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는 상대가 이끄는 동작에 따라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 이때 서로 뇌파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셔터스톡
탱고는 상대가 이끄는 동작에 따라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 이때 서로 뇌파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셔터스톡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예요!” 1993년 개봉한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시력을 잃은 퇴역 장교(알 파치노 분)가 실수가 두려워 탱고를 추기 어렵다고 말하는 여인에게 한 말이다. 여인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장교가 이끄는 동작에 맞춰 멋진 춤을 춘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실력이 없어도 마음만 맞으면 누구나 멋지게 탱고를 출 수 있다는 말이 사실로 밝혀졌다.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아틀라스(ATLAS) 연구소는 “두 사람이 탱고를 출 때 서로 뇌가 동기화돼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고 5월 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뇌파 일치하며 0.2초 안에 동작 맞아

탱고는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하층민과 이민자의 애환에서 유래한 4분의 2박자의 관능적인 춤이다. 서로 가슴을 맞댄 채 한 사람이 춤을 이끌고 상대가 그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 아틀라스 연구소의 루오자 쑨 연구원은 5년 전부터 배운 탱고가 다른 춤과 달리 안무가 거의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했다.

탱고를 추는 사람은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동작을 만들고, 손을 살짝 쥐거나 상체를 움직이는 등 미묘한 신호를 통해 상대에게 다음 동작을 알린다. 그 짧은 시간에 동작이 맞춰지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의 뇌가 같이 작동한다고 가정했다. 연구진은 탱고 댄서 5쌍이 춤을 추는 동안 발목에 장착한 동작 센서로 발걸음을 추적하고 머리에 씌운 뇌파 감지 두건으로 뇌 활동을 조사했다. 

뇌에서 신경세포(뉴런)가 작동하면 파동 형태의 전기신호인 뇌파가 생성된다. 두건의 뇌파 센서는 다양한 주파수의 이러한 파동을 측정한다. 집중하거나 깊이 생각하면 베타파라고 알려진 빠른 펄스가 나오고, 휴식할 때는 더 느린 세타파가 생성된다. 연구진은 남녀가 박자에 맞춰 함께 움직일 때, 두 사람의 뇌 활동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춤을 이끄는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고 상대가 0.2초 안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두 사람의 뇌파는 거의 동시에 상승하고 하강하며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 발걸음이 맞지 않을 때는 뇌파도 맞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베타파와 세타파를 포함한 다양한 뇌파에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뇌 간 결합’ 또는 ‘신경 동기화’라고 부른다. 앞서 악기 연주나 다른 사회적 활동에서 이런 현상이 발견됐지만 춤에서는 처음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컴퓨터과학과의 엘렌 이-루앤 도 교수와 음대 그레이스 레슬리 교수가 이끌었다. 연구진은 지난 3월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을 주도한 박사과정의 티아고 로케 연구원은 “춤을 출 때 우리 뇌는 실제로 서로 연결된다”며 “행동을 통해 뇌를 동기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뇌파를 측정하는 두건을 쓰고 탱고를 추는 연구원들. 춤을 추는 동안 서로 뇌파가 일치하면서 순식간에 동작이 맞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뇌파를 측정하는 두건을 쓰고 탱고를 추는 연구원들. 춤을 추는 동안 서로 뇌파가 일치하면서 순식간에 동작이 맞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 발달 연구소 과학자들은 기타 이중주에서 뇌파가 일치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사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챗GPT 생성 이미지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 발달 연구소 과학자들은 기타 이중주에서 뇌파가 일치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사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챗GPT 생성 이미지

기타 이중주, 사중주에서도 신경 동기화

신경 동기화 현상은 앞서 기타 이중주에서 처음 발견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 발달 연구소의 빅토르 뮐러 박사 연구진은 2009년 두 사람이 함께 기타를 칠 때 뇌파가 같은 주파수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오케스트라에서 두 연구자가 메트로놈 속도에 맞춰 연주하며 박자를맞추는 것과 같았다. 연구진은 ‘동일 주파수 결합’이라고 불렀다.

기타 연주에서 나타나는 신경 동기화는 더 다양했다. 막스플랑크 연구진은 2012년에 두 연주자가 정확히 같은 음을 연주하지 않을 때도 뇌파의 동기화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탱고를 추듯 한 사람이 리더 역할을 맡아 연주를 시작하거나 속도를 유지하도록 하면, 이에 맞추는 상대와 뇌파가 일치했다. 

뇌파가 일치하는 것은 이중주에 그치지 않았다. 막스플랑크 연구진은 2024년 기타 사중주에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다. 이제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수준을 넘어 뇌가 훨씬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신경 동기화에서 뇌파가 똑같은 속도일 필요가 없었다. 사중주 중 한 사람의 느린 뇌파가 다른 사람의 빠른 뇌파를 조절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현상인 ‘교차 주파수 결합’ 현상도 나타났다. 뇌파 중 느린 주파수가 전체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고 조율하는 일종의 심박 조율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농구 선수 노룩 패스도 뇌 일치 덕분

신경 동기화 현상은 춤이나 악기 연주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인간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상대와 대결하는 스포츠가 대표적인 예다. 선수는 오랜 훈련 끝에 동료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 안 해도 안다. 농구 선수가 다른 곳을 보면서 동료에게 공을 넘기는 ‘노룩 패스(no look pass)’로 상대를 속이는 동작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화둥사범대 연구진은 2020년 ‘인간 신경과학의 최전선’에 발표한 논문에서 농구 선수는 일반인보다 뇌파 동기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농구 선수 두 명씩 짝지은 12쌍과 단체 경기 훈련 경험이 없는 대학생 12쌍에게 컴퓨터로 그림을 함께 그리라고 했다. 한 사람은 붓의 상하 움직임을, 다른 사람은 좌우 이동을 맡았다. 

실험 결과, 농구 선수는 대학생보다 그림 그리기 과제를 더 빠르게 마쳤다. 연구진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두 사람의 뇌 전두엽에서 나타나는 신경 활동을 기록했다. 농구 선수는 주의 집중과 작업 기억, 논리적 판단, 목표 지향적 행동 계획을 총괄하는 뇌 영역에서 뚜렷하게 신경 동기화를 보였다. 

과학자들은 신경 동기화를 높이는 훈련을 하면 경기력이 향상할 수 있다고 본다. 볼더 콜로라도대 연구진은 신경 동기화를 유도하는 바이오피드백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연주나 경기를 하는 중에 동료와 뇌파가 일치하는지 진동 또는 무진동으로 알려준다. 볼더 콜로라도대의 로케 연구원은 “스포츠에서는 동료가 무엇을 할지 알아야 한다”며 “바이오피드백 장치는 단체경기에서 서로 행동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