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최근 호르무즈해협에 정박 중이던 HMM 나무호가 외부 공격으로 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개된 사진을 보니 선미의 조타기실 앞쪽, ‘발라스트(밸러스트• ballast)’ 탱크 부근이었다. TV 출연을 위해 만난 앵커는 “평형수 공간의 역할이 무엇인가” 물었다. 항해사 시절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했던 발라스트를 떠올리게 됐다.

선박에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여러 공간이 있다. 화물을 싣는 선창(cargo hold)이 대표적이다.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에는 보통 여러 개의 선창이 설치된다. 이와 함께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공간이 있다. 바로 발라스트 탱크다. 흔히 ‘평형수 탱크’라고 부른다.

한 척의 선박에는 보통 10개 이상의 발라스트 탱크가 있다. 선체의 위쪽 톱사이드 탱크(top side tank)와 아래쪽 더블보텀 탱크(double bottom tank) 그리고 선수와 선미에도 각각 탱크가 배치된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선박 전체의 균형과 안전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수만 개의 화물을 싣고 거친 파도에도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이 발라스트 시스템 덕분이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발라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선박 좌우 균형을 조정하는 것이다.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 탱크에 물을 넣어 균형을 맞춘다. 항해 중 선박이 한쪽으로 기울면 선장은 항해사에게 어느 탱크에 얼마만큼 물을 넣고 뺄지를 지시한다. 그러면 거대한 선박은 다시 직립 상태를 회복한다.

발라스트는 선수와 선미의 높이 차이도 조절한다. 선수 쪽이 더 깊이 잠긴 상태를 ‘바이 더 헤드(by the head)’, 선미 쪽이 더 내려간 상태를 ‘바이 더 스턴(by the stern)’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도 선수 또는 선미의 발라스트 탱크를 조절해 배의 균형을 맞춘다.

또 발라스트는 선박을 적절한 깊이까지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선미에는 프로펠러와 러더(rudder·방향타)가 있다. 선박이 너무 가볍게 뜨면 프로펠러가 충분히 잠기지 않아 정상적인 추진력을 내기 어렵다. 일정한 무게를 유지해야 선박은 안정적인 속력과 조종 성능을 확보할 수 있다.

발라스트는 선박의 복원성과도 직결된다. 아래쪽 탱크에 물을 채우면 무게중심이 낮아져 복원성이 좋아진다. 반대로 위쪽 탱크에 물을 과도하게 싣게 되면 무게중심이 올라가 복원성이 약해질 수 있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발라스트 관리와 복원성 문제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 바 있다.

발라스트 탱크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격리 공간 역할이다. 선체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물이 선박 전체로 급격히 퍼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구획이 없다면 선체 파손 시 물이 중앙부까지 빠르게 침투해 선박은 쉽게 복원성을 잃게 된다. 이번 HMM 나무호 사고에서도 발라스트 구획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실 ‘평형수’라는 표현은 발라스트 기능 가운데 일부만 보여주는 이름이다. 발라스트는 단순히 균형을 맞추는 역할뿐 아니라 선박 안전, 추진력, 복원성, 침수 방지까지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은 예전부터 그냥 발라스트라고 불러왔다.

발라스트는 환경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국 항구에서 실은 평형수를 호주에서 배출할 경우, 한국 바닷속 미생물이 호주의 해양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는 평형수관리협약(BWM Convention)을 만들었다. 오늘날 대부분 선박은 평형수를 배출하기 전에 살균·소독 처리하는 장비를 갖추고 있다.

운용 방식도 흥미롭다. 아래쪽 탱크는 밸브를 열면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들어오지만, 높은 위치의 톱사이드 탱크는 펌프로 물을 강제 주입해야 한다. 발라스트 탱크는 완전히 막힌 공간이어서 승객이나 일반인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박의 균형과 안전을 묵묵히 지탱한다. 조직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과 같이 소중한 존재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