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은퇴한 뒤에 골프를 치며 쉬려고 평생 열심히 일하지만, 나는 은퇴한 뒤에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 평생 골프를 쳤다. 일하는 즐거움을 사랑한다(I have said many times that most people work all their life to retire to play golf, while I played golf all my life to retire to work. I enjoy working).”
이 말은 잭 니클라우스의 독특하면서도뜨거운 인생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보통 사람은 고단한 직장 생활을 끝내고 여유롭게 골프를 치며 노후를 보내는 은퇴를 꿈꾼다. 하지만 니클라우스에게 골프는 은퇴 후에 시작할 더 큰 과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자 발판이었다.
니클라우스의 인생 2막은 화려했던 현역 시절만큼이나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그는 메이저 18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기고 필드를 떠났지만, 안락의자에 앉아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대신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황무지에 골프 코스를 설계하고, 자기 이름을 내건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며,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경쟁적인 골프를 평생 했다. 그러다 갑자기 경기를 그만두었을 때, 나에게는 여전히 넘치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었다. 숄을 두르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무료하게 남은 삶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I played competitive golf all my life… And certainly I wasn’t ready to pack up my bags and go sit in front of the television with a shawl on).”
스코틀랜드의 영혼을 오하이오에 심다
니클라우스는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300개가 넘는 골프 코스를 설계한 거장이다. 그의 설계 회사인 니클라우스 디자인은 현대 골프 코스 설계의 표준과 철학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중에서도 그의 영혼이 가장 깊이 서린 곳은 단연 그의 고향 오하이오주 더블린에 있는 뮤어필드 빌리지(Muirfield Village)다.
이곳 이름은 그가 1966년 생애 첫 디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던 스코틀랜드의 성지 뮤어필드(Muir-field)에서 따왔다. 놀라운 점은 그가 이 코스를 은퇴 후 소일거리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6년,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 오하이오에 제2의 오거스타 내셔널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단순히 골프장 하나를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하나의 공동체가 어우러지는 빌리지를 구상한 것이다. 그는 1974년 이 코스를 개장하며 자기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현역 최고의 선수가 직접 땅을 고르고 코스를 설계해 자기 이름을 건 대회를 만든 것은 골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그가 호스트를 맡는 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가 열린다. 이 대회는 한국 골프 팬에게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현장이다. 2007년 우승자 최경주가 시상식에서 니클라우스 옆에 서서 “섬마을 완도에서 니클라우스의 저서 ‘골프 마이 웨이(Golf My Way)’ 번역서를 읽으며 골프를 독학했다”는 소감을 밝혔기 때문이다. 책 한 권으로 골프를 배운 소년이 훗날 그 저자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 영화 같은 이야기는 니클라우스는 물론전 세계 골프 팬의 심금을 울렸다.
자연을 존중하는 설계와 31m 퍼팅의 기적
니클라우스의 코스 설계 철학은 확고하고 공정하다. 그는 특정 구질을 가진 선수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코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는 누구에게 유리한 코스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만들려고 노력했다(I’ve never set up any golf course that would favor anybody. I try to make it exactly the opposite).”
그는 인위적인 가공보다 자연의 원래 모습을 존중하는 설계를 강조했다. “우리 임무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환경을 향상시키는 것이다(Our job is to try to take the envi-ronment… without destroying it).”
은퇴 후에도 그의 천재적인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2010년, 자기가 설계한 미시간주 하버 쇼어스 골프장 개장 행사에서 니클라우스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함께 라운드하던 동료 조니 밀러가 복잡한 경사의 그린을 보며 “이건 말도 안 된다. 잭, 당신이라도 여기서 넣을 수 있겠나”라고 농담 섞인 도발을 했다.
그러자 70세의 니클라우스는 “한번 보여주지”라며 웃으며 나섰다. 그는 31m(102피트) 거리의 가파른 2단 그린 위에서 공을 굴렸다. 공은 구불구불한 경사를 타고 뱀처럼 휘어지더니 거짓말처럼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갤러리의 환호 속에 그는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전성기 시절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저 실패를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덜 할 뿐이다(I think I fail a bit less than ev-eryone else).”
가족에 대한 사랑과 비극을 넘어서는 힘
코스 위에서 자연과 공존을 꿈꿨던 그의 철학은 가정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꽃을 피웠다. 니클라우스는 필드 위에서는 냉철한 제왕이었으나 집으로 돌아오면 누구보다 헌신적인 가장이었다. 치열한 투어 생활 중에도 2주 이상 집을 비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평생 지켰다. 그러나 그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시련이 찾아왔다. 2005년, 17개월 된 손자 제이크가 익사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참혹한 비극을 겪은 것이다. 천하의 니클라우스도 무너져 내릴 만큼 큰 슬픔이었지만, 그는 절망 속에 주저앉는 대신 가족과 함께 골프를 치며 슬픔을 치유해 나갔다.
나아가 그는 손자의 이름을 딴 자선 대회를 열고 니클라우스 아동 병원을 후원하며 수많은 어린 생명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다. 자기 아픔을 숭고한 사회적 공헌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위기는 삶의 일부다. 누구나 위기를 직면해야 한다(Crises are part of life. Every-body has to face them).”
타이거 우즈와 영원한 제왕의 품격
니클라우스의 기록은 후배에게는 영원한 이정표이자 거대한 벽이다. 특히 타이거 우즈와 비교는 골프계의 영원한 테마였다. 니클라우스는 우즈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진심으로 그를 응원해 왔다. “누군가는 반드시 내 기록을 넘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타이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정말 훌륭한 청년이기 때문이다(Somebody is going to dust my records. It might as well be Tiger, be-cause he’s such a great kid).”
그는 자기 기록이 깨지는 것을 시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골프라는 스포츠가 후배에 의해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니클라우스는 후배에게 따뜻한 조언자이자, 골프의 전통을 지키는 수호자로 여전히 곁에 머물고 있다. 그는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으로 골프를 쳤던 마이크 위어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의 고유한 리듬을 바꾸지 마라”고 격려했고, 위어는 훗날 마스터스 챔피언이 되어 그 믿음에 보답했다.
그는 골프라는 게임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었다. “프로 골프는 20%만 우승해도 최고가 되는 유일한 스포츠다(Professional golf is the only sport where, if you win 20% of the time, you’re the best).” 니클라우스는 단순히 승률과 통계를 넘어, 100%의 열정으로 골프와 인생을 사랑한 진정한 거인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