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이 5월 15일(이하 현지시각) 두 번째 임기를 끝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파월은 퇴임과 동시에 연준을 떠나는 대신, 2028년 1월까지 보장된 연준 이사 임기를 유지하며 이사회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다. 역대 연준 의장이 통상 의장직과 이사직에서 동시에 물러났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미국 언론은 1940년대 이후 사실상 처음 있는 ‘전직 의장-현직 의장 동거 체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에서는 파월의 잔류 결정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준 장악 시도를 견제하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월은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영향 없이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연준을 향한 전례 없는 법적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며 잔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미 법무부는 워싱턴 D.C. 연준 본부 개보수 비용 문제를 이유로 파월 관련 수사에 착수했고, 미국 안팎에서는 “백악관이 사실상 중앙은행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 충분히 호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월을 ‘너무 늦는(too late) 파월’이라고 반복적으로 공격해 왔다. 최근에는 파월이 대형 쓰레기통으로 추락하는 합성 이미지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며 “금리가 너무 높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다만 파월의 경제정책 성적표는 엇갈린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초기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 완화(QE)를 통해 금융시장 붕괴를 막아내며 ‘역사적 소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transitory)’ 현상으로 오판하면서 40년 만의 물가 급등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파월의 유산은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와 트럼프의 정치적 압박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필자는 “트럼프의 압박은 역설적으로 파월을 ‘연준 독립성의 수호자’로 남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파월 전 연준 의장이 2025년 7월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연준 본부 건물을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파월 전 연준 의장이 2025년 7월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연준 본부 건물을 둘러보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파월 전 연준 의장이 5월 15일 두 차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의 퇴장은 미 연준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집요하게 그를 흔들어온 인물 덕분에 오히려 그의 명성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역사는 흔히 갈등의 그림자 속에서 쓰인다. 연준에서 파월의 리더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훗날 사람의 기억에 남을 것은 숱한 정책 실패보다 정치적 압박에 맞선 그의 대응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경제 성적표만 놓고보면 파월 체제에는 적지 않은 오점이 남아 있다. 중대한 정책 오판과 장기간의 물가 목표 초과, 반복된 소통 혼선, 은행 감독 실패, 내부 기강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평론가와 역사가는 그를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막아낸 인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장기 경제 안정의 핵심이라는 역사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파월은 연준을 행정부 압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첫 임기 내내 정치적 압박에 시달렸지만, 특히 두 번째 임기 들어 상황은 훨씬 거칠어졌다. 공개적인 금리 인하 압박과 인신공격성 비난, 방송을 통한 공개 망신 주기 시도, 법무부 조사까지 이어졌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실무교수, 
현 그래머시 펀드 회장,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  전 국제통화기금(IMF) 부국장
모하메드 엘 에리언 -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실무교수, 현 그래머시 펀드 회장,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 전 국제통화기금(IMF) 부국장
파월 재임 중 가장 결정적 순간은 그가 ‘정면 대응(play offense)’에 나선 시점이었다. 2026년 1월 그는 연준 특유의 조용한 외교 관행을 깨고 공개 영상을 내놨다. 메시지는 정교하면서도 단호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금리정책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려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연준 역사에서 사실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 같은 연준 수호 행보가 없었다면 파월의 평가는 훨씬 냉혹했을 것이다. 실제로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그의 임기는 ‘실책의 연속’에 가까웠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기 전부터 미국 경제는 이미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물가 지표인 2026년 1월 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보면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준이 기대했던 ‘물가 안정의 마지막 단계(last mile)’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간 근원 인플레이션은 3% 안팎에 머물며 목표치인 2%를 웃돌았고, 상품 물가에서는 공급망과 무역 왜곡 재발 조짐이 나타났다. 서비스 물가 역시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후 3월 들어 이란 전쟁 여파가 세계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월간 PCE 인플레이션은 0.7%로 급등했다.

이런 흐름은 파월이 연준을 떠나는 시점에도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물가 상승 압력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의 지정학적 충격이 없었더라도 미국 경제는 앞으로 수년간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파월 체제의 가장 치명적 오판으로 꼽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한 점이다. 연준이 물가 상승의 지속성을 과소평가하는 사이 미국 물가 상승률은 한때 9.1%까지 치솟았다. 이는 미국 가계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고, 특히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을 급격히 키웠다.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 전반에서 ② ‘구매력 위기(affordability crisis)’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은행 감독 실패 역시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연준의 감독 부실 속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전격적으로 무너졌고, 이후 시그니처은행(Signature Bank)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이 잇따라 붕괴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사실상 예금 전액을 보장하는 비상조치까지 꺼내 들어야 했다.

연준의 소통 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파월은 정례 기자회견 때마다 시장에 혼선을 주는 발언으로 변동성을 키운다는 비판을 반복해서 받았다. 여기에 내부 균열 조짐도 나타났다. 일부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은 금융 부정 의혹 속에 사임했다.

통화정책 운용 체계 개편 역시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2025년 추진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개편은 미완으로 남았고, 2020년 개편 시도 역시 당시의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더 근본적으로는 연준이 낡은 경제 모델의 틀에 지나치게 갇혀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는 결국 연준 독립성을 지켜낸 그의 행보에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의장직 퇴임 이후에도 연준 이사로 남기로 한 결정은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그는 연준이 여전히 공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부의 법적 공세가 “113년 연준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지난 3개월간 벌어진 일이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평가가 모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그를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낸 인물로 평가한다. 연준 이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손(steady hand)’ 역할을 하며 제도적 방어선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자신의 법적 부담과 역사적 평가를 관리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선택이라고 비판한다. 후임 의장과 연준 내부 권위를 약화하고, 오히려 이미 흔들린 연준에 더 큰 정치적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연준에 남기로 하면서 파월은 자신을 ‘연준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ed)’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그의 유산을 규정했어야 할 정책 실패 논란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게 됐다. 역설적으로 그의 최대 비판자가 그의 역사적 평가를 바꿔놓은 셈이다. 

Tip

미국 상무부가 발표하는 물가 지표로, 연준이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인플레이션 지표다.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소비 패턴 변화를 더 폭넓게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거비·식료품·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고물가 장기화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이 급격히 커지면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실무교수

정리=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임채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