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학회 부회장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 현 대한골다공증학회 부회장

회사원 A씨는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린다. 그러나 마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심한 아랫배 통증으로 근무는커녕 서 있기도 힘들어서 도저히 업무를 보지 못하고 주위 사람에게 짜증만 늘 뿐이다. 이런 자기 모습에 자괴감이 들어 우울증이 생길 정도다.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자궁내막증이라고 했다.

최근 젊은 여성 사이에서 자궁내막증 환자가 가파르게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은 환자는 2020년 약 15만3000명에서 2024년 20만8000여 명으로 최근 4년 사이 36%나 늘었다. 가임기 여성 약 10%가 자궁내막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자궁내막증이 이렇게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만혼과 출산 나이의 지연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임신과 수유 기간에는 배란이 억제되고 월경이 중단돼 자궁내막 조직은 쉴 수 있지만, 최근 초경이 빨라지고 임신 횟수가 줄어듦에 따라 평생 경험하는 총월경 횟수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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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내막증이란 자궁 안쪽을 덮고 있어야 할 정상적인 내막 조직이 자궁을 벗어나 난소, 나팔관, 복막 등 다른 곳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만성적인 전신 염증 질환이다. 엉뚱한 곳에 자리 잡은 내막 조직도 정상적인 자궁내막과 마찬가지로 여성 호르몬의 변화에 반응해서, 매달 생리 때가 되면 이 조직도 함께 증식하고 출혈을 일으킨다.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피가 안에 고이면서 주변 조직에 극심한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고 장기를 서로 들러붙게 하는 유착을 초래해 결국 불임으로 연결된다. 난임 환자의 약 25%에서 50%의 여성이 자궁내막증을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자궁내막증의 가장 대표적인 3대 증상은 진통제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중증의 생리통, 깊은 성교통 그리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골반통이다. 그러나 병변의 해부학적 범위나 심각도가 환자가 느끼는 증상의 심각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 중 3분의 1은 일상생활에서 뚜렷한 통증을 느끼지 못하다가 나중에 난임 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기도 한다.

가장 흔하게 생기는 부위는 난소다. 나팔관에서 생리혈이 역류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어서, 난소 내부에 자궁내막 조직이 증식하여 오래된 혈액이 고이는 낭종을 형성한다. 초콜릿색의 점액질 액체를 포함하고 있어 흔히 ‘초콜릿 낭종’으로 불린다. 그러나 심한 경우, 복막 표면을 넘어 기저 조직으로 5㎜ 이상 깊게 파고들어 결절을 형성하며, 직장·질·자궁천골인대·방광 등을 광범위하게 침범해 극심한 통증과 심각한 내부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자궁내막증을 진단할 때 산부인과 초음파검사를 가장 먼저 시행하지만, 심부 장기에 자궁내막증이 생겼다고 의심되면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한다. 과거에는 증상이 심하면 개복술로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적 치료에 많이 의존했다. 하지만 수술 후 5년 내 재발률이 약 40%에 달할 정도로 예후가 까다로운 편이다. 따라서 1차 치료는 약물 치료로, 복합 경구피임약이나 황체호르몬 제제를 투여해 배란을 억제하고 체내 에스트로겐 수치를 낮춤으로써 병변의 생존과 증식을 억제하고 통증을 제어한다. 특히 4세대 황체호르몬 제제인 디에노게스트(Dienogest)를 장기간 복용해 병변의 증식을 억제하는 보존적 약물 치료가 수술을 대체하며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약물 복용 중에는 임신할 수 없고, 장기간 복용 시 골밀도가 떨어질 수 있어 지속적이고 세심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