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비명이 고요한 세상을 찢는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배우는 관객이 외면한다”며 단장이 거절하자, 어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칼을 들어 아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렸다. “홍등가에선 더 이상 사내아이를 키울 수 없단 말이에요.” 어미는 그렇게 경극단에 아이를 내던지듯 맡기고 떠나버린다. 아이가 남처럼 다섯 손가락이니 이제 어미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을까.
붉은 피를 덮듯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 “너 매음굴에서 왔다며?” 경극단 아이들의 잔인한 놀림이 사방에서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생살을 잘라낸 통증과 어미에게 버림받은 심장의 상처 중 어느 쪽이 더 아팠을까. 홀로 남겨진 아이는 어미가 남기고 간 외투를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자기와 똑같이 버려진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온 힘을 다해 가냘픈 생명을 키워내기 시작한다.
아이는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그러나 눈물이 마를 날은 없다. 허리를 곧추세우지 않는다고, 다리를 높이 차지 않는다고, 대사가 틀렸다고 단장은 호된 매질을 가했다. 경극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무대 뒤에 감춰진 풍경이었다. 18세기 청나라 때 만들어진 경극은 가면과 노래, 독특한 몸동작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공연 예술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무대에 오를 배우로 키워질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여운 고아였다.
“열심히 하면 성공해 부를 누리게 된다”며 단장은 아이들을 채찍질했다. 그래도 아이의 몸은 어느덧 살을 파고드는 매질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여성은 배우가 될 수 없던 시절, 퍽이나 곱상한 아이의 외모는 여자 역할을 하도록 낙점돼 혹독한 훈련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는 현실과 연극을 구별할 수 없었다. “이 몸은 본디 계집으로서”라고 읊어야 할 대사를 아이는 번번이 “이 몸은 본디 사내로서”라고 본능적으로 외쳤다. 그때마다 아이의 여린 뺨 위로 어김없이 매서운 따귀가 날아와 꽂혔다.
예술은 잔잔한 물 위에 피어난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연꽃이 아니다. 진흙 속에서 때론 숨을 참으며 제 살을 깎아내 맺은 열매이기도 하다. 예술을 성취한다는 것은 기존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 몸과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당시 공연자가 된다는 것은 타고난 대로 살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를 고통스럽게 잘라내야 했듯, 분재처럼 인위적인 틀에 맞춰지는 아픔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호쾌하고 다정하게 같은 편이 돼주는 친구가 있어서였다. 아이는 친구를 마주 보며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고 웃을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연극을 배우고, 함께 매를 맞고, 함께 상처를 보듬으며 자라 마침내 데이와 샬로라는 예명의 최고 배우가 되었다. 그들은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 한나라와 전쟁에서 패한 초나라의 비극 ‘패왕별희’의 두 주인공인 패왕 항우와 그의 애첩 우희가 돼 나란히 무대에 섰다.
데이는 더 이상 대사를 틀리지 않았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핏방울 같은 애절함을 담아 “이 몸은 본디 계집으로서”라고 나직이 읊조릴 때 그는 차라리 처연하도록 아름다웠다. 애초에 예술은 현실과 분리돼야 하면서도 나뉠 수 없는 것이다. 데이의 연기를 본 관객은 열광했고 권력자는 사사로이 그를 탐했다. 그렇게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돼야 했고, 여자로 살아야 했던 데이는 차츰 현실과 연극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잃었다.
냉혹한 현실과 엄격한 무대를 오가면서도 데이를 견디게 한 것은 여전히 샬로였다. 무대에서 그는 우희가 끝내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함으로써 절개를 지킬 만큼 연모하는 왕이었고, 현실에서도 우희와 똑같은 마음으로 데이가 깊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샬로에게 연극은 어디까지나 연극이었고, 데이는 친구이자 동료일 뿐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샬로가 홍등가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하자, 위태롭게 쌓아 올린 데이의 세계는 단숨에 산산조각 나며 깊은 슬픔으로 침몰한다.
데이의 고통은 경극과 현실의 괴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11년 신해혁명부터 중일전쟁, 국공 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까지, 권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데이는 자아비판과 인민재판의 단상 위로 끌려갔다. 일본군 앞에서 공연한 친일파라고 멸시당했고 국민당 앞에서 웃음을 판 변절자로 비판받았다.
고발한 자와 고발당한 자, 그 광기를 구경하던 모든 사람이 공범이 돼야 했던 중국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데이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과 시대의 야만을 목격한다.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세상은 과거에 무심코 했던 말 한마디까지 끌어와 돌을 던지고 조리돌림했다. 공산당은 배우도 노동 인민 해방에 앞장서라고 강요했고, 예술은 정치를 찬양하는 이념의 도구로 전락했다. 대중도 경극에 등을 돌렸다. 죽는 날까지 샬로와 함께 배우로 살고 싶었던 데이는 평생 지켜온 무대를 내려와 경극 의상을 불태운다. 그 불길은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장례식, 순수한 예술이 죽어버린 것을 애도하며 울리는 서글픈 조종(弔鐘)이었다.
“나는 본디 사내로서, 계집도 아닌데.” 많은 세월이 흐르고 데이는 어렸을 때 수없이 틀렸던 대사를 다시금 읊조린다. 뺨을 맞아가며 억지로 삼켜야 했던 그 오답이야말로, 평생을 돌고 돌아 마주한 유일한 진실이었음을 고백하듯이. 그 순간 혼재돼 있던 현실과 무대가 분리된다. 그렇게 데이는 비로소 인생 전부였던 연극을 끝내고 쓸쓸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