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글로벌 경제학계가‘유럽 쇠퇴론’을 두고 전례 없는 정면 충돌을 벌이고 있다.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2024년 말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발간한 ① ‘유럽 경쟁력 보고서’다. 그는 보고서에서 유럽연합(EU)의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1993년 22%에서 2023년 기준 17%로 추락한 반면 미국은 26%를 고수하고 있으며, 세계 50대 테크 기업 중 유럽 기업은 단 네 개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지표를 던졌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주도한 디지털·인공지능(AI) 혁신에서 완전히 밀려난 유럽이 구조적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러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국가별 물가 차이를 반영한 ②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GDP로 보면 유럽(프랑스·독일 등)은 미국의 약 80~85%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인보다 연간 약 300~400시간을 덜 일하는‘자발적 여가’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생활수준(경제 후생)과 후생은 미국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정보통신(IT) 혁신의 결과물을 유럽은 자유무역을 통해 값싸게 수입해 누려왔기 때문에 직접 혁신하지 않아도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일명‘크루그먼의 역설’이다. 하지만 유럽의 이런 무임승차형 번영은 치명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최근 들어 나오고 있다. 유럽의 심장인 독일 경제가 2019년 이후 0%대 성장률을 기록 중인 장기 침체(stagnation)에 빠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위기는 미국이 아닌 중국의 부상과 직결돼 있다. 2023년 중국이 처음으로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올라선 데 이어 유럽의 대중국 무역 적자는 2025년 기준 3000억유로(약 539조원)를 기록했다. 필자는 경제성장과 경제 후생을 철저히 구분해 봐야 한다며 EU가 혁신 없이도 미국 실리콘밸리가 이룩한 기술적 과실을 수입해 누리며 풍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무임승차 구조가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독일 정부가 시도하는 근로시간 연장 같은 단기적인 노동 공급 확대 정책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기술 최전선에서 직접 혁신하고 경쟁할 수 있는 자체 혁신 역량을 복원하는 것만이 EU의 경제 번영을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이라는 의미다.
유럽의 장기 번영은 더 오래 일하는 데 있지 않다. 기술 최전선에서 혁신하고 경쟁할 능력을 되찾는 데 달려 있다. /사진 셔터스톡
유럽의 장기 번영은 더 오래 일하는 데 있지 않다. 기술 최전선에서 혁신하고 경쟁할 능력을 되찾는 데 달려 있다. /사진 셔터스톡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크루그먼 교수가 의미 있는 논쟁에 불을 지폈다. 드라기 전 ECB 총재이자 전 이탈리아 총리가 2024년 유럽 경쟁력 보고서에서 내세운 ‘유럽 쇠퇴론’이 과연 맞느냐는 문제 제기다. 크루그먼 교수는 여러 칼럼에서 유럽의 GDP를 명목 GDP가 아닌 현재 PPP 가격, 즉 나라별 물가 차이를 반영해 조정한 GDP로 따져보면미국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누가 더 잘사느냐를 보려면 소득의 구매력, 곧 현재 PPP 가격으로 환산한 1인당 GDP를 따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 잣대로 보면 유럽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데 크루그먼 교수 본인도 인정했다시피, 여기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명목 GDP 성장률에서 드러나듯 생산성 증가율이 한참 낮은데도 어떻게 유럽인이 미국인 못지않게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명목 GDP는 노동시간당 산출량을 측정하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보여준다. 드라기가 강조한대로 미국 생산성 증가의 견인차는 단연 실리콘밸리다. 미국은 첨단 IT 제품을 만들면서 소비하지만, 유럽은 만들지 않고 사다 쓰기만 한다. 실리콘밸리를 빼고 보면 두 지역의 생산성 격차는 거의 사라진다. 이..

이코노미조선 멤버십 기사입니다
커버스토리를 제외한 모든 이코노미조선 기사는
발행주 금요일 낮 12시에
무료로 공개됩니다.
멤버십 회원이신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