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황강 마실길은 강물을 옆에 두고 걷는 길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시를 남긴 함벽루(涵碧樓)에서 잠시 앉아 쉬어가도 좋고, 천년을 이어온 해인사 장경각 앞에서 고려인의 지혜에 잠겨도 좋다.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고령 분기점을 빠져나올 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워낙 기세 좋게 내리더니 10분도 안 돼 거짓말처럼 그쳤다. 경상남도 합천 읍내에 들어서자, 빗물을 잔뜩 머금은 나뭇잎이 반짝이고 있었다. 황강가에 차를 세웠다. 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희미하게 청량한 오이 향취가 나는 듯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강의 향기일 것이다. 지도에서 볼 때보다 강폭이 훨씬 넓었다. 제방 아래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이 보였다.
강이 품은 천년의 기억
합천에 온 이유는 황강 마실길을 걷기 위해서다. 황강은 거창 삼봉산(1254m)에서 발원해 깊은 산골짜기를 굽이굽이 흘러 합천 읍내를 지나 낙동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길이는 약 111㎞. 마실길은 이 황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로 모두 네 개 코스로 나뉜다. 이름 그대로 ‘마실 나가듯’ 편안한 길이어서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이면 충분하다.
1구간은 합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설 운동장까지 이어지는 2.78㎞ 수변 산책로다. 황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 보면 합천 8경의 하나인 함벽루와 마주친다.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합주지주사 김영돈이 처음 세웠다. 함벽은 ‘아름다운 푸른 산천에 젖어있다’는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그대로 황강으로 내려앉는 위치에 서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같은 조선의 내로라하는 문인이 이곳에 글을 남겼고, 누각 뒤 바위에 새겨진 ‘함벽루’ 세 글자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함벽루에 올라서면 황강이 정면으로 펼쳐진다. 평일 오전에도 누각에는 두 할머니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식 이야기, 이웃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강바람에 실려 흘러갔다. 조선의 문인이 이 자리에서 시를 짓던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다.
함벽루 뒤편으로 걸어가면 연호사가 나온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세워진 절로, 해인사보다 무려 159년 앞선 고찰이다. 대야성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호국 사찰이다. 경내는 소담하지만 절 뒤쪽에서 내려다보이는 함벽루와 황강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해 질 무렵이면 산그림자가 강물 위에 내려앉는다.
계절마다 빛이 바뀌는 길
3구간은 핫들생태공원을 지난다. 2만㎡(약 6000평) 규모의 작약 밭이 봄이면 붉게 물드는 곳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작약 군락지로, 꽃이 절정일 때 찾아가면 입이 벌어진다. 가을이면 메밀꽃이 눈처럼 새하얗게 핀다. 계절마다 색이 다른 공원이다.
4구간은 갈마산을 넘어 황강레포츠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갈마산은 목마른 말이 황강 물을 마시는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붙여진 이름이다. 정상까지 900m 남짓, 짧은 거리지만 정상 부근에서 황강이 읍내를 크게 휘감아 도는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황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다. 얕게 흐르는 강물 위에 돌을 놓아 건너는데, 한여름이면 징검다리 위에 서는 것만으로도 발밑으로 시원한 기운이 올라온다.
합천에서 태어난 시인 박태일은 황강을 노래한 연작시를 남겼다. 그 시에는 구불구불 흐르는 강과 강변 모래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황강은 합천 사람의 기억이고 풍경이고 삶이다.
'황강 물 굴불굴불 황강 옥이와 귀엣말 즐겁습니다/ 이모와 고모가 한 동기를 이루며 늙어간 버들골로/ 물안개는 디딜 데 없이 아득하였습니다.'
팔만의 경판이 전하는 말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가 있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된 절로,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한국 3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장경각이다. 고려대장경 8만1258장이 750여 년째 보관된 건물이다. 창문의 방향과 크기를 달리해 자연 바람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바닥에는 소금과 숯을 섞은 흙을 다져 무균 상태를 유지한다. 냉난방 장치 하나 없이 천년 가까이 경판을 지켜온 우리 선조의 지혜다. 경판에 새겨진 글자만 5200만여 자. 손으로 새기고 눈으로 교정한 사람이 이 수치 뒤에 있다. 1995년 장경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2007년 고려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각각 등재됐다.
필름 속으로 들어선 거리
합천영상테마파크는 1920~80년대 경성과 서울 거리를 재현한 오픈 세트장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평양 전투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 계기가 되어 세트장 규모를 확장하면서 테마파크로 만들었다. 이후 ‘암살’ ‘택시운전사’ ‘밀정’ ‘박열’ 같은 굵직한 영화와 드라마 ‘각시탈’, 최근작인 ‘정년이’ ‘수사반장 더 비기닝’까지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영화·드라마가 이 세트장을 거쳐 갔다.
세트장 면적은 7만4629㎡. 1930년대 경성부 시가지부터 1960~80년대 서울 소공동 거리, 전쟁으로 무너진 평양까지 다양한 시대가 한 공간에 펼쳐진다. 전차와 증기기관차같은 소품도 6200여 점에 달한다. 전주한옥마을이나 서울의 고궁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게 유행인데, 이곳에선 교복과 교련복을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중년이 많다.
다시 함벽루다. 기둥에 등을 기대어 황강을 바라본다. 강물이 낮게 빛나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걷고, 천년의 세월을 품은 절집을 돌아보고, 경판에 새겨진 수천만 자의 이야기와 마주하고, 오래된 거리를 거닐다 보면 합천은 거창하지 않아도 여행이 이토록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도시. 그래서 떠나고 나서도 오래 남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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