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신네콕 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26회 US오픈에서 우승한 미국의 윈덤 클라크가 부친 랜달 클라크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6월 21일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신네콕 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26회 US오픈에서 우승한 미국의 윈덤 클라크가 부친 랜달 클라크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골프는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다.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어도 좋은 샷에는 박수를 보낸다. 응원하는 선수가 아니어도 어려운 파 세이브에는 탄성을 내뱉는다. 우승을 바라지 않을 수는 있어도 실수를 응원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골프는 그런 스포츠다.

시네콕힐스의 기묘한 분위기

6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신네콕 힐스 골프클럽. 제126회 US오픈 최종 라운드가 열린 이날, 윈덤 클라크(33·미국)는 골프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경험을 했다.

2번 홀(파4) 티샷이 왼쪽 러프로 향하자, 갤러리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이라도 열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직 우승 경쟁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클라크는 여전히 6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관중은 그의 성공보다 실수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4번 홀(파4)에서는 한 관중이 대놓고 외쳤다. “윈덤, 무너지지 마 친구(Don’t choke, buddy)!”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결국 그는 퇴장당했다. 하지만 분위기는바뀌지 않았다. 골프채널 해설위원 스마일리 코프먼은 중계 도중 이렇게 말했다. “오늘 갤러리에서 ‘벙커로 들어가라(Get in the bunker)’는 소리를 50번은 들은 것 같다.”

10번 홀(파4)에서는 더욱 기묘한 장면이 나왔다. 클라크는 60야드 거리에서 친 피치샷을 홀 1m 남짓 거리에 붙이며 이날 첫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보통이라면 환호와 박수가 쏟아질 만한 샷이었다. 하지만 박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메이저 대회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현장 분위기는 비호감을 넘어 적대감에 가까웠다.

클라크의 멘털 코치인 줄리 엘리언은 경기 도중 8번 홀 이후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이날 분위기는 25년 넘게 정상급 선수를 지도한 베테랑 심리 코치조차 잠시 경기를 떠나고 싶게 했다. “골프장에서 별의별 일을 다 봤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골프채널 해설자 브랜들 챔블리는 “미국선수가 미국 땅에서 이렇게 심한 야유를 받는 모습은 처음 본다. 메이저 대회에서 한 선수가 이런 수준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견뎌야 했던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클라크는 최종 합계 4언더파 276타를 기록하며 샘 번스(미국)를 1타 차로 제쳤다. 우승 상금은 450만달러(약 67억8555만원). 2023년 로스앤젤레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US오픈 우승이자, PGA투어 통산 5승째였다.

사랑받던 선수에서 악당으로

사실 클라크는 사랑받던 선수였다. 대학 시절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고, 깊은 슬럼프를 극복하며 PGA투어 정상까지 올라온 이야기는 많은 팬의 공감을 얻었다. 2023년 US오픈 우승 당시에도 그는 미국 골프가 반기는 새로운 챔피언이었다. 

190㎝에 가까운 큰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쾌한 장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좋아진 쇼트게임 그리고 꾸준히 성장하는 경기력까지. 미국 골프는 타이거 우즈 이후 새로운 스타를 기다리고 있었고, 클라크는 그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2025년 오크몬트 US오픈에서 컷 탈락한 뒤 라커 룸 시설을 파손했다. PGA 챔피언십에서는 클럽을 집어던지는 장면이 공개됐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미국 언론은 그를 ‘핫헤드(hothead)’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혈질’ 이미지가 빠르게 굳어졌다. 그리고 갤러리는 그것을 기억했다. 흥미로운 점은 클라크 자신도 팬이 등을 돌린 것이 자기 행동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것이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 US오픈 최종 라운드는 사실상 원정 경기와 다름없었다.

같은 조에는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가 있었다. 팬은 셰플러가 역전 우승에 성공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는 드라마를 원했다. 사실 관중이 모두 클라크를 싫어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셰플러의 역전 우승이라는 더 큰 드라마를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응원과 적대감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어느 순간 셰플러를 응원하는 마음은 클라크의 실패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했고, 그는 어느새 주인공이 아니라 넘어져야 할 장애물이 되어 있었다. 셰플러 역시 경기 후 관중 반응이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는 “공이 그린을 벗어날 때마다 환호성이 들리는 것은 조금 과하다고 느꼈다”며 “그런 환경은 누구나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클라크가 보여준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윈덤 클라크가  6월 21일 미국 뉴욕주 신네콕 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26회 US오픈 4라운드 6번홀에서 샷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윈덤 클라크가 6월 21일 미국 뉴욕주 신네콕 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26회 US오픈 4라운드 6번홀에서 샷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경주마처럼 레인만 보고 달려라

사실 클라크의 가장 큰 적은 러프도, 바람도, 경쟁자도 아니었다. 자기 감정이었다. 멘털 코치 엘리언은 오래전부터 클라크에게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훈련을 해 왔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그녀는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떠올리라고 조언했다.

옆을 보지 말 것. 관중을 보지 말 것. 순위를 보지 말 것. 자기 레인만 달릴 것.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그녀가 클라크에게 반복한 메시지였다. 클라크는 그것을 실천했다. 관중의 야유가 들릴 때마다 캐디 데이브 펠레쿠다스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누군가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면 웃으며 말했다. “오,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나 보네.” 그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감정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일종의 대응 방식이었다.

16번 홀(파5·542야드)은 이번 대회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티샷이 깊은 페스큐 러프로 향했다. 갤러리는 다시 술렁였다. 하지만 클라크는 서두르지 않았다.

안전하게 페어웨이로 공을 꺼낸 뒤 세 번째 샷을 홀 7m 남짓 거리에 붙였다. 그리고 버디 퍼트를 집어넣었다. 이번 대회 마지막 34개 홀 동안 넣은 가장 긴 버디 퍼트였다.

그 순간만큼은 관중 대신 자신이 자기를 응원했다. “골프를 하면서 나 자신을 위해 그렇게 크게 소리친 적은 처음이었다.” 클라크는 포효했다. 17번 홀(파3)에서 3퍼트 보기로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위기를 넘긴 것이 우승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18번 홀(파4)에서는 긴 첫 퍼트를 홀 가까이에 붙인 뒤 침착하게 파를 지켜냈다. 

미움받아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

우승 직후 셰플러의 캐디 테드 스콧은 클라크를 오래 안아주며 말했다. “정말 대단했다. 아무도 너를 응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끝까지 싸워 이겨낸 것은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번 US오픈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인지 모른다. 이번 우승은 미움받을 용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클라크는 자기 행동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종류의 용기를 보여줬다. 미움받아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

아무도 자기를 응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 실수를 환호하는 관중 앞에서도 다음 샷에 집중할 용기. 자기가 만든 과거의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

스포츠는 흔히 상대를 이기는 이야기로 기록된다. 그러나 더 어려운 승리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신네콕 힐스에서 클라크는 미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살고 있던 또 다른 윈덤 클라크를 이겨냈다.

클라크는 우승 후 “악역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라며 웃어 보였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