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지적 게임인 바둑에서 세계 최정상 선수를 넘어선 지 10년이 지나 몸을 쓰는 스포츠에서도 엘리트 선수를 격파했다. AI로 구동되는 로봇이 공식 규칙대로 진행된 경기에서 탁구 선수를 잇달아 격파해 낸 것이다. 이전에도 탁구 로봇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력이 월등한 엘리트 선수를 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위스 취리히의 소니AI연구소(이하 소니AI)는 “자율 AI 로봇 에이스(Ace)가 일본 프로 탁구 리그 규정에 따라 엘리트 탁구 선수 5명과 대결해 3번 이겼다”고 4월 22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 에이스가 대결한 선수 5명은 프로는 아니지만 모두 최소 10년 이상 경력을 가졌으며, 주당 20시간씩 탁구를 훈련해 온 이들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에이스는 프로 선수 2명과의 대결에서는 모두 졌는데, 단 한 세트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소니AI는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한 뒤 에이스의 능력을 더 발전시켜 프로 선수도 격파했다고 밝혔다. 지금의 에이스가 10년 전 알파고(AlphaGo)와 대등한 위치에 오른 셈이다.
카메라와 센서로 탁구공 감지
에이스는 8개 관절을 갖춘 로봇 팔이다. 자동차를 조립하는 산업용 로봇 팔처럼 생겼다. 로봇은 탁구 경기장을 둘러싼 카메라와 가속도, 시각 센서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탁구공의 위치를 3D로 파악하고, 공의 가속도와 회전을 감지한다. 소니AI는 에이스가 자율 로봇공학 분야에서 세 가지 주요 발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우선 ‘사건 기반 센서(Event-based sensor)’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로봇은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 중 탁구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움직임이나 밝기의 변화를 나타내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둘째는 로봇의 탁구 기술이 바둑 AI 알파고를 개발할 때 사용한 ‘강화 학습(RL·Rein-forcement Learning)’으로 구축됐다는 점이다. 에이스 개발을 이끈 소니AI의 피터 뒤르 박사는 “AI는 탁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기보다 시뮬레이션 게임 경험을 통해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강아지에게 특정 행동을 계속 설명하기보다 그 행동을 했을 때 칭찬이나 먹이 같은 보상을 줘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에이스가 인간 수준의 민첩성으로 경기할 수 있도록 ‘고속 로봇 하드웨어’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뒤르 박사는 운동선수가 반응하는 데는 약 0.23초가 걸리지만, 에이스의 반응 지연 시간은0.020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선수는 실제 경기처럼 서브 동작을 숨기려 했지만, 에이스가 바로 회전을 감지해 대응해 놀랐다고 했다. 특히 에이스는 네트에 맞고 튕겨 나온 공도 받아냈다. 개발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뒤르 박사는 AI에서 저절로 나온 능력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AI가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인간이 생각도 하지 못한 동작을 로봇에서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일본 탁구 선수 나카무라 킨지로는 “에이스가 한 특정 샷은 그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에이스가 가능했다는 것은 인간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카와마타 야마토는 2025년 12월 에이스와 탁구 대결을 펼쳤다. /사진 소니AI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4월 22일 자 표지에 실린 AI 탁구 로봇. /사진 '네이처'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인 G1이 라켓을 들고 테니스를 치고 있다. /사진 중국 칭화대
게임 넘어 육체 스포츠도 인간 능가
에이스의 성공은 AI가 지적 게임을 넘어 육체 스포츠 분야에서도 인간을 넘을 수 있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앞서 1997년 IBM의 AI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게임에서 세계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를 꺾었고,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 경기에서 4승 1패로 승리했다. 뒤르 박사는 “체스나 바둑 같은 지적 게임은 오랫동안 AI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험대 역할을 했다”며 “이전 AI 이정표는 온라인에서 이뤄졌지만, 에이스는 실제 현장의 프로 탁구 챔피언과 맞서 선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을 보여준다”고 했다.
소니AI는 지난 1년 동안 에이스의 능력이 계속 발전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에이스는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프로 선수를 꺾었고, 지난 3월에는 세계 탁구 랭킹 25위권인 여성 프로 선수 키하라 미유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뒤르 박사는 “앞으로 세계 챔피언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에스터 콜롬비니 브라질 캄피나스 주립대 컴퓨팅 연구소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함께 실린 논평 논문에서 “기계라면 주로 힘에 의존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에이스는 인간보다 빠른 샷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회전과공을 되받아치는 일관성으로 성적을 거뒀다”며 “에이스는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차세대 AI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인간형 로봇 시합도 가능할 듯
연구진은 앞으로 에이스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형태로도 구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휴머노이드 기술도 많이 발전해 다른 카메라 도움 없이 프로 선수와 탁구 시합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칭화대 연구진은 지난 3월 인간과 테니스 시합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를 발표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칭화대 연구진은 로봇 기업 유니트리(Unitree·宇树科技)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G1에 인간의 테니스 동작이 담긴 모션 캡처 영상을 제공했다. 로봇은 5시간 분량의 영상을 보며 라켓을 쥔 쪽에서 치는 포핸드와 반대 방향에서 손등 방향으로 치는 백핸드,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발동작을 학습했다. 공을 치는 각도나 시간 같은 세부 사항은 시뮬레이션으로 스스로 터득했다.
로봇은 아마추어인 연구원과 시합했지만, 포핸드로 공을 넘기는 데 90% 성공했다. 백핸드는 80%에 조금 못 미쳤다. 에이스처럼 AI가 본격 도입되면 테니스에서도 프로 선수와 대등한 시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프로 스포츠가 AI 로봇에 점령당할지, 여전히 인간이 우월한 영역으로 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