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가족이 아니라 계약 공동체다. 기업이 냉정한 계약 질서 안에서 운영될 때 투자와 혁신, 책임 경영도 가능해진다. 글로벌 시장과 깊이 연결된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치와 계약이라는 자본주의의 대원칙으로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
최근 한국 경제는 기업의 본질과 지배구조를 둘러싼 유례없는 혼란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대기업의 거대한 이익 처분을 두고 벌어지는 파업 위기, 플랫폼 기업 총수 지정 논란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원청 기업(이하 원청)에 하청 업체(이하 하청) 노조와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에 이르기까지 지배구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상법상 경영 책임자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현대 기업을 냉정한 계약 공동체가 아닌 봉건적 씨족사회나 가계로 바라보는 왜곡된 기업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표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위험한 정서법이 한국 자본주의와 산업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
동일인 지정 폐해와 노란봉투법·파견법의 구조적 충돌
한국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는 1980년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가 커진 대표적 규제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 지배구조 법제는 특정 개인보다 ‘지배력(control)’이라는 객관적 상태와 주주·경영진 간 사적 계약, 상법상 신의성실의원칙에 주목하는 ‘기능적 접근’을 중심으로 규율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특정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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