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말했듯 ① ‘야만의 유물(barbarous relic)’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각국 중앙은행이 가장 선호하는 유물로 남아 있다. 신흥국 중앙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꾸준히 금 보유고를 늘려 왔고, 그 결과 보유량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렇다면 최근 이란의 전쟁 발발 이후 나타난 금값의 이례적 움직임은 중앙은행의 금 매입 전략에 의문을 던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금이 매력적인 이유는 안전 자산이자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3월, 달러 기준 금값은 오히려 10% 하락했다. 전쟁은 안전 자산과 인플레이션 헤지 두 측면에서 모두 금 수요를 밀어 올려야 했을 사건이기에 뜻밖의 흐름이었다. 4월에도 금값은 보합세를 보였다. 결국 금이 투자자가 생각했던 만큼의 확실한 안전 자산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도 아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 이례적 움직임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됐다. 다른 투자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가 마진콜, 즉 추가 증거금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금 선물과 펀드를 매도했을 수 있다. 금리 상승, 혹은 금리 인하 기대감 약화로 투자자가 금에서 채권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인 리라화를 방어하는 데 필요한 외환을 마련하기 위해 금을 매도했다. 다른 중앙은행도 비슷하게 움직였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태는 금값이 얼마든지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까.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는 이유를 따져보자. 금괴 보유는 역사적으로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상징해 왔다. 글로벌 투자자라면 누구나 포트폴리오에 원자재 가격과 연동되는 투자, 이른바 ② 원자재 투자(commodity play)를 담고 싶어 할 것이다. 금에 장기 투자하는 것은 이러한 투자를 실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물론 원자재 및 선물 ETF가 존재하는 오늘날에는 위험 대비 수익률 측면에서 금보다 더 나은 다른 투자 상품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자국 내에 보관한 금은 어떤 금융 제재 리스크에서도 자유롭다는 점이다. 해외에 은행예금이나 증권 형태로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외국 정부가 제재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동결되거나 압류될 위험이 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이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러시아가 이 위험을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기 직전인 2014년부터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전까지 외환보유액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두 배 이상 늘렸다. 그리고 이 금을 모두 본국으로 송환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금고에 보관했다.
중국인민은행(PBOC)은 금 관련 운용에 대해 말을 아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단일 중앙은행으로는 가장 많은 금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PBOC는 보유 금의 대부분을 베이징과 상하이의 자체 금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서방의 제재 리스크를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필자가 동료들과 진행한 공동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패턴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금융 제재에 노출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일수록 외환보유액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가장 적극적으로 금을 매입한 국가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크게 노출된 국가로, 러시아와 중국뿐 아니라 폴란드, 인도 그리고 지난 3월 이전의 튀르키예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앙은행의 속내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는 금 보관 장소의 변화다. 전 세계 공식 금 보유액 중 뉴욕 연방준비은행(Fed·연준)에 위탁 보관된 금의 비중은 2005년 30%에 달했으나, 현재는 20% 남짓으로 줄었다. 다른 나라 정책 당국자는 미국을 믿을 만한 동맹국인지, 연준을 신뢰할 수 있는 수탁자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금 환수 운동’ 역시 미국과 정치적 긴장 및 연준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와 연관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만, 자국에 보관한 금에는 한계도 뚜렷하다. 런던이나 뉴욕에 보관된 금과 달리 대출·스와프·담보 제공 등의 방식으로 활용할 수 없다. 국제결제 수단으로 쓰기에도 번거롭다. 2019년 미국의 제재를 받던 베네수엘라 정부는 금 7.4t을 우간다로 실어 나르기 위해 러시아 회사로부터 보잉 777 전세기를 빌려야 했다. 베네수엘라는 우간다에서 금을 정련하고 되팔아 3억달러(약 4497억원) 상당의 유로화를 확보했다. 제재 때문에 구할 수 없었던 물자를 구매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베네수엘라는 2020년에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역시 제재 대상국이던 이란으로부터 유전 장비와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보잉 747 화물기 여러 대를 동원해 금괴를 실어 날랐다. 이처럼 복잡하고 번거로운 작전은 역설적으로 금의 물리적 한계를 증명하는 ‘예외적인 사례’였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금 매입과 환수는 탈세계화의 징후다. 이는 모든 종류의 국경 간 거래가 한층 어려워지고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게 될, 지정학적으로 더 파편화된 세계(geopolitically fragmented world)의 도래를 예고하는 신호다.
Tip
①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23년 저서 ‘화폐개혁론(A Tract on Monetary Reform)’에서 금본위제를 가리켜 ‘야만 시대의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금은 비효율적이고 낡은 자산이며, 신용과 국가 정책을 기반으로 한 화폐가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이 주장은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며 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는 사상적 배경이 됐다.
② 금, 은, 원유, 천연가스, 농산물 등과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행위. 전통적인 주식이나 채권과상관관계가 낮아 포트폴리오 다각화 및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