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우리의 ‘형’과 같은 존재다. 이제는 한국의 성공 모델을 이식하는 단계를 넘어, 베트남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독자적인 엔진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부득러이(Vu Duc Loi)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원장은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공식 운영 4년 차를 맞은 VKIST는 단순한 연구소를 넘어 베트남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지식 경제로 전환하는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에 들어선 VKIST는 한국과 베트남 과학기술 협력의 상징적 이정표다. 2014년 한국의 코이카 공적개발원조(ODA)로 시작된 VKIST 설립 사업은 한국 산업화의 초석이 된 KIST 모델을 베트남 토양에 이식한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2022년 본관 준공 이후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VKIST는 이제 베트남의 ‘중진국 함정’ 탈피를 이끌 혁신 거점으로 주목받는다.
부득러이 원장은 “우리의 사명은 베트남을 저비용 생산 시대에서 지식 및 첨단 기술 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가교가 되는 것”이라며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메이드 인 베트남(Made in Vietnam)’을 넘어 베트남의 기술로 가치를 창출하는 ‘메이드 바이 베트남(Made by Vietnam)’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KIST 설립 60년을 맞아 양국을 잇는 과학기술의 가교이자, 구심점으로 성장한 VKIST 부득러이 원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부득러이 원장과 일문일답.
VKIST가 공식 운영된 지 약 4년이 됐다. 그동안 성과를 평가한다면.
“VKIST는 한국 정부의 ODA 사업으로 시작해 2022년 본관 준공 이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우리의 핵심 사명은 발전 모델인 KIST와 마찬가지로 학문적 연구와 산업 현장을 잇는 가교가 되는 것이다. 기존 베트남 연구 기관이 정부 발주 과제에 집중했다면, 우리는 시장과 기업의 실수요에서 연구 방향을 찾았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4년간 총 23건의 특허를 출원해 8건이 등록됐고, 20건 이상의 기술을 이전 가능 단계로 발전시켰다. 특히 2025년 한 해에만 기업과 5건의 기술 라이선스 및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외 학술지에 50편 이상의 논문도 냈다. 무엇보다 PVN, 트라파코(Trap-haco), CVI 등 베트남 주요 기업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연구 성과가 실험실에 머무는 ‘죽음의 계곡’을 줄이는 데 이바지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다.”
응용 연구와 상업화를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베트남 기업의 9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혁신 의지는 높지만, 연구개발(R&D) 역량이 부족하다. 대학의 기초연구와 시장의 제품화 사이에는 공백이 큰데, VKIST가 바로 그 틈을 메우는 파트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농산물 수출 강국이지만 가공 기술이 부족해 원료 공급국에 머물러 있다. 응용 연구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여야만 중진국 함정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메이드 인 베트남’ 이 아니라 베트남의 기술로 만든 ‘메이드 바이 베트남’ 시대를 열고자 한다.”
이론 중심의 연구 문화를 산업 문제 해결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그 과정 자체가 가장 힘든 과제였다. 베트남 과학자들은 주로 논문 실적이나 인용 횟수로 평가받아 왔기에, 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단순한 기술 지원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를 깨기 위해 성과 기반 보상 체계를 도입했다. 기술이전에 성공하면 연구자에게 높은 보상을 주고, ‘기업별 전담 연구자(One Company–One Researcher)’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자를 직접 현장에 파견했다. 연구자가 직접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며 보람을 느끼게 되면서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2 KIST를 모태로 출범한 VKIST 연구원들이 베트남 하노이 호아락 하이테크 파크의 연구원 앞마당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VKIST
KIST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나.
“개인적으로 KIST를 ‘형’, VKIST를 ‘동생’ 이라 생각한다. 초기에는 KIST 안에 VKIST 현지 연구실을 운영할 정도로 긴밀했다. 지금도 연구자 교류와 공동 연구가 활발하다. 이제는 단순히 배우는 단계를 넘어, 함께 연구하고 책임을 공유하는 진정한 파트너로 성장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베트남 정부는 왜 과학기술 발전의 롤모델로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을 선택했나.
“한국의 경험은 베트남에 가장 현실적인 교과서다. 한국은 오랜 자본 축적의 역사가 아니라, 불과 두 세대 만에 빈곤국에서 고소득 국가로 도약했다. KIST를 중심으로 과학기술을 산업 발전과 직접 연결해 기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한 과정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다. 연구 기관의 성공은 논문 수가 아니라 국가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한국의 철학이 베트남의 국가 발전 전략(베트남 공산당 정치국 결의 제57호)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VKIST가 추진 중인 '2단계'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는.
“VKIST 프로젝트 1단계가 인프라와 조직 모델 정립이었다면, 2단계 목표는 연구 역량 심화와 실질적 영향력 창출이다. 특히 반도체 같은 전략 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강점과 베트남의 수요를 결합할 계획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와 협력해 기술 현지화와 공정 최적화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양국의 '윈윈' 협력 모델을 꼽는다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한국의 설계 능력과 베트남의 젊은 엔지니어가 결합할 반도체와 전자 기술, 둘째는 한국의 배터리 기술과 베트남의 에너지전환 수요가 만나는 신에너지, 셋째는 인력과 데이터가 융합될 디지털 전환(AI) 분야다. 단순한 기술이전을 넘어 ‘공동 창출’의 동반 관계로 나아간다면 양국 모두 세계시장에서 더 높은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