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시인 김춘수는 자신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이름이 없을 때 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몸짓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얻는 순간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고 의미 있게 된다.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공황장애, 번아웃,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이름이 없던 시절에는 개인의 나약함이나 성격 문제로 치부됐다. 그런 정신 상태가 이름을 얻자, 비로소 치료와 돌봄의 대상이 됐다.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아차리고, 적절한 도움을 요청하게 하는 시작이다.
일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다이라 고겐(平光源) 작가가 ‘반우울(半うつ)’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25년간 약 20만 명의 환자를 만난 그는 우울증으로 진단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돌봄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켜 ‘반(半)우울’이라고 했다. 병은 아니지만 건강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았지만 균열이 시작된 상태가 바로 반우울이다. 책의 부제처럼 ‘우울감 이상, 우울증 미만’인 상태다.
다이라 작가는 “이름이 없으면 사람은 ‘그냥 피곤한가 보다’ ‘내가 의지가 약한가 보다’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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