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가족이 아니라 계약 공동체다. 기업이 냉정한 계약 질서 안에서 운영될 때 투자와 혁신, 책임 경영도 가능해진다. 글로벌 시장과 깊이 연결된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치와 계약이라는 자본주의의 대원칙으로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이병태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 - 서울대 산업공학,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현 KAIST 경영대 명예교수
이병태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 - 서울대 산업공학,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현 KAIST 경영대 명예교수

최근 한국 경제는 기업의 본질과 지배구조를 둘러싼 유례없는 혼란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대기업의 거대한 이익 처분을 두고 벌어지는 파업 위기, 플랫폼 기업 총수 지정 논란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 원청 기업(이하 원청)에 하청 업체(이하 하청) 노조와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에 이르기까지 지배구조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상법상 경영 책임자의 독자성을 부정하고, 현대 기업을 냉정한 계약 공동체가 아닌 봉건적 씨족사회나 가계로 바라보는 왜곡된 기업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표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위험한 정서법이 한국 자본주의와 산업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

동일인 지정 폐해와 노란봉투법·파견법의 구조적 충돌

한국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총수) 지정 제도’는 1980년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가 커진 대표적 규제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 지배구조 법제는 특정 개인보다 ‘지배력(control)’이라는 객관적 상태와 주주·경영진 간 사적 계약, 상법상 신의성실의원칙에 주목하는 ‘기능적 접근’을 중심으로 규율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특정 개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혈족 4촌, 인척 3촌까지 범위를 확대해 규제 대상을 정하는 인적 접근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교류가 없는 친척의 금융 정보 제출까지 요구되며 과잉 규제 논란이 발생한다. 또한 상법상 독립적 전문 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권한을 사실상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외국 국적 총수 지정 문제로 외교적 갈등 가능성까지 발생하고 있으며, 단순 누락이나 실수에도 형사처벌 위험이 뒤따르면서 기업 활동 위축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규제 이데올로기는 중소기업과 하청 생태계를 파괴하는 법안으로 전이됐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이 원청을 하청 노조의 사용자(교섭 상대방)로 규정한 조항이 그것이다. 이 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한다. 

하지만 하청은 독립 법인으로, 자체 경영진과 이사회를 갖추고 있다. 원청이 임금과 근로조건 협상에 직접 개입하게 되면 하청 경영진의 독립성은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의 완성을 조건으로 맺는 양사 간 도급 계약의 본질과 계약 자유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한다.

더 큰 문제는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법(파견법)과 충돌이다. 현행법상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하거나 근로조건을 결정하면 불법 파견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반대로 원청에 하청 노조와 교섭 의무를 부과한다. 파견법상 금지된 행위를 노조법상 의무로 강제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노란봉투법은 중간착취 방지와 파견 허용 업종 제한이라는 파견법의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상법상 경영 책임자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기업 지배구조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자가당착의 산물이다.

현대 기업의 본질, 대규모 자본과 냉정한 계약의 결합

이 같은 논란은 결국 기업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현대 기업은 산업혁명 이후 대규모 자본과 기술이 결합하며 형성된 조직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가내수공업이나 길드 체제의 노동력이 핵심이었지만, 증기기관과 대형 설비가 등장하면서 개인 자산만으로는 생산수단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했고, 더 많은 자본을 결합하기 위한 조직 형태로 주식회사가 발전했다. 

주식회사는 불특정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고, 투자자는 투자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 구조를 통해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다. 이후 기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고, 전문 경영인과 관리 체계 중심의 현대 기업 구조가 등장했다. 

즉 현대 기업은 자본과 노동이 계약 관계를 바탕으로 결합한 시스템이다. 노동 역시 시장가격과 계약에 따라 거래되며, 기업은 철저한 경제적 계약 공동체로 기능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상법상 계약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 기업관’

반면 한국 사회는 기업을 계약 공동체보다 ‘가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과거 대기업이 ‘현대 가족’ ‘삼성 가족’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도 이런 정서를 보여준다. 가족은 가장 전형적인 공동체 조직이다. 능력 있는 구성원이 더 많은 소득을 벌어오더라도 분배는 기여도보다 필요에 따라 이뤄진다. 기업에도 이런 논리가 투영되면서 성과보다 공동체적 평등 개념이 강조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다. 생산성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근속 연수 중심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는 한국과 일본 기업 문화의 특징으로 지적된다. 최근 일부 대기업 노조가 기업 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제도화하자고 요구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가족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서구 기업은 개인 성과와 시장 가치 중심 계약 구조가 일반적이며, 이익 공유 역시 스톡옵션 등 주주 가치와 연동된 사적 계약 체제 안에서만 작동한다.

문제는 정치권 역시 이런 가족주의 기업관을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은 대기업에 하청을 돌보는 ‘맏형 역할’을 요구한 정책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흐름 속에서 추진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을 향해 ‘맏형이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은행과 통신을 공공재로 규정하며 대기업의 사회적 부담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하청 노동자의 복지 비용을 원청의 노사 협의 대상으로 밀어 올린 노란봉투법이나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AI 배당제’ 같은 초법적 발상 역시 같은 흐름에 있다.

계약 공동체로의 회귀가 산업 경쟁력 좌우

배당은 원칙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자한 주주에게 기업 이익을 분배하는 상법상 행위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이익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당연히 공유해야 하는 자원처럼 인식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는 기업의 사적 계약 질서를 약화시키고 글로벌 자본시장 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투자자는 기업 지배구조의 예측 가능성과 계약 안정성을 중요하게 본다. 그러나 한국은 정서와 정치 논리가 상법과 시장 질서를 압도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은 가족이 아니라 계약 공동체다. 기업이 냉정한 계약 질서 안에서 운영될 때 투자와 혁신, 책임 경영도 가능해진다. 글로벌 시장과 깊이 연결된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동도서기(東道西器)식 봉건적 잣대로 글로벌 규범을 뜯어고치려는 만용을 멈추고 법치와 계약이라는 자본주의의 대원칙으로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 

이병태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