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확대로부터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반도체, 정보기술(IT) 하드웨어 기업의 주가 수익률은 올해도 견조하다. 특히 관련 기업의 주가 상승률은 주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실적 발표가 집중됐던 4월 말~5월 초를 기점으로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반면, 그동안 AI 투자 아이디어의 중심에 있었던 발전 기자재와 전력 인프라 기업 주가는 5월부터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수주와 실적 성장률 측면에서 반도체 및 IT 하드웨어 기업의 상대적 매력도가 더 부각됐다는 것이 수익률 격차의 근본 원인이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또는 취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그린필드 투자 지연→발전 기자재 및 전력 기기 신규 주문 감소’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관련 기업 주가 조정의 명분이 됐다. 후술하겠지만,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은 2026년을 기점으로 점차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병목 요인을 최대한 우회하거나 조금씩 해소해 가면서, 데이터센터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
복수의 전망 기관과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운영 예정인 데이터센터 가운데 적게는 40%, 많게는 60% 정도가 아직 착공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애초 데이터센터 운영 계획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수립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석은 엇갈리지만, 현재 투자가 기존 계획대로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된다.
전력망 병목과 제도 공백이 지연 요인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물리적인 병목이다. 그 핵심에는 전력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는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 주로 기존 전력망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서는 전력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송배전망 인프라 구축 기간이 길어지는 추세다. 일부 지역이나 프로젝트는 5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가장 큰 원인은 고압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 기기 공급 병목이다. 현재 초고압 변압기를 중심으로 생산능력 증설이 진행되고 있지만, 단기간 내 공급 제약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 다만 주요 업체의 증설 효과가 본격화하는 2028년부터는 병목현상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의사 결정 과정의 병목이다. 계통 접속 지연과 지역 주민 반대 등이 대표적인 요인이다. 기존 전력망 시스템에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전력 수요처를 편입할 제도가 부재하다는 점이 문제를 키웠다. 최근 지역 주민의 데이터센터 도입 반대 여론이 확산하는 배경에는 전기요금 인상 우려가 있다. 데이터센터 같은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지역에 들어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틸리티 기업은 송배전 및 발전 부문 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러한 투자 확대는 구조적인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센터 도입에 수반되는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가 부족한 탓에 데이터센터가 지역 주민의 반발을 사게 된 셈이다.
다행히도 정부와 관련 규제 기관, 전력망 운영 기구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텍사스주는 상원 법안 6호(Senate Bill 6)를 바탕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으로부터 일반 고객과 전력망 신뢰성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미국 북동부 지역 13개 주를 관할하는 지역 송전 기구(PJM)도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요금제를 신설하고 기존 전력망 운영 모델 개편을 추진 중이다. 아직 제도 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아 정책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제도 정비가 마무리되고 정책 공백이 점차 해소되면, 그동안 지연됐던 데이터센터 투자 결정과 착공 활동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력망 병목 우회할 새로운 돌파구
컴퓨팅에 대한 최종 고객의 수요는 여전히 뜨겁다. 덕분에 지금 당장 가동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와 전력의 가치는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서는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데이터센터 가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은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가 기존 전력망의 병목을 우회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도록 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 이동이다. 현재 미국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많이 들어선 곳은 버지니아주다. 반면 데이터센터가 가장 활발히 개발 중인 곳은 텍사스주다. 복수의 전망 기관은 2030년이 되면 텍사스주 데이터센터 규모가 버지니아주를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텍사스주에 개발 수요가 집중되는 큰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데이터센터 운영을 빨리 시작할 수 있어서다. 텍사스주는 신속한 제도 정비를 통해 전력망 운영 방식을 새로운 수요 환경에 맞게 개편했다. 다른 지역보다 주민의 반대 여론이 약하다는 점도 텍사스주가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텍사스주를 기반으로 발전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우호적인 사업 환경을 맞고 있다.
온사이트(On-Site) 데이터센터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온사이트는 전력 수요처가 직접 발전소를 구축해 전력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앞서 살펴본 계통 관련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온사이트 모델을 채택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데이터센터 용량 중 약 30%가 자체 발전원 확보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 추세는 더 강해질 전망이다. 특히 단일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용량이 메가와트(㎿)에서 기가와트(GW)급으로 커질수록 자체 발전소를 구축하고자 하는 경향이 더 뚜렷해진다. 이런 트렌드가 맞물리면서 데이터센터향 가스터빈 수요는 향후 수년간 견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상 데이터센터 건설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자, 우주 데이터센터 구상도 부상하고 있다. 컴퓨팅 파워를 탑재한 위성을 우주 공간으로 보내 풍부한 태양에너지로 이를 운영하겠다는 것이 우주 데이터센터의 기본 개념이다. 이러한 구상이 가능해진 핵심 배경은 우주 공간으로 물체를 올려보내는 발사 비용이 하락해 왔다는 점이다. 현재 스페이스X의 주력 발사체인 팰컨9의 발사 비용은 ㎏당 약 2500달러(약 384만원)로 추정된다. 스페이스X는 차세대 발사체인 스타십의 발사 비용을 100~200달러(㎏당 약 15만~30만원) 미만으로 맞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를 토대로 2028년부터 우주 데이터센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아직은 우주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비용이 지상보다 약 세 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스타십이 목표한 발사 비용에 도달한다면, 경제성과 리드타임 측면에서 우주 데이터센터가 지상보다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우주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검증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기업이 이 시장에 관심을 두고 투자 및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속하는 만큼, 상업화 성공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견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