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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언 크로선 딜로이트 글로벌 첨단 기술·미디어·통신 산업 리더 -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대 정보학
질리언 크로선 딜로이트 글로벌 첨단 기술·미디어·통신 산업 리더 - 영국 스트라스클라이드대 정보학

기술 주권 경쟁은 ‘인공지능(AI)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느냐’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며, 완전한 자립이 아닌 ‘통제 가능한 협력’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전 세계 지정학적 여건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각국 정책 결정자와 기업은 AI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인프라에 대해 더욱 강력한 통제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는 “2028년까지 전 세계 정부 65%가 자국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역외 규제 개입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기술 주권 요건을 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 주권은 AI, 클라우드, 반도체, 통신 인프라 등을 자국이 직접 개발·통제·규제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인프라의 위치, 운영 주체, 더 나아가 기술 공급망 전반에 대한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에 따라 각국은 2026년 이후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며, 향후 10년간 AI·반도체·데이터센터·위성통신 등 핵심 분야에 대규모 투자가 집중될 전망이다.

특히 AI는 미래의 경제성장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받으며 기술 주권 경쟁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첨단 AI 컴퓨팅 역량이 소수 국가와 글로벌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긴박감을 더 부추긴다. 실제로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공공 AI 컴퓨팅 시설은 단 34개국에만 쏠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학습 수준의 컴퓨팅 역량을 확보한 국가는 24개국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소수 해외 기업이 통제하는 클라우드나 칩 인프라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또한 전 세계 AI 컴퓨팅 90%가 미국과 중국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딜로이트는 2026년에 더 많은 국가가 독자적인 AI 컴퓨팅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며, 소버린 AI(Sovereign AI·특정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AI) 컴퓨팅 파워를 구축하는 데만 1000억달러(약 153조1000억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한다. 또한 2030년까지 미국과 중국 이외 지역 기업이 관리하는 AI 컴퓨팅 비중은 현재 전 세계 용량의 10% 수준에서 두 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를 증명하듯, AI 및 가속 컴퓨팅 플랫폼 기업인 엔비디아는 소버린 데이터센터 시장에 공급할 AI 칩 판매액이 2025년에 200억달러(약 30조62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전년 대비 100% 성장한 수치다.

기술 주권 경쟁, 대(大)유럽이 주도

유럽연합(EU)은 기술 주권 강화를 핵심 전략으로 설정하고, 2024년 발표한 ‘드라기 보고서’를 통해 기술 경쟁력 제고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방위적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출범한 ‘유로스택 이니셔티브’는 유럽산 제품의 구매 확대, 데이터 보호 강화, 연구개발(R&D)보다 상용화에 중점을 둔 전략, 자본 확충 등 실질적인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EU는 ‘기술 주권 담당 커미셔너’ 직책을 신설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이다. 이는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디지털서비스법(DSA), AI법 등 기존의 규제 철학을 확장한 것으로, 유럽 고유의 가치와 규범을 기술 생태계에 반영하려는 흐름이다. 다만 최근에는 AI, 반도체, 양자,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국제 협력도 병행하는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바뀌고 있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유럽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20% 미만에 그치는 현실을 감안해,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협력하되 기반 시설을 현지화하는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AWS는 독일에 약 80억유로(약 14조399억원)를 투자해 ‘유럽 주권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데이터의 EU 내 저장과 운영 주체 독립성을 보장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소버린 클라우드’ 전략을 통해 AI, 사이버 보안, 데이터 보호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이는 완전한 자급자족 체계를 구축하기보다 외부 기업의 기술력을 활용하되, 철저한 규제와 운영 통제를 통해 주권을 확보하려는 실용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AI 분야에서는 공공과 민간이 결합한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구축이 한창이다. EU의 ‘AI 대륙 행동 계획’은 슈퍼컴퓨팅 기반의 AI 팩토리 및 기가팩토리 구축을 추진 중이며, ‘인베스트AI’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 200억유로(약 35조996억원)를 투입해 최대 5개의 AI 기가팩토리를 설립할 계획이다. 동시에 엔비디아와 퍼플렉시티는 오픈 소스 기반의 유럽 맞춤형 AI 모델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엔비디아는 미스트랄AI 등과 협력해 85억유로(약 14조9173억원) 규모의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 역시 ‘스타게이트 UK’를 통해 국가 전반의 AI 인프라 확충에 나서며 이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반도체와 위성통신 분야에서도 주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EU는 ‘반도체법’을 통해 2030년까지 430억유로(약 75조4641억원)를 투자하여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설계·연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핀펫(FinFET) 파운드리, 전력 반도체 공장, SiC(탄화규소) 생산 라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위성통신 분야에서는 ‘아이리스²(IRIS²)’ 프로젝트와 630기 이상의 위성을 운용 중인 ‘유텔샛 원웹’이 핵심 축을 이루고 있으며, 유럽 자체 통신망 구축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 외 지역의 기술 주권 확보 움직임

유럽이 기술 주권 논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일본·인도 등 아시아와 기타 지역에서도 소버린 AI와 반도체 중심의 자립 전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국은 카카오의 오픈AI 협력, SK그룹과 AWS의 50억달러(약 7조6550억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 등 민관 협력을 통해 자국 언어와 문화에 최적화된 AI 생태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일본은 ‘래피더스 프로젝트’를 통해 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확보에 나서며 2030년까지 650억달러(약 99조51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인도는 ‘인디아 반도체 미션’과 ‘인디아AI’ 정책을 통해 전 계층 기술 스택의 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인도는 ‘인디아 스택’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확장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아프리카, 캐나다, 중동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버린 AI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엔비디아 기반의 AI 팩토리를 시작으로 이집트와 케냐 등으로 확산을 추진 중이며, 캐나다는 코히어(Cohere)와 협력 및 통신사 주도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해 컴퓨팅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스타게이트 UAE(1 급 AI 클러스터)’와 사우디아라비아의 230억달러(약 35조2130억원) 규모 AI 인프라 투자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글로벌 AI 허브 구축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각국은 자국 환경에 맞는 최선의 방식으로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기술 주권 강화의 장단점과 과제

기술 주권 강화는 각국에 경제 및 안보 측면에서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자국 중심으로 기술 통제력이 높아지면 세수 확대, 민간 투자 증가, 일자리 창출, 자국 기술 기업의 성장 촉진 등 선순환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공급망 자립을 통해 회복 탄력성과 보안 수준도 한층 강화된다. 또한 외부의 정치·경제적 변수로부터 받는 영향이 줄어들고, AI 분야에서는 자국의 언어·문화·데이터를 고스란히 반영한 맞춤형 기술 개발이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투자 흐름 위축, 글로벌 협력 약화, 데이터와 공급망 분절화 심화, 고급 인력 이동 제한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확충에 따른 폭발적인 전력 수요 증가와 환경적 부담, 과잉투자 위험도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지적된다. 

모든 국가가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완벽히 구축하기는 어려운 만큼,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과 파트너십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 주권 경쟁은 향후 더욱 가속화되며 글로벌 지정학·규제·투자 환경 전반을 재편할 전망이다. 이제 기업과 국가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면밀히 점검하고 유연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데이터, 사이버 보안, 투자 규제 등 갈수록 복잡해지는 정책 환경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와 시나리오별 전략 수립은 필수적이다. 

질리언 크로선 딜로이트 글로벌 첨단 기술·미디어·통신 산업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