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007 스카이폴’은 화려한 첨단 무기와 비현실적인 스케일로 무장했던 이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동안 007시리즈의 악당이 한반도 적화 통일이나 핵 테러, 신세계 건설처럼 거대하고 허황한 세계 정복을 꿈꿨다면, 이 영화는 조직을 지키려는 자와 그 시스템에 희생되어 버려진 자 사이의 팽팽한 인간적 비극을 담고 있다.
본드는 달리는 기차 지붕 위에서 적과 엉켜 격렬한 사투를 벌인다. 일분일초가 시급한 상황, MI6의 수장 M은 저격 명령을 내린다. 본드가 희생될 확률이 높은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내 편의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냉정한 판단이었다. 저격수는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적과 위치가 바뀐 본드는 총에 맞고 아득한 강물로 추락한다.
이후 MI6은 정체불명의 해커로부터 테러를 당한다. 건물은 불에 타고, 전 세계에 잠입한 요원의 명단이 유출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다. 배후는 과거에 M이 아꼈으나 매정하게 버렸던 전직 요원 실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사적 응징이다. 실바는 지독한 애증을 품고 한발 한발 M을 향해 다가온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되었지만, 본드는 죽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자기를 사지로 밀어 넣은 수장의 판단에 깊은 서운함을 느끼며 복귀를 거부한다. 그는 술과 방탕 속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살이 찌고 몸이 둔해져 훗날 복귀했을 때 체력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할 자격 미달의 상태로 자기를 철저히 방치해버린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버린 M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복이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MI6 본부가 폭탄 테러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본드는 주저 없이 런던으로 향한다. 그것은 자기가 서야 할 자리와 지켜내야 할 책임을 아는 자의 필연적인 결단이었다. 생체 인식 권총 한 자루와 소형 발신기라는 최소한의 신무기만을 쥐여준 채 다시 사지로 밀어 넣는 M과 조직이었지만, 임무를 다하기 위해 본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실바를 뒤쫓는다.
총을 쏘라고 명령한 M에게 왜 좀 더 자기를 믿고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섭섭함을 털어놓으면서도, 본드는 당시 수장으로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M의 냉철한 판단을 이해한다. 끝내 원망을 가슴에 품지 않는 본드의 성숙함은 자기를 희생시킨 조직을 향해 광기의 설욕전을 펼치는 실바와 명확한 대조를 이룬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이던 실바가 테러리스트로 변모해 MI6을 뒤흔드는 이유는 차라리 애틋하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불법으로 정보망에 접속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실바는 중국에 억류되어 있던 여섯 명의 요원과 맞바꿔지며 조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 어머니처럼 믿고 의지했던 보스에게 배신당했다는 절망감, 국가로부터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는 모멸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어쩌면 그가 규칙을 어겼던 이유조차 인정받고 싶었던 조급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처럼, 실바는 중국에서 풀려나 자기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다시 주어졌는데도 M을 부수려는 앙심에만 집착했다. 조직에서 내쳐졌다는 원한과 쓸모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냉혹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은 사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품어보았을 보편적인 슬픔이기도 하다.
실바의 목적은 M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내동댕이쳐져서 고통받았던 것처럼 M의 마음을 똑같이 찢어발기고 싶었다. 그는 동료 요원의 명단을 입수해 M에게 자식과도 같은 그들을 하나씩 처단한다. 자기가 당했던 아픔을 M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어 그녀를 죄책감 속에 무릎 꿇리려는 철저한 심리적 앙갚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미안했다’는 M의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M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거대한 시스템의 효율성 앞에서 모든 개인에게 공평할 수는 없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부하의 희생을 묵인해 왔던 M의 과거는 결국 커다란 업(業)이 되어 자기를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일이라 해도, 그 결과는 오로지 자기가 져야 한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엄중한 법칙이자 숨 막히는 생의 무거움이다. 수십 년 동안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했을지라도, 단 한 번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억울하다 해도 세상은 멈춰 사과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끼듯, 조직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굴러갈 뿐이다.
잘 재단된 양복을 입은 신사가 발로 뛰는 고전적인 스파이의 시대는 저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목숨을 걸고 현장을 달리는 인간의 뜨거운 호흡이 아닐까. 본드는 유년의 어두운 상처와 지우고 싶은 과거가 고스란히 묻힌 황폐한 스코틀랜드의 고향집, 스카이폴(Skyfall)에서 실바와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무너져가는 자기만의 영지, ‘스카이폴’을 품고 살아간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고 엄살하지 않고 연민하지 않는다. 세상의 일부로 살아가며 원하지 않는 배역을 연기하다가도 시간이 다하면 언제든 폐기 처분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받아들이면서도 말이다. 자기 등에 총을 쏘았던 조직과 수장을 지키기 위해 본드가 다시 현장으로 뛰어들었듯, 인간은 늘 그렇게 자기에게 등 돌린 세계, 얼음장보다 시린 삶을 향해서 또 손을 내민다.
삶을 지탱하던 세상이 외면할 때, 당신은 복수의 불길로 자기를 태울 것인가, 아니면 상처 가득한 인생의 궤적을 묵묵히 책임지며 마지막 품격을 지켜낼 것인가.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뒤, 차가운 바람 속에 서서 흔들리는 깃발을 바라보던 본드의 고독한 뒷모습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