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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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인간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원하는 일을 하며, 자기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유는 육지에서와 다르게 체험된다. 바다는 어디보다 자유로운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제약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국제 해양 질서는 오래전부터 항해의 자유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 왔다. 바다는 어느 한 나라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철학에서 출발한다. 공해에서 항해의 자유는 국제무역과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세계 교역 대부분이 선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바로 이 원칙 덕분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역으로 성장한 국가에 항해의 자유는 곧 생존 조건이다. 그러나 선박이 연안국 영해를 통과하거나 항만에 입항하면 일정한 제약을 받는다. 연안국의 법질서와 안전 관리 체계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박은 일정한 독립성을 유지한다. 국제법은 연안국이 함부로 외국 선박에 승선해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자유와 질서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이다.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정작 자유를 가장 크게 내려놓는 사람은 선원이다. 승선하는 순간 선원은 이동의 자유를 상당 부분 포기한다.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쉬고 싶다고 배를 떠날 수도 없다. 터키(옛 튀르키예)의 한 항구에서 접안 순서를 기다리느라 열흘이 넘도록 외항에 정박한 적이 있다. 육지는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선원에게 진정한 자유는 외국 항구에서의 짧은 상륙이 아니다. 약정된 근무 기간을 선박에서 충실히 이행한 다음 귀국해 가족을 만나고 우리 땅을 밟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선장이 됐을 때는 또 다른 자유를 경험했다. 항로를 선택하고 선박 운항을 결정하는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 자유는 막중한 책임과 함께했다. 태풍 진로를 잘못 판단하면 수십 명의 선원과 수많은 화물의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항로를 선택할 자유는 있지만, 모두를 무사히 목적지까지 데려가야 할 책임도 함께 주어졌다. 바다에서는 자유와 책임이 언제나 함께 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 계속되던 시절, 나는 여러 차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 언제 기뢰나 미사일의 위협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항해했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바로 죽음의 공포 없이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항해의 자유의 소중함이었다. 이후 호르무즈해협에서 우리 선박과 선원이 장기간 항해를 계속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이동의 자유를 잃은 것은 물론, 전쟁의 위험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항해의 자유가 국제정치의 변화에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였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자유를 가져왔다. 목선은 철선으로, 범선은 기관선으로 발전하면서 선원은 침몰의 공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다. 위성항법장치와 선박자동식별장치(AIS)는 충돌 사고 위험을 크게 줄였고, 스타링크 같은 위성통신은 망망대해에서도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했다. 기술은 바다를 더욱 안전하게 했고, 선원에게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안겨 주었다.

항해의 자유를 일선에서 실행하는 사람은 선원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운 바다와 풍요로운 삶은 오늘도 자기 자유를 잠시 내려놓고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의 헌신 위에 세워져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그들의 희생에 걸맞은 예우를 고민해야 한다. 선원 연금과 복지제도의 확충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바다의 자유를 지켜 온 사람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자, 감사의 표현일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