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코다(미국)가 6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81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AP연합
넬리 코다(미국)가 6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리비에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81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명문 리비에라 컨트리클럽(Riviera Coun-try Club·이하 리비에라).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이 유서 깊은 코스에서 사상 첫 US여자오픈의 우승자가 가려지려는 순간이었다. 

6월 7일(이하 현지시각) 펼쳐진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 홀(파4) 그린 위. 세계 랭킹 1위 넬리 코다(미국·28) 앞에는 불과 86㎝ 거리의 파 퍼팅이 남겨져 있었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성공할 거리였지만, 이 순간은 달랐다. 이 퍼트가 들어가면 리비에라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챔피언이라는 이름과 함께 생애 첫 US여자오픈 우승이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코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퍼퍼터를 떠난 공은 긴장 탓인지 다소 불안하게 굴러갔다. 공은 홀 왼쪽 가장자리를 맞고 아슬아슬하게 컵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순간, 리비에라를 가득 메운 갤러리의 숨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공은 끝내 홀 안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리비에라는 폭발적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코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수차례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US여자오픈과의 악연을 마침내 끊어낸, 10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눈물의 승리였다.

우승을 확정한 코다는 갤러리의 환호에 답하며 18번 홀의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그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세월의 흔적을 담은 진한 갈색의 벤 호건(Ben Hogan) 흉상이 코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리비에라는 1940년대 전설적인 골퍼 벤 호건이 이 코스에서만 통산 세 차례 우승을 차지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골프계에서 ‘호건의 골목(Hogan’s Alley)’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동상 아래 기단에는 이 유서 깊은 전장에서 왕관을 썼던 역대 우승자의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2026년 창립 100주년이라는 상징적인 해, 그 명단에는 마침내 처음으로 여성 챔피언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 주인공은 코다였다. 

"경기장이 곧 선수의 위상"

“골프라는 스포츠에서 대회가 개최되는 장소가 어디냐는 문제는 선수 위상과 직결되는 핵심적인 가치다. 여자 선수가 이런 역사적인 무대에서 경쟁하게 될수록 여자 골프 전체의 위상도 함께 높아진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은퇴한 뒤 골프 해설가로 활약하는 모건 프레셀(미국·38)은 대회 개막 전, 리비에라의 상징적인 1번 홀 페어웨이에서 감격에 찬 목소리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프레셀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 골퍼는 오랫동안 여자 골프가 남성 골프가 선점해 온 역사적인 무대와 전통에서 부당하게 소외되어 왔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실제로 박인비, 신지애와 동갑인 프레셀이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만 해도, 여자 골프는 세계 최고 선수가 경쟁하는 무대였음에도 남자 메이저 대회가 누리는 상징적인 개최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USGA(미국골프협회)를 비롯해 여자 골프 메이저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구태의연한 관행을 과감히 깨부수고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존 보든해머 USGA 챔피언십 책임자는 “약 8~9년 전부터 우리의 핵심 전략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자 선수에게도 미국 최고의 역사적 골프 코스에서 플레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USGA는 그 철학에 따라 2023년 US여자오픈을 남자 US오픈의 단골 개최지로 유명한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에서 처음 개최하며 변화를 본격화했다.

향후 예정된 US여자오픈 개최지 명단에는 인버네스, 오크몬트, 파인허스트, 오클랜드 힐스, 메리언, 시네콕 힐스 등 이름만으로도 골프 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최고의 명문 코스가 대거 포함되어 있다. 프레셀은 이에 대해 “스포츠에서 평등과 형평성을 논하려면 결국 선수가 밟는 경기장 수준을 이야기해야 한다. 여자 선수가 마침내 그 거대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비에라 컨트리클럽 전경. /사진 미국골프협회(USGA)
리비에라 컨트리클럽 전경. /사진 미국골프협회(USGA)

현대차와 타이거 우즈 그리고 전설들이 숨쉬는 무대

리비에라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특급 대회인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Gen-esis Invitational)’이 매년 열리는 곳이다. 현대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타이거 우즈가 호스트를 맡아온 대회다. 이 대회에는 PGA투어의 스타 선수가 빠짐없이 참가해 성가를 높여왔다. 

올해 US여자오픈에 참가한 선수는 남자 선수들이 수십 년 동안 누려온 역사적 공간을 처음으로 온전히 경험했다. 같은 라커룸을 사용했고 같은 피트니스 시설에서 몸을 풀었다. 리비에라의 악명 높은 10번 홀 공략법을 놓고 남자 선수처럼 고민했다. 일부 선수는 PGA투어 친구들에게 리비에라 공략법을 묻기도 했다.

또 16세의 타이거 우즈가 프로 무대 첫 티샷을 날렸던 상징적인 1번 홀 티잉 구역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수많은 챔피언이 걸어 올랐던 18번 홀 뒤편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리비에라가 품은 역사를 체감했다.

여자 골프는 이제 유서 깊은 전통의 코스를 메이저 무대로 끌어안으며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한 세기 넘게 남성 중심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골프계의 상징적 무대도 차례로 여자 선수에게 문을 열고 있다. 로열 트룬은 2020년, 뮤어필드는 2022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문을 열었다.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2007년 처음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개최하며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올드코스는 로레나 오초아, 스테이시 루이스, 리디아 고 등 시대를 대표하는 챔피언을 배출하며 여자 골프 역사에서도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주요 골프 단체가 앞다퉈 여자 메이저 대회를 명문 코스에 유치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PGA 여자 챔피언십을 주관하는 PGA 오브 아메리카는 콩그레셔널, 헤이즐틴, 베스페이지 블랙 등 세계적인 난코스를 준비하고 있으며, AIG여자오픈(옛 브리티시 여자오픈)을 주관하는 R&A도 2027년 잉글랜드 켄트주의 로열 세인트조지스 골프클럽에서 대회를 개최한다. 로열 세인트조지스는 디 오픈 챔피언십의 전통적인 개최지 가운데 여자오픈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대표적인 코스다. 2027년 대회는 이곳에서 열리는 첫 번째 여자 메이저 대회로, 여자 골프가 또 하나의 역사적 성역의 문을 여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우승자와 무대 관계는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하다. 농구 선수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승리하는 꿈을 꾸고, 팝스타가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최고의 영예로 여기듯, 골프 선수에게도 유구한 역사가 깃든 장소에서의 우승은 의미가 특별하다. 위대한 선수와 위대한 무대는 서로를 빛내며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간다. 

리비에라에서 열린 첫 US여자오픈은 그 변화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벤 호건의 흉상 아래 새겨진 코다의 이름은 단순한 우승 기록이 아니라, 여자 골프가 오랫동안 닿지 못했던 역사적 무대에 마침내 자기 자리를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다.

지난 20여 년 동안 US여자오픈을 비롯한 메이저 무대를 호령했던 한국 여자 골프가 옛 위상을 되찾는다면, 언젠가 리비에라와 시네콕 힐스, 로열 세인트조지스 같은 역사적인 무대에서 다시 태극기가 펄럭이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