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전기의 서유공(徐有功·640~702)은 평생 정도를 지킨 법관으로서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본명은 서홍민(徐弘敏)이나 효경(孝敬)황제로 추존된 이홍(李弘)의 이름을 피해 보통 자(字)로 불린다고 ‘신당서(新唐書)’ 열전의 서두에 적혀 있다. 그는 엄혹한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의 공포정치 시절, 권력에 굴종하거나 아부하지 않고 오직 정의에 입각한 양심과 법리에 따라서 일관되게 행동했다.
집권 초기 신하의 불복을 염려한 무후는 밀고 제도를 만들어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가차 없이 탄압했다. 걸핏하면 모반이니 내란이니 하며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 과정에서 모함당해 억울한 참사를 당한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다수의 가혹한 형리가 동원됐다. 이른바 ‘혹리(酷吏)’다. 이 혹리는 무고한 사람도 없는 죄를 예사로 꾸며내 옭아매었다. 이런 공포 속에서 대소 관료는 보신에 급급해 모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서유공은 이 비상시국에도 치열하게 소신을 관철해 나간 보기 드문 지식인이었다.
무후 타도의 기치를 내건 서경업(徐敬業)의 거병이 실패한 4년 뒤인 688년, 당의 종실 이정(李貞)과 이충(李沖) 부자가 모반죄로 처형됐다. 그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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