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몰래 직장에서 받은 보너스를 꼬박꼬박 모아 사려던 ‘드림카’ 대신 창업을 택했다. 당시 손에 쥔 돈은 3만달러였다. 뷰티 소매업에서 출발한 사업은 패션, 정보기술(IT), 투자사로 확장됐고, 현재 그가 보유한 사업체의 연간 총매출은 약 3억달러(약 4600억원)에 이른다.

BSW/PPF그룹을 이끄는 에릭 최 회장의 창업 이야기다. 그는 1982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탓에 영어는 서툴렀고, 인종차별과 문화적 장벽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첫 학기 만에 뉴욕주립대를 중퇴했다. 최 회장은 “캠퍼스 밖으로 나와 울면서, 공부 대신 돈부터 벌어야겠다고 생각해 잡화점에서 일을 시작했다”며 “몇 개월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일하다 보니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고, ‘여기서 영어마저 못 배우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공부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직장 생활은 기대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한국에서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하던 뷰티 사업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뷰티 소매업은 패션 소매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엔지니어 경험을 살려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IT 기업도 세웠다. 각 계열사에서 나오는 이익 일부를 적립해 투자사도 운용한다. 최 회장은 “투자사를 통해 유망 기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합병(M&A)을 진행하고 있다”며 “북미 시장을 넘어 유럽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는 재외한인경제단체인 월드옥타(OKTA·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한 ‘2026 유럽·유라시아 지역경제인대회’에 참석한 최 회장을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B2B(기업 간 거래) 중심 ‘K-엑스포 in 스페인’ 상담회를 둘러봤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릭 최 - BSW/PPF그룹 회장 
미국 뉴욕주립대 전기·전자, 현 월드옥타 한미경제 포럼위원회 위원장, 전 텔코 일렉트릭(TelKo Electric) 엔지니어, 전 PC 부동산 투자사(PC Warehouse
Investment) 필라델피아·뉴저지 매니저 /사진 김양혁 기자
에릭 최 - BSW/PPF그룹 회장 미국 뉴욕주립대 전기·전자, 현 월드옥타 한미경제 포럼위원회 위원장, 전 텔코 일렉트릭(TelKo Electric) 엔지니어, 전 PC 부동산 투자사(PC Warehouse Investment) 필라델피아·뉴저지 매니저 /사진 김양혁 기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 계기는.

“1982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 당시만 해도 현지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일이 적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문화적 장벽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미국 사회와 현지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언어 소통의 벽도 높았을 것 같다.

“대학 입학 후 첫 학기 만에 중퇴했다. 성적이 너무 안 좋았다. 읽고 쓰는 것은 어떻게든 했지만, 듣고 말하기가 안 되니 교수가 과제를 내준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 일단 돈부터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 브로드웨이의 한 잡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조금씩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지금 배우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대학에 가 공부에 매달렸다.”

월드옥타 가입 계기와 역할은.

“항상 새로운 사업체를 찾으려고 한다. 월드옥타 회원 중 그런 회사를 운영하는 이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가입했다. 월드옥타는 한국에 있는 인재를 고용할 수 있는 채널 역할을 한다. 추천하는 인재를 현지에 초청하고 교육해서 고용할 수 있다. 월드옥타라는 필드를 두고 어떻게 쓸 것인지는 내가 찾아야 한다. 그게 사업가의 능력이다.”

현재 운영 중인 사업체를 소개해 달라.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움직인다. 소매 유통 부문에는 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BSW와 의류 브랜드를 유통하는 패션 기업 SG가 있다. 또 이들 소매 기업의 재고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 PCS(Pan-theon Cloud Solution), 자산 운용과 투자를 담당하는 렉스인베스트먼트가 있다.”

대학 전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당시 델(Dell) 컴퓨터가 막 성장하던 시기였고, PC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미국에 먼저 와 록히드마틴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친척이 하던 뷰티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사업하던 친구를 찾아가 운영 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대규모 자본 없이도 내실 있게 시작할 수 있는 구조라고 봤다. 현금 흐름이 좋은 뷰티 사업으로 종잣돈을 벌고, 이후 전공을 접목한 IT 사업으로 확장하자는 큰 그림을 그렸다.”

뷰티 시장의 어떤 점에 확신을 가졌나.

“뷰티 소매업은 투자수익률(ROI)이 높은 시장이었다. 보통 1달러에 물건을 사 오면 매장에서 2~3달러에 판매할 수 있었다. 현금 흐름도 좋았고, 당시만 해도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도 금융권에서 신용 대출이 나올 정도로 성장성과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샴푸와 메이크업용품부터 흑인 고객이 쓰는 가발까지 뷰티 관련 제품군을 폭넓게 다룬 것도 도움이 됐다.”

현재 기업 규모는.

“북미 전역에 40여 개 직영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체 직원은 550명 수준이다. 프랜차이즈 매장도 미국 전역에 분포해 있다. 연간 총매출은 약 3억달러 규모다. 뷰티·의류 소매 유통에서 약 2억달러, IT 기업인 PCS에서 약 8000만달러, 투자사인 렉스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약 2400만달러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다.”

사업이 커지면서 원하는 대로 전공을 접목하게 됐다.  

“대학 시절 주로 하드웨어를 공부했지만, 소프트웨어도 함께 공부했다. 첫 직장에서는 컴퓨터 간 네트워킹 업무를 담당했다. 지금은 흔한 기술이지만 당시에는 첨단 영역이었다. 사업하면서 우리가 직접 고도화된 물류·재고 관리 플랫폼을 만들어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독자적인 물류·재고 관리 시스템을 개발해 뷰티·패션 매장에 도입했다. 그 기술력이 쌓여 지금의 PCS가 됐다. 시스템 운용과 일부 개발 업무는 한국에 있는 외주 파트너사와 협업해 관리하고 있다.”

인재 채용과 관리에서 가장 중시하는 기준을 꼽자면.

“무조건 인성이 최우선이다. 면접 때 회사에 원하는 보상이나 환경을 먼저 솔직하게 물어본다. 그 대답을 바탕으로 이 사람이 어떤 가치관과 철학을 가졌는지 판단한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동료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선호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이기적인 사람은 결국 조직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다음이 정직과 성실함이다.”

직원 보상 체계도 독특하다고 들었다.

“직원에게 확실한 금전적 보상을 체감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 몰입해 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경영자도 당당하게 성과를 요구할 수 있다. 특히 성과가 뛰어난 상위 10%의 핵심 인재에게는 회사 주식도 부여한다. 이들 중에는 월급보다 더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다만 평가를 단기 성과만으로 하지는 않는다. 5년마다 상위 10%를 재평가한다. 1~2년 만에 새로운 결과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소 5년은 시간을 주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사는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나.

“회사 이윤 10%를 매년 투자한다. 기존 사업을 고도화하는 데 쓰기도 하고, 신사업이나 유망 기업에 투자하기도 한다. 필요하면 M&A도 검토한다. 결국 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번 돈을 다시 사업과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창업을 꿈꾸는 한국 청년에게 조언한다면.

“글로벌 박람회 등에서 한국 젊은 창업가를 만나보면 마음이 너무 성급하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지표보다 앞으로 가능성이나 미래 가치만 가지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자이자, 투자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면, 투자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검증된 결과다. 단계를 건너뛰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길게 호흡하면서 시장에서 통하는 증거를 하나씩 쌓아야 한다. 내가 만난 일부 젊은 창업가는 냉정한 시장조사 없이 겉 포장만 화려한 경우도 있었다. 기본기를 다지고, 끈기 있게 계단을 밟아 올라가라고 하고 싶다.” 

마드리드(스페인)=김양혁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