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세상을 멈춰 세웠다. 거리에 사람의 발길이 끊겼고, 공항에는 비행기가 줄지어 멈춰 섰다. 제약 업계는 백신 개발에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때 보스턴의 작은 바이오 기업 모더나가 먼저 움직였다. 중국 연구진이 공개한 바이러스 유전체 서열을 바탕으로 즉시 설계에 착수했고 42일 만에 임상 시험용 백신 후보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보냈다. 첫 사람 투여까지 걸린 시간도 63일에 불과했다. 당시 상용화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없었기에 안전성에 대한 의문도 컸지만, 모더나는 모든 정보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18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모더나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했고, 2021년 모더나의 매출은 약 185억달러(약 28조원)로 늘었다. 전년 매출 8억달러(약 1조2000억원)에 비해 스무 배가 넘는 성장이었다.
왜 모더나는 달랐을까. 같은 조건에서 많은 기업이 멈칫할 때 무엇을 다르게 보았기에 앞서 나갔을까. 기술력이나 운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 2015)’를 통해 모더나가 불완전한 현실을 어떻게 읽고 판단했는지 알아보자.
불신의 시대에 원칙을 따른 변호사
1957년 뉴욕, 냉전의 공포가 사회를 짓누르던 시기에 미국은 체포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을 법정에 세운다. 사람들은 그를 이미 적으로 단정했고, 공정한 재판조차 필요 없다고 여겼다. 이때 보험 사건을 주로 맡던 평범한 변호사 제임스 도노번(톰 행크스)이 국선변호인이 된다. 도노번은 아벨 변호를 이유로 비난받고 가족까지 위협받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적에게도 법이 정한 절차와 권리를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노번은 영웅처럼 굴지 않는다. 지친 얼굴로 법정과 회의장을 오가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변호인과 의뢰인의 비밀은 지켜야 한다고 맞선다. 또한 아벨을 살려두어야 훗날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판사를 설득한다. 하지만 상황은 한층 복잡해진다. 소련 영공에서 미군 정찰기 조종사 파워스가 격추되어 붙잡히고, 비슷한 시기 동베를린에서 미국인 유학생 프라이어가 구금된다. 정부와 CIA는 파워스 송환에만 관심을 두지만, 도노번은 다른 길을 찾는다. 그는 소련과 동독이 서로 다른 속셈이 있음을 파악하고, 아벨을 파워스와 프라이어 두 사람과 맞바꿀 계획을 세운다.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할 때 흩어진 단서를 엮어 새로운 협상의 틀을 짠 것이다.
영화의 절정은 눈 덮인 글리니케 다리 위에서 펼쳐진다. 파워스와 아벨의 교환은 다리에서, 프라이어의 석방은 찰리 검문소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프라이어의 석방 여부는 불투명했다. CIA는 파워스와 아벨 교환을 먼저 끝내자고 주장하지만, 도노번은 프라이어의 석방을 확인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마침내 프라이어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아벨과 파워스는 인질 교환을 위해 다리를 건넌다.
센스메이킹, 불완전한 현실을 의미로 바꾸다
전략은 늘 불확실한 환경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불확실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망의 문제다. 반면 불완전성은 현실 자체가 온전하지 않다는 해석의 문제다. 현실은 한 장의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단서와 관점이 뒤섞인 조각이다. 그렇기에 같은 현실을 두고 어떤 기업은 기회로 읽고, 다른 기업은 위협으로 읽는다. 미래를 몰라서가 아니라, 현재를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가장 깊이 탐구한 학자가 칼 웨익(Karl E. Weick)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불확실한 현실을 완전히 파악한 뒤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움직이고, 말하고, 반응하면서 자기가 다시 해석해야 할 상황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단서에 주목할지 고르고, 그 단서를 바탕으로 행동하며, 결과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벌어진 일의 의미를 구성한다. 웨익은 이러한 과정을 센스메이킹(sensemaking)이라 불렀다. 이처럼 의미는 바깥에 완성된 형태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행동하고 대화하며 경험을 다시 정리하는 동안 조금씩 모습을 갖춘다.
‘속도’와 ‘고객 안전’, 혼란을 정리한 한마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모더나에는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경영진은 그 빈칸을 ‘기다려야 할 위험’으로만 보지 않았다. mRNA 방식을 쓰면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속도’를 모든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 연구진과 경영진이 동시에 움직였다.
도요타도 그랬다. 2010년 급가속 리콜 사태 당시, 언론은 매일 다른 원인을 보도했고, 소비자의 불안은 커졌다. 미국 교통부와 항공우주국(NASA) 조사에서 급가속을 일으킬 만한 전자적 결함을 발견하지 못했고, 바닥 매트 끼임과 가속페달 고착이 주요 원인으로 정리됐다. 그 혼란 속에서 당시 사장이던 도요다 아키오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직접 나가 고객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기준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도요타는 북미 품질 관리 조직을 강화하고 리콜 대응 절차를 다시 짰다. 그 결과 단기 판매는 줄었지만, 2012년 글로벌 판매 974만 대를 기록하며 다시 세계 1위에 올랐다.
모더나는 없던 것을 빠르게 만들어야 했고, 도요타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했다. 업종도 위기도 달랐지만, 둘 다 완벽한 정답을 기다리는 대신 구성원이 함께 붙잡을 한마디를 먼저 정했다. 모더나는 ‘속도’로 불완전한 기술과 시장의 공백을 메웠고, 도요타는 ‘고객 안전’으로 혼란을 수습할 방향을 정했다. 그 해석이 조직의 행동 방향을 만들고 결과를 낳았다. 결국 불완전한 데이터보다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를 어떤 의미로 읽어내느냐였다.
흩어진 단서를 엮어 전략을 세우다
빠른 판단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불완전한 정보를 성급히 판단하면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에 갇힌다. 권력자의 해석이 다른 단서를 덮어 버리면, 현실을 볼 눈을 잃는다. 센스메이킹은 한 번의 번뜩이는 결단이 아니라, 단서를 고르고 그 의미를 구성원과 나누며 행동의 결과를 보고 해석을 고쳐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센스메이킹을 닫힌 확신이 아니라 열린 대화로 다듬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지정학적 위험,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오늘날, 센스메이킹은 더 중요해졌다. 완벽한 자료를 기다리는 기업은 늦고, 근거 없는 확신으로 달려드는 기업은 헛디딘다. 도노번처럼 원칙을 세우고, 모더나처럼 단서를 붙잡으며, 각자 다른 해석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조직이함께 움직일 판단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한다.
도노번이 글리니케 다리에서 보여준 것은 완벽한 정보를 쥔 영웅의 결단이 아니었다. 모두가 적과 아군, 승리와 패배의 언어로만 현실을 바라볼 때 그는 법과 신뢰와 교환 가능성이라는 다른 해석의 틀을 내놓았다. 그 해석이 협상의 틈을 열었고, 그 틈으로 두 미국인이 돌아왔다. 전략도 마찬가지다. 흩어진 단서를 엮어 불완전한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토대로 행동의 방향과 질서를 만들 때 전략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