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런 라이가 5월 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의 아로니밍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
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모
자와 셔츠 가슴팍에 ‘미 앤드 마이 골프(Me and My
Golf)’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사진 AFP연합
애런 라이가 5월 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의 아로니밍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 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모 자와 셔츠 가슴팍에 ‘미 앤드 마이 골프(Me and My Golf)’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사진 AFP연합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교외의 애러니밍크 골프클럽을 물들였던 환호성이 잦아든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골프 대회가 그러하듯, 우승자의 이름은 이내 새로운 리더보드 수치에 묻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5월 17일(이하 현지시각), 메이저 대회 미국 프로골프(PGA) 챔피언십의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잉글랜드 출신의 31세 골퍼 애런 라이(Aaron Rai)가 쏘아 올린 파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뜨겁게 번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 골프계와 소셜미디어(SNS)에는 기묘한 문화적 현상이 출렁인다. 평범한 골프 팬이 스스로를 ‘라이헤즈(Rai-heads)’라 명명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헤즈는 라이의 성인 ‘라이(Rai)’에 특정 분야의 마니아를 뜻하는 접미사 ‘헤즈(-heads)’를 결합한 신조어로, 라이에게 열광하는 열성 팬층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이 팬덤은 새로운 메이저 챔피언을 향한 일시적인 동경이 아니다. 자본이 만들어낸 화려한 쇼맨십 뒤의 공허함 대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스포츠 본연의 순수함을 라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로소 발견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를 거스른 모자 위의 ‘의리’

타이거 우즈 시대 이후, 프로 골퍼의 몸은 그 자체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초호화 부동산이 되었다. 특히 카메라에 가장 선명하게 잡히는 모자 정면과 셔츠의 오른쪽 가슴팍은 글로벌 대기업이 수백만달러를 지불하고서라도 차지하려는 ‘황금 상권’이다. 투어의 톱 프로에게 이 공간을 판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비즈니스 공식이다.

그러나 라이의 모자와 셔츠 가슴팍에는 거대 스폰서의 로고가 없다. 대신 소용돌이 모양의 로고와 함께 ‘미 앤드 마이 골프(Me and My Golf)’라는 소박한 글씨가 새겨져 있을 뿐이다. 라이는 이 막대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공간을 자기 오랜 스승인 앤디 프라우드먼과 피어스 워드에 대한 존경을 담는 공간으로 삼았다.

프라우드먼과 워드는 라이가 겨우 네 살이던 시절 지역 스포츠센터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까지 그의 곁을 지켜온, 평범하고 꾸밈없는 영국의 티칭 프로다. 라이는 PGA 챔피언십 우승 직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당시의 감회를 이렇게 밝혔다.

“그들을 그저 ‘내 코치’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내가 10대였을 때부터 나의 멘토이자 친형이었고, 내겐 거의 가족과 같은 존재다.” 수백억원의 후원 계약 대신 어린 시절 자기를 이끌어준 사람에 대한 감사의 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과시가 아닌 ‘기억과 감사’의 도구

라이의 양손에는 글로벌 브랜드의 세련된 골프 장갑 대신, ‘맥웻(MacWet)’이라는 작은 영국의 제조 업체가 만든 투박한 검은색 장갑이 끼워져 있다. 원래 선원이나 사냥꾼을 위해 만들어진 이 전천후 장갑은 춥고 축축한 영국의 겨울 날씨에 그가 여덟 살 무렵부터 사용해 온 생존 도구였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는 오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립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장갑 본연의 기능에만 집중한다.

장비에 대한 그의 고집은 클럽 선택에서도 묻어난다. 유명 브랜드의 최신형 클럽을 매번 지원받는 투어 프로의 유행을 뒤로한 채, 라이는 단종된 지 7년이나 지난 낡은 테일러메이드 M6 드라이버를 여전히 골프백에 꽂고 다닌다. 손때 묻은 구형 클럽으로 세상을 제패하는 모습은 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현대 골프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라이는 정상급 프로 골퍼 중 유일하게 ‘아이언 커버’를 씌운다. 단순한 클럽 보호 장비가 아니라, 가족이 남긴 ‘희생과 감사’를 되새기는 깊은 성찰의 징표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지원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는 형편이 허락하는 한 가장 좋은 장비를 사주려 애썼고, 아주 많은 돈을 들여 멋진 아이언 세트를 마련해 줬다. 아버지는 훈련이 끝날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바늘과 베이비오일로 클럽의 그루브를 하나하나 닦으며 흙과 때를 벗겼다. 그리고 클럽을 소중히 보호하기 위해 아이언 커버를 씌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도 커버를 씌우는 이유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기 위함이며, 내가 가진 것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다문화적 뿌리를 지닌 구도자

