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힙 독일 힙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 영국 왕립농업대 농업·과학식품경영 석사, 전 유럽 유기농 가공·유통협회(OPTA) 회장 /사진 힙그룹
스테판 힙 독일 힙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 영국 왕립농업대 농업·과학식품경영 석사, 전 유럽 유기농 가공·유통협회(OPTA) 회장 /사진 힙그룹

“에너지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긴장은 전 세계 모든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다.” 

127년 역사의 독일 힙그룹(이하 힙)의 스테판 힙(Stefan Hipp)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회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힙은 ‘유기농 영유아식품 부문’ 세계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년 기준 해당 부문의 유럽 시장점유율은 35%, 모국인 독일에서는 43%에 달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같은 시기 점유율은 60%에 육박했다. 자체 제품 인증에 유럽연합(EU) 기준치보다 많은 260개 이상의 검사 항목을 적용할 만큼 깐깐한 품질 관리가 성공의 일등 공신이다. 가장 잘 알려진 분유 제품 외에도 유기농 과일 파우치 ‘히피스’와 ‘힙 메뉴’ 이유식, ‘힙 시리얼’ 분말 유아식, 스킨케어 라인업 ‘베이비샌프트’ 등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8년 9월 공식 진출했다.  

비상장 가족 기업이라 공식적인 재무제표를 공개하진 않고 있지만, 회사 브로슈어에는 2025년 매출을 10억유로(약 1조7573억원) 정도로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스테판 힙 회장은 가족 기업 힙의 4대 오너다. 2017년 부친 클라우스 힙에 이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책임을 온전히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면서 “힙의 혁신은 기계나 데이터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적인 사고와 접근법, 지속적인 제품 개선 또한 혁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회사 소개 부탁한다.

“힙은 1899년 창업해 4대째 이어 오는 가족 기업이다. 현재 약 60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세계 1위 유기농 유아식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힙이 어떤 회사인지 묻는다면, 규모에 앞서 ‘책임감’을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익에 신경 쓰는 만큼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게 125년 넘게 전해 내려온 우리 가문의 신념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자연 질서를 지키며 생산한 최고의 영양식을 아기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사랑스럽고 살기 좋은 모습으로 남겨주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유기농은 단순한 수치상 기준이 아니다. 자연과 생물 다양성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에 관한 책임감의 구체적인 실현이라는 의미가 크다.” 

기후변화에 에너지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에너지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긴장은 전 세계 모든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다. 단기 성과 극대화가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자연이 주는 최고의 것, 자연을 위한 최고의 것’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변함없이 굳건히 지키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기농업 원칙이나 제품 품질에 관한 타협은 없다. 원칙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의 대응법이다.”

지난해 말 전 세계 분유 시장을 뒤흔든 대규모 리콜 사태를 피해 갈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EU 기준을 뛰어넘는 엄격한 자체 기준을 제품에 적용한다. 회사 연구실에서는 제품이 매대에 오르기 전까지 수백 회의 품질 검사를 통해 1200가지가 넘는 잔류물을 걸러낸다. 고품질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EU 역내의 유기농 농가 및 협력사와 오랜 기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도움이 됐다. 신뢰를 쌓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게 신뢰다. 그러므로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프랑스에서 분유 제품을 섭취한 영아 세 명이 사망하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로 번졌다. 프랑스 정부는 당시 문제가 된 기업명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 우한 소재 카비오 바이오텍이 공급한 아라키돈산(ARA) 오일 원료에서 검출된 세레울라이드를 원인 물질로 지목했다. 아라키돈산은 오메가-6 지방산으로, 모유에 들어 있는 영양분이다. 열에 강해 분유 제조 과정의 고온 살균이나 가정에서 뜨거운 물로 분유를 탈 때도 파괴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원료가 다수 글로벌 브랜드에 공통 공급되면서 네슬레, 다논, 락탈리스 등 글로벌 기업은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대규모 자발적 회수 조치를 했다. 반면 힙은 단 한 건의 리콜 없이 안전성을 입증했다.  

첨단 기술 접목 위한 노력 소개 부탁한다.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책임을 온전히 다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업무를 뒷받침할 뿐, 인간의 판단이나 책임감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 공정에 걸쳐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원재료 검사의 정확성을 높이고, 식품 안전을 보장한다. 힙의 혁신은 기계나 데이터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적인 사고와 접근법, 지속적인 제품 개선 또한 혁신의 핵심이다. 우리는 소아과 의사, 영양학 전문가와 협력해 분유를 최대한 모유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 또한 더 나은 원료 도입과 과학적 연구, 포장 혁신 등을 통해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 

힙그룹의 유기농 분유 제품. /사진 힙그룹
힙그룹의 유기농 분유 제품. /사진 힙그룹

힙이 기반을 둔 ‘독일식 경영’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장기적인 안목, 치밀함 그리고 책임감에 있다. 힙이 품질과 지속성에 무게중심을 두고 고객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독일식 경영의 전통과 궤를 같이한다. 시간이 갈수록 안정감과 신뢰 구축에 도움 되는 접근법이다. 그런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때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대응 속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장기적인 안목을 접어둘 수는 없다. 유연하고 슬기로운 대응 능력과 장기적인 안목을 조화시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균형이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로 불리는 중소·중견기업이 AI 시대에도 독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독일에서 미텔슈탄트는 전문성, 장기적인 지배 구조, 긴밀한 고객 관계 그리고 강한 책임감을 상징한다. 가족 기업을 이끄는 입장에서 이 같은 가치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한다. AI를 활용하면 효율성과 분석 판단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치관, 판단력, 장기적인 헌신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 기술 역량과 깊은 명확한 목적의식, 책임감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미텔슈탄트는 독일 경제의 회복 탄력성을 높게 유지하는 데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경제의 핵심인 중소· 중견기업을 칭하는 말로, 인력이 500명 미만이고 매출이 5000만유로(약 878억6500만원) 미만인 기업, 특히 첨단 제조업 중심의 기업을 뜻한다. 독일 기업의 약 99%를 차지하는 미텔슈탄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된 독일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힙에 한국은 어떤 시장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분류 항목상의 프리미엄 시장이 아니라 특정 시장에서 신뢰, 품질, 장기적인 건강에 대한 관심도의 크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 소비자는 정보에 밝을 뿐만 아니라, 품질에 매우 민감하다. 영유아 식품 고객은 무엇보다 원재료와 안전성을 꼼꼼히 살핀다. 우리 목표는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고품질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부모와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제품 판매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부모에게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