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前漢) 무제(武帝) 때는 당(唐)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집권기에 못지않은 혹리(酷吏)의 극성기였다. ‘사기(史記)’의 ‘혹리열전’에 등장하는 혹리의 대다수는 무제 때 사람이다. 그 뒤 권신 곽광(霍光)이 섭정한 소제(昭帝) 10여 년 동안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한서(漢書)’의 ‘혹리전’에는 ‘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무제 때 혹리들의 잔인한 행태에 이어 이 시기에 위세를 떨친 전광명(田廣明) 등의 활동이 기록돼 있다.
선제(宣帝)가 즉위하자, 사법 수장 정위(廷尉) 바로 밑의 정위사(廷尉史) 노온서(路溫舒)가 상소로 이 문제의 시정을 건의했다. 덕치의 숭상과 형벌의 완화를 요지로 하는 이 글은 ‘상덕완형서(尚德緩刑書)’로 불린다.
노온서는 시작을 신중히 해서 전대의 과실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과거 진(秦)의 열 가지 잘못 중에서 아직도 한 가지가 남아 있으니 바로 형벌의 잔혹함이라고 지적했다. 인의를 천시하고 가혹한 형벌을 능사로 삼은 진나라는 “바른말 하는 사람을 조정에 대해 비방한다고 탄압하고, 잘못을 가로막는 사람은 요사스러운 말을 한다고 처벌했다(正言者謂之誹謗, 遏過者謂之妖言)”고 규탄했다. 그 결과 충직하고 선량한 말은 모두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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