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 창업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세 명이었다. 대다수 사람이 모르는 애플의 세 번째 공동 창업자는 로널드 웨인(Ronald G. Wayne·92)이다. 웨인은 중년의 나이로 비디오게임 개발사 아타리(Atari)에서 근무할 당시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잡스를 만났고, 인연은 애플 공동 창업으로 이어진다. 1976년 4월 세 사람이 모여 애플을 창업한 장소는 웨인의 집이었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애플의 첫 로고를 그린 사람도 웨인이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각각 지분 45%를 보유하고, 웨인은 나머지 지분 10%를 가졌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다투면 연장자인 웨인이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웨인은 애플 창업 12일 만에 지분 10%를 단돈 800달러(약 117만원)에 매각하며, 애플에서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웨인은 실리콘밸리와 멀어지며 ‘애플의 잊힌 창업자’가 됐다. 웨인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처음이다. 다음은 웨인과 일문일답.
1976년 애플을 창업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아타리에서 잡스를 처음 만났다. 당시 잡스는 19세 신입 엔지니어였다. 그는 사무실을 맨발로 걸어 다니곤 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잡스는 자기가 알아야 할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직감했는지, 처음부터 나를 잘 따랐다. 어느 날, 잡스가 내게 와서 자기와 워즈니악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려 한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자기 작업물을 매우 소중히 여겼는데, 잡스는 워즈니악 회로 설계가 개인이 아닌 회사에 귀속돼야 한다고 설득해 주길 원했다.
1976년 4월 1일 저녁, 잡스(당시 21세)는 워즈니악(당시 26세)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내(당시 42세) 집으로 데려왔다. 여기서 워즈니악과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고, 워즈니악은 회로 설계 회사 소유에 동의했다. 잡스는 벌떡 일어나 ‘회사를 설립하자’고 선언했다. 그 자리에서 3쪽짜리 동업 계약서를 작성했다. 애플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애플의 첫 로고를 그렸다고 들었다.
“잡스가 ‘빨리 필요하다’며 로고 제작을 재촉했다. 당시 애플의 모든 일은 빨리 처리돼야 했다. 나는 해당 로고가 내가 지금까지 그린 삽화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펜과 잉크로 세밀하게 그렸고, 사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사과가 빛의 근원인 것처럼 표현했다. 발상은 단순했다. 뉴턴의 사과가 세상을 바꿨고, 우리 사과가 다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당신이 기억하는 잡스와 워즈니악은 어떤 사람인가.
“잡스는 알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대단히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때로 상당히 냉혹했다. 그는 자기가 중요하다고 믿는 그것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했다. 두 가지가 언제나 일치했는지는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오래 생각해 온 문제다.
워즈니악은 기질 면에서 잡스와 거의 정반대다. 너그럽고, 개방적이었으며, 비범하지만 겸손했다. 워즈니악은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일종의 놀이처럼 여겼다.”
2 2026년 4월 1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문을 연 새 애플 박물관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왼쪽)과 스티브 잡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AP연합
불과 12일 만에 애플을 떠난 이유는.
“솔직하게, 동시에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이 이야기에는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으며, 나는 오늘 그 전부를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우선 ‘12일 만에 떠났다’는 것부터 정확하지 않다. 나는 12일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애플에 관여했다. 내 퇴사도 그동안 묘사돼 온 것과 다르다. 나는 애플이 어떤 회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재정적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책임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책임에는 집에서 함께 살던 연로한 어머니도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창업 직후 애플 I 컴퓨터 50대 제작 주문을 받았다. 잡스는 이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 부품 업체에서 약 1만5000달러(약 2200만원)어치 부품을 외상으로 조달했다. 판매 대금으로 부품값을 갚는 구조였는데, 자산이 없는 젊은 잡스와 워즈니악과 달리 40대인 웨인은 판매 계획이 틀어져 집과 계좌가 압류당하는 걸 우려했다고 한다.
애플 지분 10%를 800달러에 팔고 떠난 것이 아닌가.
“이 사안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전적으로잘못됐다. 나는 애플 지분 10%를 팔지 않았다. 동업 관계 책임 구조에서 내 이름을 제외하는 수정 서류를 제출할 때, 담당 공무원이 ‘금액을 함께 적는 것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담당 공무원은 800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그 제안에 따랐다. 얼마 뒤 우편으로 잡스가 보낸 봉투 하나를 받았고, 안에는 8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수표뿐이었다. 지분 매각과 관련한 논의가 없었고, 협상도 없었다. 내가 직접 작성한 동업 계약서 조건에 명시된 유효한 소유권 이전에 해당하는 문서도 없었다.”
50년이 흘렀는데,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해 후속 조치에 나설 계획이 있나.
“지금은 이것 이상으로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만,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말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상당한 분량의 증거 자료를 확보했으며, 가까운 시일에 적절한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자료를 제시할 예정이다.”
지분 매각과 관련한 진위를 떠나, 애플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나.
“나는 늘 내가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해 왔다. 그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다만 이제는 그 결정이 전적으로 내가 내릴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웨인과 애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플이 50년 만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애플이 성공한 비결은 잡스가 1976년 당시 기술 업계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제품에 들어 있는 공학보다 그 제품을 마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50년 동안 애플이 내린 모든 결정은 그 직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팟은 더 나은 음악 재생기가 아니라, 음악을 경험하는 더 나은 방식이었다. 아이폰은 더 나은 전화기가 아니라, 정보와 관계 맺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것은 잡스가 남긴 유산이다.
애플의 또 다른 큰 강점은 기존 제품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낡은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아이폰은 아이팟을 낡은 제품으로 만들었고, 아이패드는 노트북에 도전했다. 그 본능이 자기 지위를 방어하려는 여타 기업과 애플을 구분한다.”
애플이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약점이 있다면.
“인공지능(AI) 시대는 잡스 없는 애플에 본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진정한 시험대다. AI에 대한 애플 접근법은 신중하다. 프라이빗하고, 통제돼 있으며, 통합적이다. 그것이 지혜인지, 주저함인지는 앞으로 몇 년이지나야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