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버넷 - 프린스턴대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박사, 스트로더 집중력 학교 공동 설립자, '레비아탄을 심문하다(Trying Leviathan)' 저자 /사진 프린스턴대
그레이엄 버넷 - 프린스턴대 교수,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박사, 스트로더 집중력 학교 공동 설립자, '레비아탄을 심문하다(Trying Leviathan)' 저자 /사진 프린스턴대

“학교와 일상에서 인공지능(AI)의 바람직한 사용과 부적절한 사용을 구분하는 기준을 잘 정립해야 한다. AI 도구와 ‘함께’, 또는 그것을 ‘통한’ 학습은 장려해야 하지만, AI가 인간을 대신해 학습하도록 허용하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다.”

그레이엄 버넷(Graham Burnett)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AI 시대 교육관이다. 그는 과학기술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비평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서 지식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연구한다. 1818년 뉴욕 법정에서 벌어진 ‘고래는 물고기인가’라는 과학적 분류 논쟁을 중심으로, 자연의 질서와 지식의 권위가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다룬 역사서 ‘레비아탄을 심문하다(Trying Leviathan)’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2025년 4월에는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인문학은 AI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을까?(Will the Humanities Survive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AI의 급속한 확산이 고등교육, 특히 인문학에 미치는 구조적 충격을 분석해 크게 주목받았다. 칼럼에서 그는 AI를 단순히 정보검색 도구가 아닌 ‘사유를 돕는 보조 장치’로 활용해 인문학 본연의 가치인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버넷 교수는 사람의 관심(주목)이 수익으로 직결되는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의 집중력 저하 문제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는 사람이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문해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AI 시대의 주의력 상실의 대표적인 예로 들면서 “인간다움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주의력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문제의식은 버넷 교수가 2023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비영리 교육기관 ‘스트로더 집중력 학교(Strother School of Radical Attention)’를 공동 설립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렇다고 AI 기술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생성 AI(Generative AI)가 공학과 나아가 인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도 “적절히 규제하지 않은 상업용 AI 시스템이 이미 극에 달한 ‘인간 프래킹(human fracking)’의 부작용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래킹은 땅속 깊이 구멍을 뚫고 고압으로 액체를 주입해 암석을 파쇄한 뒤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기법으로, 인간 프래킹은 사람의 시선이 곧 돈이 되는 초연결 시대에 디지털 플랫폼, 광고, 소셜미디어(SMS)가 인간의 주의력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버넷 교수는 사람이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문해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AI 시대의 주의력 상실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사진 셔터스톡
버넷 교수는 사람이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문해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점을 AI 시대의 주의력 상실의 대표적인 예로 든다. /사진 셔터스톡

AI는 이전 기술과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나.

“다양한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신중한 역사·인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적·정서적·표현적 행동 방식을 놀라울 만큼 흡사하게 모방할 수 있고,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보적인 영역으로 여겨왔던 부분에서 인간을 능가할 수 있는 기계 시스템의 부상은 인류 역사상 선례를 찾기 어렵다. 비교 대상을 찾자면 문자 발명 같은 인류 문명의 대전환 정도일 수도 있다.”

생성 AI가 대학 교육에 미친 영향에 대해 총평 부탁한다.

“오늘날 대학은 저마다 구성이 복잡하고 다채롭다. 또 교육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편차가 크다. 다른 한편에서 약 3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새로운(생성) AI는 그 자체로 다양한 종류의 역량과 투자, 실험과 응용이 어우러진 거대한 세계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늘 진실인 것이 3주 뒤에는 거짓이 될 수도 있다. 답변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답변이나, 반대로 비관적인 예언 같은 것은 쓸모가 없다는 걸 먼저 알려주려는 거다.”

그럼 AI 시대의 대학 교육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내 의견에 더해 학자·교사·과학자·예술가·학부모 등 나와 함께 일하는 많은 이의의견을 종합하면, 몇 가지 핵심적인 전제 조건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공동체에서 보장된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을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형태의 교육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금전적 보상이나 실용적인 대가가 따라오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소홀히 하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런 교육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토대이며, 인류가 함께 살아가고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기도 하다.”

그런 교육에 AI는 도움이 될까, 방해될까.

“AI 그 자체로는 도움이 되지도, 방해되지도 않는다. 의심의 여지 없이 방해가 되는 건 지난 15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기업의 수익 창출 모델로 부상한, 가차 없고 잔혹한 인간 프래킹이라는 사업 모델이다. 주의력을 착취해 인격의 핵심 요소를 상품화하는 노력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기술적으로 정교하며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프로젝트를 말하는 거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AI 알고리즘으로 대표되는) 인지적 보정 장치가 힘을 실어줬다. 이는 거대 언어 모델(LLM) 기반 생성 AI 등장에 앞서 이뤄진 것이다. 기술을 통한 집중력 착취는 이전에도 실존적 위협이었지만, 생성 AI의 등장으로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됐다.”

생성 AI가 효율적인 학습을 돕는 순기능도 있을 것 같은데.

“생성 AI가 공학과 나아가 인문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렇다면 적절히 규제하지 않은 상업용 AI 시스템이 이미 극에 달한 인간 프래킹의 부작용을 더 심화시킬까.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다.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인류의 지속적인 번영을 바라는 모두에게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근거 없는 과대 선전이나 종말론적 사고에 현혹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AI 시스템이 기기 사용 시간을 극대화하고, 점점 더 사적인 영역에까지 주의력 착취 메커니즘이 스며들게 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건 임박한 위협이 틀림없다. 공동체에서 보장된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을 돕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을 왜곡하며, 다른 뭔가를 원하도록 조종하는 초(超)지능 에이전트의 존재는 실로 심각한 위협이 틀림없다.”

프린스턴대는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앞서 언급한 도전 과제이자 기회를 학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생성 AI가 컴퓨터과학 분야의 교수법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자명하다(생성 AI 자체가 중요한 연구 주제라는 뜻). 하지만 예를 들어 영어학부의 경우 챗GPT의 확산이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전공과 무관하게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 오랫동안 추구해 온 형평성, 진정성, 탐구 정신이 생성 AI의 확산으로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퍼져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 인식과 그에 따른 대응 방향은 각 전공 분야의 특징 및 전문성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스트로더 집중력 학교의 경우는 어떤가.

“인간 집중력의 다양한 양상과 힘에 대해 탐구하고, 또 함께 모여 집중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법을 발전시켜 왔다. 이를 통해 주의력을 파괴하는 기계적이고 구조적인 인간 프래킹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AI 도구를 사용한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와 일상에서 AI의 바람직한 사용과 부적절한 사용을 구분하는 기준을 잘 정립해야 한다. AI 도구와 ‘함께’, 또는 그것을 ‘통한’ 학습은 장려해야 하지만, AI가 인간을 대신해 학습하도록 허용하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