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축하를 건넨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요즘은 어때?”라는 질문 대신 아이의 성장과 건강을 이야기한다. 엄마는 어느새 아이의 배경이 된다. 그렇게 한 사람은 엄마가 되고, 동시에 누군가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다.
헝가리 사진가 안디 갈디 빈코(Andi Ga-ldi Vinko)는 바로 그 사라진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작가는 임신하기 전, 신진 작가로서 아트 페어와 전시 오프닝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몰랐던 것은 남성이 만든 영화와 사진, 그림 속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모성이 얼마나 엉망이고 날것이며,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능인지였다.
‘미안해요. 아이를 낳느라 사라졌지만, 이제 돌아왔습니다(Sorry, I Gave Birth, I Disappeared But Now I’m Back)’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초보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집이다. 제목은 유쾌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예술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잠시 보이지 않게 되었던 시간을 향한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다.
작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2016년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2017년 첫째 아이를, 2020년 둘째 아이를 낳는 동안 자기 몸과 일상을 기록했고, 자기뿐 아니라 친구들의 임신과 출산, 육아의 순간까지 함께 담아냈다.
변화하는 여성의 몸, 잠 못 이루는 밤, 모유 수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지쳐 있는 엄마 얼굴 등은 흔히 소비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기쁨과 두려움, 피로와 사랑, 상실감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연출과 다큐멘터리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그의 사진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모성의 시간을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작가는 예술계에서 모성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주 오랫동안 모성은 예술계에서 다소 금기시되는 주제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존경했던 여성 롤모델은 가족보다 커리어를 선택했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이가 있었을지 몰라도, 자기 불안이나 희생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작가 역시 커리어가 막 성장하던 시기에 임신했고, 출산 이후에는 전시 오프닝과 작업 대신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을 위한 위로
이 책은 그런 모성을 이상화하지도, 반대로 비극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다만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은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수 있는 세부 장면이 가득하다. 임신으로 늘어진 피부, 피 묻은 침대 시트, 얼린 모유, 새벽의 검색 기록, 아이 소변이 새어 젖은 침대 시트, 엄마 얼굴에 묻은 아이의 토사물, 수북이 쌓인 가제 손수건⋯.
그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리만큼안심이 되고 웃음이 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작가가 사진을 통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육아 기록을 넘어, 비슷한 시간을 지나온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된다. 책 속에서 작가는 묻는다. “모성처럼 그토록 보편적인 것이 어떻게 이토록 외로울 수 있을까? 우리가 모두 겪어야 하는 일인데 어째서 그 모든 고통에는 답이 없는 걸까? 우리의 몸, 우리의 호르몬, 우리의 생각, 우리의 친구들,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의 커리어, 우리의 집, 우리의 설거지, 우리의 빨래, 우리의 성적 욕망은? 우리의 자유, 우리의 샤워, 우리의 수면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이 책의 제목인 ‘미안해요. 아이를 낳느라 사라졌지만, 이제 돌아왔습니다’라는 문구를 다시 떠올려본다. 돌아온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였던 자기와 엄마가 된 자기를 모두 품은, 조금은 지쳤지만 그만큼 더 단단해진 사람이다. 이 책은 모성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삶의 어느 순간 이름보다 역할이 먼저 불리게 된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 빌려온 시간 위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잃어버린 시간이 죄책감이나 수치심 없이 내 이력서에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잃어버린 시간이 결코 사라진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공백처럼 보였던 시간이, 다시 돌아온 한 사람을 가장 깊이 변화시킨 시간이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