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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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 - 현 IGM세계경영연구원 프로그램·콘텐츠 기획 담당, 전 모네상스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 기획·운영 담당

“오차즈케(お茶漬け·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 먹는 일본 요리) 드시겠어요?” 일본 교토(京都)에서 집에 놀러 온 손님에게 집주인이 이렇게 말했다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교토에서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이만 집에 돌아가달라’는 뜻이어서다. 녹차에 만 밥을 내놔야 할 정도로 대접할 것이 변변치 않으니, 실례를 그만해 달라는 완곡한 요청이다. 이것이 바로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눈치채도록 에둘러 말하는 ‘교토 화법’이다.

일본의 다른 지역 사람도 알아듣기 어려워한다는 교토 화법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의 귀족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가 목숨을 위협하던 시절, 살아남기 위한 교토 사람의 생존 전략이 문화로 굳어진 셈이다. 진짜 의도는 숨긴 채 상대가 스스로 눈치채길 바라는 교토 화법은 과거에는 생존에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독이 된다. 소통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드백을 주는 리더가 이런 화법을 쓴다면 조직 전체의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두 가지 상황을 보자. 

보고를 마치거나 결과물을 낸 구성원에게 리더는 “네, 좋아요. 수고했어요”라고 말한다. 보기엔 긍정의 말이다. 결과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는 실제로 전달되지 않는다. 리더가 물리적으로 너무 바빠 검토를 잠시 미루겠다는 표현일 수 있다. 

문제는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을 때다. 명확한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구성원은 무한 대기 상태에 빠지거나, ‘알아서 하겠지. 내 할 일은 여기까지야’라는 매너리즘에 갇힌다. 결국 조직 전체의 실행력을 마비시키는 병목현상으로 이어진다.

“음⋯ 좋은데, 좀 더 고민해 보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언뜻 구성원의 자발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세련된 코칭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때부터 구성원은 리더가 원하는 정답을 추측하기 위한 스무고개 게임을 시작한다. 고민 끝에 다시 가져가면 “조금 더 다듬어보죠”라는 말이 돌아온다. 구성원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반복되는 수정의 굴레에 갇힌다. 리더의 취향 파악에 조직의 자원을 쏟게 하는 전형적인 비효율이다.

‘회피형’과 ‘혼돈형’⋯ 리더의 두 얼굴

교토 화법을 쓰는 리더의 진짜 의도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회피형’이다. 구성원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지만, 쓴소리하는 것이 불편해 침묵하거나 돌려 말하는 것이다. ‘이걸 하나하나 말하느니 그냥 내가 직접 고치는 게 빠르겠다’ ‘퇴근 시간도 다 돼 가는데 굳이 잔소리하지 말고 좋게 넘어가자’는 식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회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여러 글로벌 기업을 거친 실리콘밸리의 리더십 멘토 킴 스콧도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전 직장에서 상사의 모욕적인 화법에 상처받았던 그는 자기 회사를 설립하며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일터’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직원 ‘밥’을 채용하면서 그 다짐은 시험대에 올랐다. 밥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친절하고 유쾌한 성격이었지만, 업무 성과가 형편없었다. 서류 하나를 만드는 데 몇 주가 걸렸고, 오랜 시간이 걸려 내놓은 결과물도 엉망이었다. 킴은 밥에게 날 선 지적을 하지 못했고, 대신 실망감을 감추며 “이제 시작이니까, 괜찮다”는 완곡한 피드백으로 상황을 회피했다. 밥의 무능으로 조직 전체의 피로가 쌓이자, 킴은 참다못해 밥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밥은 황당해하며 “왜 진작 말씀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저 나를 좋아하는 줄만 알았어요”라고 했다. 킴은 이 순간을 회상하며 “나는 최악의 관리자였으며, 내 비겁함으로 인한 모든 대가는 밥이 치러야 했다”고 고백했다.

회피형 리더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콧은 저서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에서 그 해답으로 ‘완전한 솔직함(radical candor)’을 제시한다. 완전한 솔직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직접적 대립’이다. 잘못된 부분이나 고쳐야 할 점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예리하고 명확하게 지적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이 솔직함이 상대에 대한 공격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한 가지가 더 뒷받침돼야 한다. 바로 개인적 관심이다. 구성원과 사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존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다. “이 보고서는 논리가 부족하고, 데이터도 빈약하네요. 이 부분 보완해서 다시 작성하세요”라고 지적하되,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힘은 우리 업무의 본질입니다. OO님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드리는 피드백입니다”라는 맥락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될 때 리더의 쓴소리는 구성원의 진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리더가 신뢰받는다

모호한 피드백을 하는 두 번째 유형은 ‘혼돈형’이다. 결과물이 미흡하다는 느낌은 드는데, 정확히 어디가 왜 문제인지 리더 본인도 말로 정리가 안 되는 경우다. 차마 ‘나도 모르겠다’고 말할 수는 없고, 이대로 통과시킬 수도 없는 상태에서 구성원에게 고민의 짐을 떠넘기는 식이다. 피드백해야 할 내용을 모르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구성원이 실무를 더 잘 아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에 짚이지는 않는데, 이 부분이 좀 걸리네요. 같이 봅시다.” “결론이 약해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정리가 안 되네요. 각자 30분만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이런 말이 리더의 권위를 떨어뜨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척하지 않는 리더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올라간다. 구성원도 ‘리더도 답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구나, 같이 만들어가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공부도 필요하다. 당장 구성원을 뛰어넘는 실무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 아니다. 리더가 익혀야 할 것은 판단의 언어와 피드백의 구조다. 팀과 조직의 주요 업무에 대한 ‘좋은 결과물’의 조건을 3~5개 정리해 구성원과 미리 공유해두는 것이 좋다. 보고서라면 ‘충분한 데이터, 탄탄한 논리, 명확한 결론’처럼 기준이 있어야 막연한 감을 구체적인 말로 바꿀 수 있다. SBI(Situation·Behavior·Impact, 상황·행동·영향) 같은 피드백 프레임을 익혀두면, 내용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막연한 감을 기준으로 바꾸고, 중언부언하는 언어를 구조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이 피드백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다.

리더의 소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편하더라도 말하는 용기, 모르더라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다. 모호한 언어 뒤에 숨겨진 의도를 구성원이 알아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잊지 말자. 솔직한 피드백은 구성원의 시간과 가능성을 소중히 여기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존중이다. 

유희영 IGM인사이트 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