라이는 SNS 활동을 멀리한다. 평소 스마트폰조차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프 실력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떤 화려한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오직 아버지를 나침반 삼아 걸었다. 라이는 “아버지가 내 삶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아버지와 단둘이 보내며 함께 연습하고, 골프 책을 읽고, 우즈의 VHS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암릭 라이는 아들에게 늘 주위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라이는 “다른 주니어 골퍼와 그리 많이 어울리지 않아서 무엇이 투어의 ‘평범한 기준’ 인지 잘 몰랐다. 아버지는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내게 맞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었다. 양손 장갑을 끼고, 아이언 커버를 씌우는 다소 독특한 방식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10대가 되어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하고 마침내 프로 무대에 입문했을 때, 라이는 자기만의 길을 고수할 수 있는 단단한 자기 신뢰를 갖추고 있었다. 그는 “내가 왜 특정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강한 확신이 있었다. 내가 그것을 왜 하는지 본질을 알고 있었고, 그 가치를 믿었기에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굳이 내 방식을 바꿀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단언했다.

구도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피나는 훈련은 PGA 챔피언십 우승 전야에도 이어졌다. 최종일 경기를 하루 앞둔 토요일 밤, 거대한 갤러리가 모두 떠나고 어둠이 깔린 텅 빈 연습장에서 캐디조차 없이 홀로 남아 묵묵히 샷을 다듬던 마지막 선수가 바로 라이였다. 6년 전 BMW PGA 챔피언십 당시 오후 11시 30분까지 코치 워드와 함께 퍼팅 그린을 지키던 열정은 투어 최고의 무대에서도 조금도 식지 않았다.

그는 다문화가정에서 자랐다. 영국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인도계 혈통이며, 어머니 역시 10대 시절 케냐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다문화가정의 역사 속에서 자라났다. 코치가 그의 영국 고향집을 방문할 때마다 은은하게 그들을 반겨주던 것은 향긋한 인도와 아프리카 요리의 향신료 냄새였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가정환경이 지금의 단단하고 겸손한 내면을 길러낸 자양분인 셈이다.

애런 라이가 아홉 살이던 2004년, 부친 암릭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엑스
애런 라이가 아홉 살이던 2004년, 부친 암릭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엑스

우리는 왜 애런 라이를 사랑하는가

라이는 현대 투어에서 확실히 “다른(different)” 골퍼다. 외부의 상업적 소음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진실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묵묵히 걸어간다.

동료의 신망도 두텁다. 메이저 2승의 잰더 쇼플리는 라이를 향해 깊은 존경심을 나타냈다. “그의 우승이 진심으로 기쁘다. 보통 투어에서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을 찾기는 드문데, 라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3년 전 스코티시 오픈 때 코스 내 숙소에 묵은 적이 있는데, 내가 캐디와 함께 퍼팅 연습을 하러 나가볼까 했던 오후 9시에도 라이는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고, 9시 45분에는 체육관으로 향하더라. 메이저 챔피언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사람의 몫이다.”

PGA 챔피언십 최종일 챔피언 조에서 그와 동반 플레이를 펼쳤던 루드비히 오베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돌아봤다.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결정짓는 퍼트를 남겨두고도 내 눈을 바라보며 (내가 성공한 퍼팅에) 축하를 건네는 정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패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바로 라이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팬덤 라이헤즈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라이의 모자 위 소박한 로고, 낡은 차와 단종된 드라이버 그리고 가족의 희생이 담긴 아이언 커버는 자본의 소음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인간적 의리와 스포츠 본연의 순수함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웅변한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