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전 연준 의장이 5월 15일 두 차례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의 퇴장은 미 연준 역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집요하게 그를 흔들어온 인물 덕분에 오히려 그의 명성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역사는 흔히 갈등의 그림자 속에서 쓰인다. 연준에서 파월의 리더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훗날 사람의 기억에 남을 것은 숱한 정책 실패보다 정치적 압박에 맞선 그의 대응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경제 성적표만 놓고보면 파월 체제에는 적지 않은 오점이 남아 있다. 중대한 정책 오판과 장기간의 물가 목표 초과, 반복된 소통 혼선, 은행 감독 실패, 내부 기강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평론가와 역사가는 그를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막아낸 인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장기 경제 안정의 핵심이라는 역사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파월은 연준을 행정부 압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첫 임기 내내 정치적 압박에 시달렸지만, 특히 두 번째 임기 들어 상황은 훨씬 거칠어졌다. 공개적인 금리 인하 압박과 인신공격성 비난, 방송을 통한 공개 망신 주기 시도, 법무부 조사까지 이어졌다.
이 같은 연준 수호 행보가 없었다면 파월의 평가는 훨씬 냉혹했을 것이다. 실제로 경제지표만 놓고 보면 그의 임기는 ‘실책의 연속’에 가까웠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기 전부터 미국 경제는 이미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물가 지표인 2026년 1월 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보면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준이 기대했던 ‘물가 안정의 마지막 단계(last mile)’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간 근원 인플레이션은 3% 안팎에 머물며 목표치인 2%를 웃돌았고, 상품 물가에서는 공급망과 무역 왜곡 재발 조짐이 나타났다. 서비스 물가 역시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후 3월 들어 이란 전쟁 여파가 세계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월간 PCE 인플레이션은 0.7%로 급등했다.
이런 흐름은 파월이 연준을 떠나는 시점에도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물가 상승 압력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의 지정학적 충격이 없었더라도 미국 경제는 앞으로 수년간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파월 체제의 가장 치명적 오판으로 꼽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한 점이다. 연준이 물가 상승의 지속성을 과소평가하는 사이 미국 물가 상승률은 한때 9.1%까지 치솟았다. 이는 미국 가계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겼고, 특히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을 급격히 키웠다.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 전반에서 ② ‘구매력 위기(affordability crisis)’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은행 감독 실패 역시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연준의 감독 부실 속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전격적으로 무너졌고, 이후 시그니처은행(Signature Bank)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이 잇따라 붕괴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사실상 예금 전액을 보장하는 비상조치까지 꺼내 들어야 했다.
연준의 소통 능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파월은 정례 기자회견 때마다 시장에 혼선을 주는 발언으로 변동성을 키운다는 비판을 반복해서 받았다. 여기에 내부 균열 조짐도 나타났다. 일부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은 금융 부정 의혹 속에 사임했다.
통화정책 운용 체계 개편 역시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2025년 추진된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개편은 미완으로 남았고, 2020년 개편 시도 역시 당시의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더 근본적으로는 연준이 낡은 경제 모델의 틀에 지나치게 갇혀 세계경제의 구조 변화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는 결국 연준 독립성을 지켜낸 그의 행보에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의장직 퇴임 이후에도 연준 이사로 남기로 한 결정은 이런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그는 연준이 여전히 공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행정부의 법적 공세가 “113년 연준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지난 3개월간 벌어진 일이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평가가 모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그를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낸 인물로 평가한다. 연준 이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손(steady hand)’ 역할을 하며 제도적 방어선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자신의 법적 부담과 역사적 평가를 관리하기 위한 자기방어적 선택이라고 비판한다. 후임 의장과 연준 내부 권위를 약화하고, 오히려 이미 흔들린 연준에 더 큰 정치적 공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연준에 남기로 하면서 파월은 자신을 ‘연준의 수호자(defender of the Fed)’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그의 유산을 규정했어야 할 정책 실패 논란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나게 됐다. 역설적으로 그의 최대 비판자가 그의 역사적 평가를 바꿔놓은 셈이다.
Tip
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하는 물가 지표로, 연준이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인플레이션 지표다.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소비 패턴 변화를 더 폭넓게 반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② 주거비·식료품·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고물가 장기화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이 급격히 커지면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