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유해란이 6월 28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미네소타주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우승은 메이저 우승이다. 메이저는 같은 골프가 아니다. 코스는 더 길고 러프는 더 깊다. 그린은 더 단단하고 빠르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모두 모인다. 무엇보다 ‘메이저’라는 이름 자체가 선수의 마음을 흔든다. 평소라면 쉽게 넣었을 1m 퍼트를 놓치고, 늘 핀 옆에 붙이던 아이언샷이 갑자기 흔들린다. 메이저는 기술과 사람의 마음을 동시에 시험하는 무대다. 그래서 메이저 우승은 선수의 경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로 불린다.

남자 골프 메이저 최다승(18승)을 기록한 잭 니클라우스는 통산 73승보다 메이저 18승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나는 메이저에 맞춰 시즌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회 출전 수를 줄이는 대신 한 시즌 네 차례 메이저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는 메이저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메이저는 화려한 골프로 우승하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이 우승한다.”

타이거 우즈 역시 평생의 목표는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18승이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최다승 타이인 82승을 거뒀지만 끝까지 바라본 것은 메이저 기록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준비는 1년에 네 번, 메이저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내기 위한 것” 이라고 말했던 우즈도 결국 메이저 우승은 15승에서 멈췄다. 메이저가 얼마나 높은 벽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여자 골프도 다르지 않다. 

선수 이름 앞에 붙는 가장 무거운 훈장  

세계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지노 티띠꾼은 아직 메이저 우승이 없다. 투어에서는 누구보다 꾸준했지만 메이저에서는 번번이 정상 문턱에서 돌아섰다. 여자 골프 메이저 최다승을 기록한 패티 버그(15승), 현대 여자 골프의 상징인 안니카 소렌스탐(10승), ‘골프 여제’ 박인비(7승)가 특별하게 평가받는 것도 같은 이유다. 메이저는 선수의 이름 앞에 붙는 가장 무거운 훈장이다. 그런 무대에서 유해란은 첫날 공동 70위였다. 선두 윤이나에게 10타나 뒤졌다. 미국 통계 업체가 계산한 우승 확률은 0.2%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선수라면 컷 통과를 먼저 걱정했을 위치였다. 그런데 나흘 뒤 가장 큰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람은 유해란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6월 28일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해란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6월 28일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유해란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그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도해온 염동훈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해란은 이미 잘 알려진 선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신인왕이었고, 데뷔 후 매년 우승을 거둔 꾸준한 강자였다. 아이언샷이 뛰어나고, 침착하며, 조용한 승부사라는 평가도 익숙하다. 하지만 메이저 우승은 기존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다. 첫날 10타 차 열세를 뒤집은 나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듣고 싶었다. 염 코치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해란이는 원래 욕심이 많은 아이다.”

어린 시절 유해란은 선두에 4~5타 뒤진 채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해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염 코치가 스냅백 모자나 이니셜 볼마커를 상품으로 걸면 기어코 따라잡아 우승했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선생님, 약속한 선물 사주세요”라며 먼저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승부욕은 타고난 기질이다. 하지만 염 코치가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승부욕보다 절제였다. “또래보다 훨씬 성숙했다”고 한다. 국가대표 생활을 하며 어린 나이부터 해외 대회를 경험했고, 큰 무대일수록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잘 맞아도 들뜨지 않았고, 흔들려도 서두르지 않았다. 메이저라고 해서 특별한 골프를 하려 하지 않았다. 평소 하던 골프를 끝까지 믿는 선수였다. 이번 우승도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지난 5월 말 크로거 퀸시티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뒤 유해란은 갑자기 투어에서 모습을 감췄다. US여자오픈까지 건너뛰었다. 오랫동안 괴롭혀온 복부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시술을 받았고, 한 달 넘게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메이저를 위한 준비였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어머니가 해준 집밥을 먹으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몸이 회복되자 비로소 스윙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시술 여파로 몸을 보호하려다 보니 백스윙이 조금씩 가팔라졌다. 몸통 대신 팔로 클럽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 생겼다. 염 코치는 원래의 궤도로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가 연습 라운드를 마친 유해란이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조금 안쪽으로(스윙 궤도) 들어오는 것 같아서 제가 조금 조절했어요.”

염 코치는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대로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네가 원하는 구질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오버파 73타. 공동 70위. 선두 윤이나에게 10타나 뒤졌다. 컷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위치였다. 문제는 퍼팅이었다. 최근 쇼트 퍼팅에 좋다고 해서 헤드 뒷부분이 반달 모양인 모델을 사용했지만, 대회 첫날 짧은 퍼트가 번번이 홀을 외면했다. 유해란은 둘째 날 과감하게 예전에 사용하던 퍼터(스카티 카메론 팬텀 11R OC 로우 토크)로 바꾸었다.

이 퍼터는 샤프트를 헤드의 무게중심과 최대한 일직선으로 배치해 스트로크 과정에서 생기는 비틀림을 줄인 모델이다. 

유해란은 퍼터의 무게나 스피드, 방향성의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느끼는 스타일이다. 결국 퍼터를 바꾼 것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감각으로 돌아간 선택이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둘째 날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잡아내며 64타를 기록했다. 공동 70위였던 선수가 단숨에 우승 경쟁으로 뛰어들었다. 셋째 날 선두에 올랐고, 마지막 날 끝내 생애 첫 메이저 트로피를 품었다.

유해란은 KPNG 여자 PGA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스카티 카메론 패스트백 OC(아래)를 썼으나 2라운드부터는 팬텀 11R OC를 사용했다. /사진 타이틀리스트
유해란은 KPNG 여자 PGA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스카티 카메론 패스트백 OC(아래)를 썼으나 2라운드부터는 팬텀 11R OC를 사용했다. /사진 타이틀리스트

정확한 아이언과 코스 운영이 최대 무기

많은 이는 유해란을 아이언샷이 뛰어난 선수로 기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그린 적중률과 티에서 그린까지 플레이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아이언샷은 이번 우승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비거리였다. 체격을 보면 더 멀리 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염 코치는 “해란이는 더 멀리 칠 수 있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강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 골프가 장타 경쟁으로 흐르는 가운데서도 유해란은 아이언의 정확성과 코스 매니지먼트가 가장 큰 무기라는 사실을 믿었다. 대신 부족한 부분은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베트남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50~60m 웨지샷을 반복했다. 연습장 나무를 맞히는 훈련으로 거리감을 익혔다. 퍼팅은 리디아 고의 코치이기도 한 크리스 조와 꾸준히 다듬었다. 

이번 우승은 한국 여자 골프에도 의미가 컸다. 한국 선수의 메이저 우승은 2024년 이 대회 정상에 오른 양희영 이후 2년 만이다. 유해란은 여자 골프 사상 최고액인 총상금 1300만달러(약 200억원)가 걸린 이번 대회에서 우승 상금 195만달러(약 30억원)를 받았다. 준우승한 윤이나도 116만9107달러(약 18억원)를 받아 개인 최고 상금을 기록했다. 우승 장소도 상징적이다. 헤이즐틴 내셔널 골프클럽은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이 ‘골프 황제’ 우즈를 꺾고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의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무대다. 메이저 1승 포함 통산 4승을 거둔 유해란이 더 큰 꿈을 향한 출발선에 섰다. 특히 다음 메이저인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에비앙 주니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언젠가 같은 코스에서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는 꿈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 더 나아가 다섯 개 메이저를 모두 제패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그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유해란의 이야기는 이제 첫 번째 장을 넘겼을 뿐이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