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韓美) 과학자들이 막 수정된 인간 배아에서 유전 질환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문제가 된 유전자 전체를 잘라냈다면 이번에는 그중 일부분인 염기 하나만 바꿨다. 문장 전체를 바꾸지 않고 오타 한 글자만 수정한 셈이다.
디터 에글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연구진은 “초기 단계의 인간 배아에서 심장병과 빈혈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염기를 안전하게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6월 1일(이하 현지시각)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우재성 기초과학원연구원(IBS) 바이오 분자 및 세포 구조 연구단 그룹장, 배상수 서울대 의대 교수 등 국내 연구진도 참여했다. ‘사이언스’는 해당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네이처’에 투고돼 심사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유전자 교정은 자칫 엉뚱한 곳을 잘라낼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번처럼 정밀 교정이 가능해지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다. 과학계는 치명적인 유전 질환을 출생 전에 치료할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영화 ‘가타카’에서 그린 미래 사회처럼 지능이나 외모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맞춤형 아기를 낳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유전자의 문장 대신 글자 하나만 바꿔
에글리 교수 연구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직후 2세포로 분화한 인간 배아에서 PCK9와 HBG1, HBG2 유전자를 교정했다. PCK9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심장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HBG1과 HBG2 유전자는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생성에 관여한다. 연구진은 HBG 변이 유전자를 교정하면 겸상적혈구빈혈증이나 지중해빈혈 같은 혈액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한 사례가 있다. 중국 선전 남방과기대의 허젠쿠이 박사는 2018년 배아 단계에서 에이즈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교정해 건강한 아기 세 명이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사용한 방법은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였다. 연구 목적이 아니라 태아의 유전자를 교정하고 출산까지 시키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허 박사는 이 일로 중국에서 3년간 복역했다.
당시 유전자 교정과 이번 염기 교정은 차원이 다르다.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는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내는 바람에 유전자 교정 과정에서 잘못된 부위가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오류를 부를 수 있다. 에글리 교수는 염기 교정이라는 차세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이런 문제를 차단했다.
DNA는 인체의 모든 생명 현상을 관장하는 일종의 설계도다. 지퍼처럼 두 가닥이 서로 맞물려 이중나선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지퍼의 이에 해당하는 것이 A(아데닌)·G(구아닌)·C(시토신)·T(티민) 네 종류의 염기다. 유전병은 이 염기의 순서가 정상과 달라서 생긴다. 에글리 교수는 배아의 세 가지 유전자에서 A 염기를 G로 바꿨다. 연구진은 염기를 교정한 인간 배아를 착상 전 단계인 수정 5~6일째 배반포까지 배양했다.
일부만 성공, 임상 적용은 시기상조
유전자 교정은 이미 성인 대상으로 유전 질환 치료 기술로 승인받았다.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겸상적혈구빈혈증에 대한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교정 치료법을 승인했다. 2025년 미국에서는 생후 7개월 아기에게 세계 최초로 맞춤형 유전자 교정을 시도해 희소 유전 질환을 치료했다.
하지만 아직 배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은 차원이 다르다. 성인에게서는 유전자 교정이 모든 세포에서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 질환의 경우 간세포의 5분의 1만 제대로 교정돼도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배아는 나중에 인체의 모든 세포로 분화하기 때문에 유전자 교정이 완벽해야 한다.
이번 연구 결과도 이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PCK9 유전자는 배아 세포 25개 중 19개에서 염기 A가 G로 바뀌는 염기 교정이 이뤄졌다. 4분의 3이 성공한 것이다. PCSK9 주변에서는 원치 않는 다른 염기가 바뀌거나 삽입, 결실은 없었다.
반면 HBG1 유전자는 세포의 52%, HBG2는 68%에서 염기 교정이 이뤄졌다. 원치 않은 변화도 나타났다. HBG1에서 G가 하나 또는 두 개 추가되는 변화가 발견됐다. 세포마다 유전자가 다른 모자이크 배아가 된 것이다. 이 상태에서 아기로 자라면 염기가 교정된 세포와 그렇지 않은 세포가 공존하게 된다. 에글리 교수는 “이번에 염기 교정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보다 더 정밀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면서도 “다른 곳을 바꾸거나 모자이크 배아 문제가 남아 있어 임상 적용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아기 개량에 악용될 수도” 우려
과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두고 찬반 의견이 대립했다. 엠레 세리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는 6월 5일 ‘네이처’에 “이번 연구는 배아 유전자 교정 분야를 발전시킬 잠재력이 있는 개념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호주 시드니대의 그렉 닐리 교수도 “이번 연구는 이전 방법보다 덜 무모하고, 더 신중하며 윤리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의 표도르 우르노프 교수는 “이미 체외수정과 유전자 검사가 유전 질환 방지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아기 개량’을 위한 유전자 교정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는 에글리 교수가 ‘맞춤형 아기’를 추진한다고 의심받는 배아 검사 업체와 협력해 논란을 더 불렀다고 전했다. 체외수정 배아 검사 업체인 지노믹 프리딕션은 이번 연구 논문에 자사 연구원 세 명을 공저자에 올렸다.
또 다른 배어 검사 업체인 뉴클리어스 지노믹스도 같이 연구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2025년 11월 뉴욕 지하철에 “최고의 아기를 낳으세요”라는 광고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회사 대표는 지능이나 키 같은 특성은 수많은 유전자의 복합적인 작용에 영향받기 때문에 염기 교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