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는 사람이 자본을 매우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유럽 성장 투자·벤처캐피털 부문을 이끌며 소비자 기술, B2B2C(기업-기업-개인) 소프트웨어, AI 네이티브 기업을 중심으로 수백 건 이상의 기업 실사(Due Diligence)를 수행해 온 니콜라스 슈미트(Nicolas Schmidt) 스톡홀름 오피스 MD 파트너는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을 이같이 진단하고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고 있지만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여전히 매우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인공지능(AI) 중심 M&A 사이클의 특징으로 속도(velocity), 어크하이어(acquihire·인재 영입 목적 인수)의 부상, 투자자군의 재편을 꼽았다.
AI 중심 M&A에서 소수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AI 역량을 장악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현재 시장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훨씬 분산된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기술 주권(sovereignty)이 부상하면서 앞으로는 가격이나 전략적적합성뿐 아니라 공급자와 인수 주체의 ‘국적’이 거래 성사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AI 중심 M&A 사이클은 과거 기술 붐과 무엇이 다른가.
“세 가지 뚜렷한 변화가 있다. 첫째, 가장 큰 변화는 속도다. 기업이 창업 1년 만에 ARR(연간 반복 매출) 1억달러(약 1535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는데,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매출만 따져서 1억달러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일이다. 다만 이러한 빠른 성장 속도만큼 투자 위험성도 크게 높아졌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그 기업이 충분히 성숙하기도 전에 하이퍼스케일러 기업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둘째,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한 인수, 즉 어크하이어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됐다. 셋째, 투자자 구성 자체가 달라졌다. 현재 많은 거래가 변동성이 큰 자산에 대한 소수 지분 투자 형태로 이뤄지는데, 대형 사모펀드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결과적으로 실제 투자에 참여하는 투자자군이 몇 년 전과 상당히 달라졌다.”
AI 거래 붐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지금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본을 매우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다. 새로운 사업을 구축하는 입장에서 상당한 장점이다. AI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방식으로 창의성의 문턱도 낮추고 있다. 코딩을 못 하는 사람도 이제 대규모 개발팀 없이 작동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다. 러버블(Lovable) 같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모든 변화의 속도는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지역 자체도 바꾸고 있다. 스톡홀름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에 대규모 AI 투자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도시가 나타나고 있다.”
러버블은 202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창업한 AI 스타트업으로, 코딩을 몰라도 “이런 앱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AI가 앱과 웹사이트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다. 러버블은 지난 6월 ARR 5억달러(약 7676억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러버블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 산하 캐피털G 등으로부터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66억달러(약 10조1323억원)를 인정받았다.
반대로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 시장에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고 있지만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여전히 매우 불확실하다. 아직 어떤 산업이 거대 기술 기업의 영역이 될지, 어떤 영역을 애플리케이션 레이어(app-layer) 기업이 차지하게 될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로서는 많은 앱 레이어 기업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도 생각하게 된다. 이론적으로 이들은 데이터, 기존 업무 프로세스와 높은 결합도, 고객 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기존 기업이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내부 장애물에 부딪힌다. 겉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반드시 시장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빅테크가 유망 스타트업을 경쟁사로 크기 전에 흡수한다는 우려가 있다. 소수 대형 기업이 AI 역량을 장악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만약 정말 소수의 대형 기업이 AI 역량 대부분을 장악하게 된다면 분명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AI 인프라를 특정 기업 몇 곳에 의존하게 되고, 가격 결정권 역시 소수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이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나타나는 흐름은 오히려 앱 레이어 기업이 가치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는 구조에 더 가깝다. 대형 모델 기업은 보다 범용적인 활용 사례와 대기업 맞춤형 솔루션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즉 시장 집중 리스크는 이론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시장 전개 방향은 사람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분산된 구조에 가깝다.”
미·중 긴장, 수출규제 등 지정학 리스크는 '누가 누구를 인수할 수 있는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현재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기술 주권이다. 많은 국가와 지역이 이제 AI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자국에서 유지하고 통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고, 이것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어떤 유럽 기업은 단지 ‘유럽 기업이기 때문에’ 유럽 기반 AI 공급 업체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자국·지역 중심 선호는 과거에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AI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한국 같은 국가가 주목해야 할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AI 역량에 대한 접근 자체가 각국 정부가 통제하려는 대상이 되면서, 앞으로는 가격이나 전략적 적합성뿐 아니라 ‘공급자 혹은 인수 주체가 어느 국가에 속해 있는가’라는 지정학적 요소가 거래 성사 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AI, M&A 업무 최대 50% 감축…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
BCG에서 글로벌 거래 기술 전략 부문을 이끌며 사업부 분할, 인수 후 통합, 사업 매각, 대규모 디지털 전환 등에서 글로벌 기업의 기술 통합을 지원해 온 재클린 고버스(Jacqueline Govers) 암스테르담 오피스 대표 파트너는 AI가 거래 자체뿐 아니라 거래 ‘실행’ 방식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고버스 파트너에 따르면, 생성 AI와 에이전틱 AI(자율적으로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AI)는 과거 몇 주 이상 걸리던 작업을 상당 부분 자동화하며 거래 실행 업무를 약 15%, 일부 업무는 최대 50%까지 줄여준다. 그런데도 거래 일정 자체가 크게 단축되지 않는 것은 규제 승인 절차, 운영 모델 설계, 법적 구조 수립 그리고 구성원이 새 프로세스와 협업 체계를 익히는 변화 관리가 전체 일정을 좌우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업 환경에는 완벽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아, AI가 기술 현황 분석이나 TSA (Transition Service Agreement·전환 서비스 계약) 일정 수립의 초기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도 거래의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이 검증하고 판단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이는 과거 방식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에도 사람이 먼저 초안을 만들고, 여러 논의를 거쳐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일해 왔기 때문이다. 고버스 파트너는 “첫 단계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지만, 최종 판단 단계는 여전히 인간의 역할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