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대우그룹은 불가리아의 최고급 호텔 쉐라톤 소피아 지분 67%를 인수하고, 이듬해엔 현지 무역센터 지분 70%를 사들입니다.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에 선제 투자를 해 온 대우의 여러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 배경엔 김우중 회장이 보여준 ‘연결의 힘’이 있었습니다. 리비아로부터 무기 대금을 못 받은 불가리아에 대우 가전제품과 통신 인프라 기기 등을 제공하는 대신 외상 매출 채권을 매입하고, 리비아에서 원유를 받아 정산했던 ‘해결사 역할’이 그것입니다.
이번 커버스토리 ‘버핏을 홀린 日 종합상사의 화려한 귀환’은 수출 대국 일본의 성장을 견인했다가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던 종합상사의 회복 탄력성을 조명합니다. 2019년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일본 종합상사에 투자를 시작했고, 이후 지분을 늘려 현재 5대 종합상사의 지분을 각각 10% 이상 확보했습니다. 보유 지분 가치는 410억달러(약 63조3800억원)에 달해 투입 자금의 두 배에 이릅니다. 투자 수익보다 주목해야 할 건 일본 종합상사의 변신입니다.
150년 역사의 일본 종합상사는 위기를 맞을 때보다 업(業)을 바꾸는 역동적인 적응 능력으로 생존해 왔고, 지금은 투자의 귀재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처럼 경영되고 있다’고 평가할 만큼 투자의 귀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단순 무역 중개상에서 투자 플랫폼으로의 변신입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은 실물 자산을 직접 운용하고 연결해 가치 사슬을 지배하는 오거나이징 능력입니다.
이형오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제조업 수출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하자, 해외에 투자해서 지분 배당 수익을 받는 구조로 전환했다. 그 전환의 선두에 종합상사가 있었다. 지금 한국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얘기합니다. 2025년 수출이 역대 최대인 7000억달러(약 1055조6000억원)를 돌파한 한국은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K-소비재 수출 돌풍에 힘입어 올해 수출 1조달러(약 1508조원)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정부 내부에서까지 나옵니다.
잘나갈 때 최악에 대비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정학 위기로 분열된 세상의 자산을 연결하는 힘이 대체 불가한 경제적 해자(垓子)가 되는 시대, 한국 수출 고도성장기 공신이었던 한국 종합상사의 변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석유 패권의 지 지각변동 ‘에너지 다변화’ 속도 내야
이란 전쟁 장기화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로 글로벌 석유 시장이 미국과 신흥 산유국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다. 중동발 공급망 경색은 원유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상시적인 고유가 리스크를 예고한다. 이제는 중동 중심의 기존 에너지 수입선을 브라질, 가이아나 등 신흥 산유국으로 빠르게 다변화하는 핀셋 대응이 시급하다.
-조경호 증권사 애널리스트
전기 시대의 역설, 정유·화학 산업 체질 개선 시급
에너지 패권이 전기로 넘어가면서 세계 5위권의 정제 능력을 갖춘 한국 석유 안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기차 확산으로 휘발유 수요가 급감해 전체 원유 정제량을 줄이면, 의류와 포장재 등 제조업 전반의 필수 원료인 나프타 수급까지 도미노 타격을 입게 된다. 정유 업계는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석유화학 원료의 대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윤재욱 홍보 대행사 차장
AI 전력 폭증 시대, 재생에너지 공급망 강화 필수
재생에너지 생태계를 중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국내 태양광발전 비중이 일시적으로 50%를 넘어섰지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하기엔 부족하다. 중국산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원자력·천연가스 등 무탄소 기저 전원과의 정교한 조화가 시급하다.
-이영철 에너지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