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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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국대(국가대표) 축구’는 흥분과 같은 말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은 광개토대왕 이야기 같은 정서를 담고 있다. 당시 필드의 무게중심이던 홍명보 선수는 다시 리더가 되었다. 지금 그가 불꽃의 정점에 있는지,아직 장작이 남아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역동적인 그의 삶에 비하면 일터의 리더는 사뭇 소박하게 마무리한다. 시인의 말처럼 ‘겨우 열흘 가는 꽃’의 느낌이다. 리더 직책을 내려놓은 중년은 주식 앱과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회사는 그들만 모아 놓기까지 하니 자괴감도 들게 한다. 실상 일터가 아니다. 향후 정부 정책으로 정년이 더 연장된다면 일에 대해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될 게다. 

60세 정년 연장을 제도화한 지 10년이 됐지만, 우리 사회는 중년 근로자에게 연습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직책에서 내리고 팀원으로 살게 한다. 회사는 ‘당신이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라고 얘기하고, 직원도 나름 ‘아직 내가 쓸모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사실은 서로가 위선을 하는 거다. 회사는 내심 그들이 떠나 주기를 원하고, 중년 근로자는 본인이 나가야 할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부족한 사회보장에 가족 부양이 아직 필요하니 일터에 남는 거다. 

한태영 -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한태영 -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 산업조직심리 박사, 현 삼성전자 자문 교수, 전 산업및조직심리학회 회장
요즘 리더를 맡지 않겠다는 풍조에는 MZ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이끄는 어려움도 있지만, 리더 직책을 내려놓은 중년 선배를 이고 살아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런 선배가 너무 풀이 죽으면 좀비 같아서 팀워크에 부담이 된다. 의욕이 과하면 시어머니가 된다. 전문성이 있으면 심지어 회사를 나가서도 이익집단 같은 학회나 포럼을 만들어 시스템을 어지럽힌다. 백세 시대에 평범한 인생 선배의 롤 모델이 부족하니,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성장 시대의 가치가 여전히 압박감을 주는 것 같다. 

그들에게 꽃중년의 화려함이 아니라, 작은 무대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후배를 위한 소박한 역할을 ‘GO:AL(Guiding Opportu-nity, Advising Legacy)’로 생각할 수 있다. 오래전 그들도 벽보 붙이고, 시간 예약하고, 자료 정리를 했다. 초년생 직원의 일이란 게 그렇다. 이젠 그런 일이 전반전의 하찮은 일로 보인다. 하지만 전반전의 사소한 일도 초년 직원에겐 여전히 불명확하고 판단할 게 많다. 알고 보면 조직 문화가 미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게임의 룰을 아는 중년 선배가 파트너가 돼 가이드하면, 초년생 후배가 ‘센스 있네’라고 칭찬 듣는 기회를 만든다. 

하프타임은 리더 코칭의 핵심이다. 프로젝트 중반이 돼야 팀원은 비로소 큰 그림을 더듬으며 자기 역할을 찾아간다. 이때 팀장의 하프타임 리뷰는 팀의 시너지를 급격히 올린다. 젊은 리더가 빛나는 리더십을 발휘할 지점인데, 이 지점에서 중년 선배의 지혜 가득한 조언은 젊은 리더에게 메타 지식이다. 이 지점을 인공지능(AI)이 도울 수는 있을망정 이미 후반전도 뛰어본 중년 선배의 조언만 못 할 게다. 그가 알려주는 미묘한 포인트는 조직의 레거시니까. 젊은 리더의 성취욕과 중년 선배의 조언을 섞을 수 있는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을 회사의 문화로 만드는 것이 고령화사회 일터의 숙제다. 작은 무대에서 찾는 소명감은 ‘경제적 자유’ 를 찾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보람이 있다.

이제 곧 월드컵이 열린다. 선수의 활약 못지않게 홍명보 감독도 국민이 주목한다. 선수 시절 전성기에 비해 그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고통스러운 전반전을 보냈다. 최근 평가전에서 보인 수비 전략에 대한 신념이 방어 심리가 아니길 바라며, 팀워크를 살리는 인생 후반전을 기대해 본다. 정점을 넘어가는 많은 리더가 세대를 통합해야 하는 숙제와 같다. 

한태영 광운대 산업심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