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자체의 흥미를 강의하며 긍정심리학적인 태도를 곁들이면, ‘그게 정신 승리 아니냐’는 학생이 있다. 긍정을 강조하는 인기 채널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허탈해지는 느낌을 함께 얘기하기도 한다. 아마 현실에 적용할 때 뭐가 빠졌는지 알고 싶은 모양이다.
극한 직업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그 느낌이 더 도드라진다. 기업에서도 다양한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육체노동이라 위험하기도 하다. 옆에 동료가 있어도 각자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너무 힘들어서 자기 몫을 처리하기도 버거워서 그렇다. 하지만 일사불란하다. 필요할 때는 손짓으로 대화하기도 한다. 사무실에도 그런 환경이 있다. 자동화 설비의 지표, 경쟁 기업의 온라인 행사, 심지어 진상 고객 등장까지. 생각지 못한 상황과 급박한 대응으로 진이 빠진다. 그런 일터는 전쟁 같다.
리더는 그 환경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더가 한때 동료였다면 그들의 형, 언니지만, 외부에서 온 리더는 극한 상황을 함께 겪은 한 식구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먼지 밥, 기름밥을 함께 먹지 않았다는 게 정서 격차라면, 규정을 반복하고 심지어 일하는 데 걸림돌처럼 느껴진다는 게 체감 격차다.
현대 조직의 리더는 수시로 피드백을 줘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통찰을 절제한다. 리더는 평소 훈련을 믿고 구성원에게 맡겨 놓는다. 매뉴얼이 중요해도 어디까지나 기본 지침일 뿐, 돌발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그걸 활용할지는 그들의 판단에 맡길 때 더 효과적이다. 아이가 경기할 때 부모는 지켜보는 것이 나은 것과 같다. 관중석에서 소리 질러 봐야 주눅만 든다. 언제 달음박질할지 결정은 그들의 몫이고, 마지막 킥은 혼자 차야 한다.
오히려 팀원 간 쌍방향 소통이 관건이다.일상 환경에서는 일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주의가 분산되고 관계를 해치는 말실수도 나온다.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 하지만 극한 환경에서는 같은 상황에 있는 그들끼리 대화가 센스메이킹(sensemaking)이 된다. 리더에게 ‘이거 제가 결정해도 되나요?’라고 묻게 하는 순간, 이미 지휘는 실패한 것이다. 기민한 판단과 헤쳐 나가는 방법은 그들끼리의 소통에서 나온다.
그런 일터에서 리더의 존재감은 무엇일까. 결과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는 존재일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고도 결국 끝난다. 관건은 종결에 대한 믿음이다.
베트남전쟁의 미군 포로 중 곧 풀려날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군인은 버티지 못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풀려날 거라고 기대하며 인식을 바꿨지만, 그날이 지나자 좌절했다. 반면, 오랜 포로 생활에서도 살아남은 자는 힘든 현실을 직시했다. 대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결국 이긴다는 믿음으로 현실을 견디는 전략을 만들었다. 함께 포로 생활을 했던 스톡데일 장군이 관찰한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다.
극한 일터에서 구성원을 견디게 하는 힘은 상응하는 보상일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건 일관된 기준이 작동한다는 믿음이다. 바깥의 리더는 그걸 약속하고, 구성원은 일관된 메시지를 믿는다. 그들은 거기에 정신줄을 묶는다. 체험으로 인정한 리더의 약속은 시간의 지평을 넓힌다. 리더의 비전은 미래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친 일터에서는 긍정적 인식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실체로 작동하는 소망이 무너지면 구성원은 서로 소통하는 유기적인 움직임보다 개별 활동을 하게 된다. 사회든 조직이든 구성원이 비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믿음이 견고한 사회에서 구성원은 극한 환경을 연단의 과정으로 보며 인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