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사랑하는 모임 등 광주 시민단체가 5월 21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 등 광주 시민단체가 5월 21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스1
현대 자유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은 ‘법치(rule of law)’와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기업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이윤을 추구하고, 정부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심판 역할에 충실할 때 시장은 비로소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에서 목격되는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시장경제의 대원칙이 정치 논리에 의해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 권력이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직접 개입하고, 최고 권력자가 특정 기업의 마케팅 활동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재단하며 불매운동을 부추기는 현상은 단순한 정책적 과오를 넘어선 ‘경제의 정치화’라는 위험한 신호탄이다.
이병태 -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 서울대 산업공학,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현 KAIST 경영대 명예교수
이병태 -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 서울대 산업공학,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현 KAIST 경영대 명예교수

관치(官治) 부활: 구매 단가 개입과 '초과 이윤'이라는 환상

최근 고용노동부(노동부) 장관이 반도체 대기업을 향해 “회사 이익을 직원 및 하청 업체와 배분하라”며 납품·구매 단가 조정을 시사한 발언은 시장경제의 본질을 오해한 초법적 발상이다. 기업 경영에서 초과 이윤이란 실존하는 고정자산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기업이 시장에서 얻어낸 정당한 대가이자, 향후 닥쳐올 불황을 버텨내기 위한 생존 자금이다. 

법치국가 노동부 장관에게 기업의 사적 계약 영역인 구매 단가를 변경하라고 요구하거나 압박할 권한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는 명백한 권한 남용이자 관치 경제로 회귀다.

시장가격은 자선이나 복지의 도구가 아니다. 구매 단가는 하향 경직성이 강해 한 번 올리면 시장 상황이 악화해도 함부로 내리기 어렵다. 만약 핵심 대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때, 노동부 장관이 하청 업체를 향해 “대기업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납품 단가를 인하하라”고 강제할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기업은 크든 작든 철저히 시장가격의 질서대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사적 계약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의 가격 신호는 왜곡되고 경제의 거래 질서는 처참히 무너진다.

음모론에 갇힌 권력, 선동이 된 불매운동

‘정치권력’이 시장을 흔드는 또 다른 통로는 ‘낙인 찍기’와 ‘정서적 선동’이다.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의 특정 텀블러 광고와 사이렌 오더 시스템을 둘러싸고 권력층이 “과거의 불행한 국가적 사건을 조롱했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제기하며 사실상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과거 윤석열 정부 역시 자신들의 정책 방향과 대립하는 모든 이익집단을 공공선에 반하는 ‘카르텔’이나 ‘독과점 횡포’로 규정하는 음모론적 프레임을 남발하다 경제적 갈등만 키우고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음모론적이고 권위주의적 행태가 재출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경제계는 움츠러들어 있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특정 기업 제품을 거부하는 ‘소비자 주권 운동’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자정 작용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을 쥔 정부나 공공기관, 정치권이 배후에서 이를 주도하거나 부추기는 순간, 그것은 주권 운동이 아닌 ‘권력의 폭력’이 된다. 명백한 법 위반 행위가 없음에도 정치적·도덕적 판단만을 근거로 특정 기업에 낙인을 찍고 공공 구매나 지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다. 정부가 법 집행자가 아닌 감정적 처벌자가 되려 할 때, 기업이 기댈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은 완전히 소멸한다.

경제의 정치화가 초래할 4가지 부메랑

정부가 시장 질서를 흔들고 불매운동을 선동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가 경제와 국민 몫으로 돌아온다.

첫째, 글로벌 대기업을 타깃으로 삼아도실제 타격을 입는 이들은 가맹점주, 협력 업체, 납품 농가, 물류 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민생 계층이다. 기업을 벌하려다 무고한 이들을 처벌하는 자기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 

둘째, 글로벌 투자자는 경제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이념적 리스크로 기업의 생살여탈권이 흔들리는 시장을 극도로 기피한다. 이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급감으로 이어진다. 

셋째, 정부가 글로벌 브랜드를 겨냥해 불매를 유도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내국민대우 원칙이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해당한다. 상대국의 무역 보복을 유발해 외교적 갈등과 무역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넷째, 권력이 불매운동에 나서는 순간, 민생과 경제 이슈는 정권 지지 여부에 따른 진영 논리로 전락한다. 스타벅스 코리아에 대한 영호남의 다른 반응과 지자체 선거 결과가 이러한 부작용을 입증한다. 경제가 정치화하면 합리적인 소비 관점은 사라지고 국가 전체가 소모적인 정치 투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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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해외 사례가 주는 교훈

국가권력이 개입한 불매운동과 기업 압박의 끝이 파멸적이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2021년 중국 정부가 신장 위구르 면화 사용을 거부한 글로벌 브랜드 H&M과 나이키를 향해 관영 매체를 동원해 불매운동을 선동했을 때, 결국 수많은 중국인 매장 직원과 쇼핑몰 소유주가 일자리를 잃고 막대한 손실을 봤다. 서방 기업에 ‘중국은 정치적 리스크가 통제 불가능한 시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가속했을 뿐이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 당시 중국이 롯데그룹에 가했던 행정 규제와 불매 선동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그룹은 막대한 손실을 안고 철수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평판이 급락했고 한국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라는 역풍을 맞았다.

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선진국인 미국은 철저히 사법제도를 통해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을 차단해 왔다. 1960년대 미시시피주 주정부가 백인 상인을 두둔하기 위해 흑인 민권운동 단체의 불매운동에 막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며 사법 권력을 동원했을 때,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2년 판결을 통해 이를 뒤집었다.

“정치적 목적의 평화적 불매운동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하며, 국가권력이 사법·행정제도를 이용해 특정 집단의 경제활동을 억압하거나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 기념비적인 판결은 국가권력이 시장과 표현의 자유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민주적 기준을 세웠다.

권력은 시장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소비자는 기업 마케팅이나 사회적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지갑을 닫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자정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공적 권한과 행정 예산 그리고 사법 권력을 무기로 삼는 정치권력은 그 경계선 앞에서 철저히 멈춰 서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시장의 심판관이 아니라 선수가 되려 하고, 심지어 관중석 폭동을 유도하는 선동가가 되려 한다. 노동부 장관의 계약 개입과 대통령의 음모론적 불매 선동이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중국의 권위주의적 관치와 무엇이 다른가.

정치권력이 시장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파괴하고 기업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노동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의 쇠락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정부는 시장의 질서를 흔들지 말라. 시장은 정치의 놀이터가 아니다. 

이병태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