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북 영덕 축산항에서 자랐다. 축산항에는 조선소가 있었고, 선박을 건조하거나 수리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배를 만드는 사람과 배를 운항하는 사람이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다. 어선을 새로 건조하는 것도, 고장 난 배를 수리하는 것도 모두 축산항 조선소에서 이루어졌다. 멀리 떨어진 조선소를 찾아갈 필요 없이, 같은 마을에서 선박 건조와 수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다 한국해양대에 입학하면서 다른 현실을 알게 됐다. 선박을 이용해 운송 사업을 하는 해운 산업과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조선 산업은 서로 다른 산업으로 구분돼 있었다. 해운은 선주와 선원 그리고 해운 회사가 중심이고, 조선은 조선소와 기술자가 중심이다. 행정 체계도 달라 해운은 해양수산부가, 조선은 산업통상부가 담당한다. 해양대학은 해운 산업을 이끄는 선장과 해기사를 양성하고, 조선업 전문가는 일반 대학 조선공학과에서 배출한다. 조선업이 수출산업으로 성장하면서 해운과 조선은 더 별개 영역처럼 인식됐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선주와 조선소 관계다. 이마바리 선주는 지역 조선소에 지속적으로 선박을 발주한다. 조선소는 선주 요구를 반영해 고품질 선박을 건조한다. 선주가 성장해야 조선소에 일감이 생기고, 조선소가 발전해야 선주는 더 경쟁력 있는 선박을확보할 수 있다. 양자는 서로를 키우는 관계다. 선주가 성장하면 조선소가 성장하고, 조선소가 발전하면 선주 경쟁력이 높아진다. 단순한 거래 관계가 아니라 운명을 함께하는 동반자 관계인 셈이다. 일부 조선소는 계열 선주 회사를 통해 수백 척의 선박을 보유하기도 한다.
해운과 조선이 한 지역에 집적되면 편리를 넘어 신뢰와 협력이 생긴다. 이마바리는 이러한 집적 효과가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해운과 조선은 서로 다른 산업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선주와 조선소 간 신뢰가 형성되고, 금융과 보험, 선박 관리 산업이 함께 성장할 때 경쟁력이 생긴다. 해마다 열리는 ‘선주 자택 초청 리셉션’에는 선주, 조선소, 선박 금융회사, 보험회사 관계자가 함께 모여 교류하고 우의를 다진다. 이러한 네트워크 역시 이마바리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다.
결국 일본 해양 강국의 비결은 세계 최고 조선소를 보유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주가 있고, 그 선주가 조선소를 키우며, 조선소가 다시 선주 경쟁력을 높여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데 있다. 이마바리는 그 사실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나는 어린 시절 축산항에서 보았던 바다의 원리를 다시 확인했다. 배를 운항하는 사람과 배를 만드는 사람은 원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해운과 조선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함께 성장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조선과 해운은 한 몸이다. 이마바리는 그 단순한 진리를 실천해 세계적인 해양도시가 됐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해양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