 점유율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회원국 수 역시 줄어들었다. 2018년 콩고공화국이 가입하면서 역대 최다인 15개국이 OPEC에 소속되어있었지만, 카타르(2019년), 에콰도르(2020년), 앙골라(2024년), UAE(2026년)가 연이어 탈퇴를 결정하며 회원국이 11개국으로 줄었다.
OPEC의 영향력이 약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셰일 혁명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에너지 자립이다. 미국은 셰일오일 개발을 통해 글로벌 산유국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이는 OPEC의 가격 통제력을 약화하는 핵심 요인이 됐다. 둘째, 에너지전환 흐름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차 보급은 석유 수요의 장기적 감소를 예고한다. 이는 OPEC의 ‘카르텔 프리미엄’을 약화하는 핵심 요인이다. 셋째, OPEC 내부 결속력 저하다. 회원국은 재정 구조와 정치적 이해관계가 각기 달라 감산 합의 이행이 반복적으로흔들렸다.
다극 체제로 바뀌는 에너지 패권
UAE가 OPEC을 떠남으로써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공급 전략 다변화’다.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생산 정책을 결정하게 되면 유가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의 생산 회복, 알래스카 신규 유전 개발 등 비OPEC의 공급 증가 변수도 시장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란 전쟁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OPEC 중심 카르텔 체제’에서 ‘다극 경쟁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0% 넘는 구조상 유가 변동성 확대는 물가 상승과 산업 비용 증가로 직결된다. 특히정유·화학·운송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결국 UAE의 탈퇴는 OPEC이라는 20세기형 에너지 카르텔 구조가 21세기형 에너지 다극 경쟁 구조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석유 패권은 국가 간 전략적 선택과 기술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