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은 6월 2일(이하 현지시각) 첨단 인공지능(AI)의 국가 안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앤트로픽·오픈AI 등 주요 AI 개발 기업이 차세대 AI 모델을 일반에게 공개하기 최대 30일 전 정부에 자발적으로 제공해 안전성을 검토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AI 모델의 개발과 공개 과정에서 정부 허가나 사전 승인, 면허 취득을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 산업계의 우려를 일부 반영했다. 애초 최대 90일간 정부가 AI 모델을 사전 검토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업계 반발로 최종안은 크게 완화됐다.
하지만 AI 정책을 둘러싼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규제보다 거래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 등은 트럼프 정부가 앤트로픽·오픈AI 등 AI 기업과 정부 지분 참여 방안을 포함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엔비디아와 AMD에는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중국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제공하도록 요구했고, 인텔도 정부 지원의 대가로 지분 10%를 넘겼다. 이런 사례가 이어지면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민간 기업에 경제적 양보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필자는 “트럼프의 공화당은 더 이상 자본주의와 자유기업을 지지하지 않는다”라며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성공적인 산업 전략을 보여주는 나라가 아니라 ① 정실 자본주의로 고통받는 나라의 대열에 합류할 운명”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사회주의자’ 민주당 인사가 당선되면 미국이 베네수엘라나 쿠바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트럼프의 행동은 그가 하는 말은 물론, 공화당이 내세워 왔다고 여겨지는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자본주의와 자유기업을 계속 옹호하기는커녕, 이제는 자본주의도 자유기업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징은 기업의 사적 소유권이 엄격히 보존된다는 점이었다. 중국· 러시아식 자본주의에서는 정부가 겉보기에는 평범한 기업을 부패한 유착 구조를 통해 사실상 소유한다. 그 결과 이 기업은 결국 정치 지도자와 그 측근에게 봉사하게 된다. 이는 경제학 입문 과정에서 배우는 경제와는 거의 무관한 체제다. 그런데 이제 미국도 러시아와 중국이 걸어온 길로 들어서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미국 경제에서 산업 정책을 통한 정부 역할이 지금보다 더 확대될 수 있고, 여러 분야에서 사적 이익과 공익을 일치시키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개입은 반드시 제도화돼야 하며, 특정 인물의 자의가 아니라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특혜로 비칠 여지조차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공화당은 트럼프의 ‘깡패식 자본주의’를 사실상 용인해 왔다. 이는 보수주의자가 한때 옹호하던 규칙 기반 시장경제와는 전혀 다른 모델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가 앤트로픽·오픈AI 등 AI 기업이 정부에 ‘자발적으로’ 지분을 넘기도록 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매우 우려스럽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하 푸틴)이 ② 올리가르히로부터 ‘자발적’ 지원을 받아낸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기업인은 정부에 맞서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워 왔다. 사우디에서는 2017~2018년 부유층 엘리트가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 석 달 동안 구금됐다가 충분한 지분을 내놓은 뒤에야 풀려났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그리고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보리스 베레좁스키 같은 전직 러시아 올리가르히가 이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가 푸틴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만큼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 접근법은 같다. 트럼프 정부가 앤트로픽을 대하는 방식은 마윈이 감히 규제 당국을 비판했을 때 중국 정부가 그를 다룬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6월 초 앤트로픽의 최첨단 도구에 돌연 수출 금지를 부과한 뒤, 미국 정부는 새로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연구소로부터 추가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8월 이 방향으로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엔비디아와 AMD에 수출 금지를 풀어 주는 대가로 중국 매출의 15%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는 수출 금지 명분이었던 국가 안보를 수십억달러의 갈취한 돈과 맞바꿨다. 그로부터 2주도 지나지 않아 인텔은 2022년 제정된 ③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이미 받기로 돼 있던 재정 지원의 대가로 정부에 지분 10%를 ‘자발적으로’ 넘겼다.
한편 어떤 형태로든 AI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트럼프는 최근 AI 개발자가 일부 제한된 범위에서만 규제받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문서의 내용은 마크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 같은 기술 올리가르히의 영향력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부 관리는 이런 조치가 AI의 혜택을 모두에게 돌아가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목표라면 이들은 기업 이익에 대한 과세를 지지했을 것이다. 법인세는 기업 역시 공공재의 혜택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경제활동의 과실이 사회에 공유되도록 하기 위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법인세를 약화시켜 왔다. 1970년대에는 기업 이익에 대한 세금이 국내총생산(GDP)의 2.6%에 해당하는 재원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는 그 절반에 그친다. 그사이 GDP에서 기업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두 배로 커졌는데도 말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정부다.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말이다. 이 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떳떳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민간 부문의 지분을 취득할 때마다 그 배경에는 특혜나 고위 관료의 사적 투자 이해관계가 작동한다. 그로 인한 경제 왜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공화당식 자본주의가 낳을 파장은 크다. 첫째,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정치권과 연결된 엘리트가 정책을 좌우하는 과두제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다. 둘째, 이는 미국의 번영도 약화시킨다. 현대 경제학과 경제사가 주는 핵심 통찰은 법치주의를 포함한 강력한 제도가 생활수준의 지속적 향상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강압적 행태는 미국 경제가 세워진 제도적 토대와 정반대에 있다. 새로운 과두제적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앤트로픽처럼 최고의 제품을 만들거나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 아니다. 반면 승자가 되는 것은 가장 원칙이 없고, 광기 어린 왕에게 가장 능숙하게 아첨하는 이다. 앤트로픽의 고전하는 경쟁사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트럼프 정부에 정부 지분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다는 사실이 과연 놀라운가.
정부가 신생 산업을 육성하고, 사적 이윤과 공익이 어긋날 수 있는 산업을 규제할 정당한 이유는 있다. AI는 명백히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개입은 불투명하고 임시방편적인 사익 챙기기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를 따라야 하며, 독립적 제도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트럼프가 키를 잡은 미국은 성공적인 산업 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준 나라의 대열이 아니라, 정실 자본주의로 고통받는 나라의 대열에 합류할 운명에 처해 있다. 미국의 경제와 민주주의, 국가 안보는 트럼프와 아첨꾼의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희생되고 있다.
Tip
① 정치권력과 기업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시장 경쟁보다 인맥과 특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규제 완화, 보조금, 공공 계약, 독점권 등을 제공하고, 기업은 정치권에 자금이나 지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것이 특징이다.
②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의 국영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재벌을 가리키는 용어다. 소수 지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르키아(oligarkhia)’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에너지·금융· 광업 등 핵심 산업을 장악하며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막강한 경제·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푸틴 집권 이후에는 정부에 협조하는 대가로 경제적 특권을 유지하는 대신, 정권에 반기를 든 인사는 자산 몰수나 사법 처벌, 해외 망명 등을 겪었다. 최근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정치권력과 결탁해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수 재벌이나 기업인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③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2022년 8월 제정된 법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 기업에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을 제공하고, 반도체 제조 투자에 25%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신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일정 기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데 제한을 받는다. 미국은 이를 통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