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별을 겪는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이나 사물이 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이별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이별은 슬픔을 남긴다. 특히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관계가 끝나고 상대방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홀로 남겨진 이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준다. 지난 6월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토이 스토리 5’는 시간이 흘러 어린이와 이별하게 된 장난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95년 첫 작품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 역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카우보이 인형 우디의 벗겨진 뒷머리처럼 관객과 함께 나이 들어 왔다.
태블릿 PC 같은 전자 놀이 기기의 등장은 순식간에 장난감을 아이의 일상에서 밀어냈다. 여러 장난감을 늘어놓고 상상 속 결혼식이나 소꿉놀이를 하던 아이에게 빠르고 자극적인 디지털 기기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게임과 영상은 물론, 채팅까지 가능한 기기는 아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카우걸 인형 제시 같은 아날로그 장난감은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한 채 박스에 담겨 차고 한편으로 밀려났다. 장난감의 주인 보니의 부모가 유행에 뒤처지지 말고, 친구와 어울리라는 뜻에서 ‘릴리패드’를 선물했을 때 공룡 인형 렉스는 절규한다. “또 멸종 위기야?” 그 한마디는 장난감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았다.
변치 않는 동심의 기억
에밀리와 앤디를 거쳐 세 번째 주인인 보니를 만난 제시는 또다시 버림받을 위기에 놓이며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모든 장난감이 아이와 겪는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장난감은 변하지 않지만, 아이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관심과 애정을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여기에 기술과 유행의 변화까지 더해진다. 영화 속 장난감이 외면받은 이유는 단지 아날로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장난감 ‘더블 AA팀’의 삼총사 역시 더 진화한 디지털 기기에 자리를 내주며 잊혀 간다.
그러나 영화는 아이가 성장하며 장난감에 흥미를 잃는다고 해서 함께했던 추억과 그 가치마저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성장과 함께 찾아온 자연스러운 이별이었을 뿐이다. 더 이상 자기가 쓸모없다고 여긴 제시는 옛 주인 에밀리가 자기를 안고 영원을 약속했던 언덕의 커다란 나무를 홀로 찾는다. 에밀리가 떠난 뒤 타이어 그네만 덩그러니 남은 나무 아래에서 ‘제시와 함께 놀던 곳’이라는 글귀와 보물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 속에는 어느덧 어른이 된 에밀리와 그녀의 딸 사진이 들어 있었고, 에밀리가 딸의 이름을 ‘제시’로 지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제야 제시는 에밀리가 자기를 잊은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이 에밀리의 삶에 오래도록 남아 딸의 이름으로 이어질 만큼 소중한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장난감 유치원
아이가 늘 함께하는 장난감이 점점 커져 마침내 건축의 크기에 이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건축이 아이가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유치원이라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2017년 세계적 권위의 모리야마 RAIC 국제 건축상을 받은 ‘후지유치원’은 건축물 자체를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대한 장난감으로 만든 작품이다. 부부 건축가 데즈카 다카하루와 데즈카 유이는 2007년 도쿄 외곽에 완공한 이 유치원에 ‘향수를 품은 미래’라는 개념을 담았다. 디지털 기기가 놀이를 대신하기 이전, 아이가 본능적으로 뛰고 오르며 세계와 관계를 맺었던 놀이 방식을 건축으로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유치원은 둘레 183m의 타원형 지붕이 푸른 안뜰을 감싸안은 구조다. 따스한 목재 데크로 마감된 지붕 위에서는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그 사이사이에는 또 다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놀이를 이어간다. 건축가에 따르면, 이곳의 아이는 하루 평균 6㎞를 뛰며 교실과 마당, 옥상을 자유롭게 오간다. 지붕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낮게 설계돼 교실의 천장 높이는 2.1m에 불과하다. 계단 아래에는 높이차를 줄이기 위해 작은 흙 둔덕을 만들었고, 계단 대신 놀이처럼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도 함께 설치됐다.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아이가 스스로 환경을 탐색하며 자기만의 놀이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유치원 곳곳에 다양한 장치가 마련됐다. 아이는 옥상의 천창을 통해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친구는 어디에 있는지, 호기심에 고개를 내밀면 아래에서는 아이가 손을 흔들며 올려다본다. 옥상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난간은 아이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안뜰을 입체적인 원형 놀이터로 만든다. 법규에 따라 철제 난간의 세로 살은 아이의 머리가 빠지지 않도록 10㎝간격으로 배치됐지만, 아이가 그 사이로 다리를 내밀고 앉아 안뜰의 친구와 눈을 맞추며 몸을 흔든다. 안뜰에는 옥상의 빗물을 모아 저장하는 다섯 개의 우물이 놓여 있다. 과거 마을의 우물이 사람을 불러 모았듯, 이곳에서도 아이는 우물 주변에 모여 대화하며 또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도시의 시간 저장소
후지유치원은 아이를 과도하게 통제하거나 보호하기보다, 정글에 놓인 아이처럼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며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익히도록 한다. 지붕 아래 교실에는 완전히 개폐되는 미닫이창을 설치해 실내와 자연의 경계를 허물었다. 교실 역시 벽으로 구획하지 않고 열어 두어 600명의 아이가 안팎에서 만들어 내는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서로 뒤섞이며 숲속의 백색소음 같은 환경을 이룬다. 내부에는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수백 개의 오동나무 상자를 배치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쌓고 옮기며 의자와 책장, 전시대, 놀이 도구 등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자유로운 평면 구성은 아이들이 한자리에 앉아 조용히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탐색하며 서로 협력하도록 이끈다. 여기에 고리 형태의 공간은 아이들이 공동체 속에서 늘 서로를 바라보고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언젠가는 아이와 이별해야 하는 장난감처럼 유치원 역시 아이와 헤어질 수밖에 없다. 건축물은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아이는 성장해 저마다의 삶으로 떠나간다. 후지유치원에는 이러한 시간과 변화의 간극을 이어주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건축가는 부지에 원래 있던 나무를 그대로 살려 건축물이 그들을 품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유치원 어디에서든 아이의 시선에는 커다랗고 푸른 느티나무가 들어온다. 느티나무는 아이와 함께 계절을 지나며 자라고, 아이가 떠난 뒤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머무는 건축의 시간과 흘러가는 아이의 시간이 한 풍경 속에서 다시 만난다.
이제 후지유치원의 첫 졸업생은 곧 스무 살을 맞이한다. 언젠가 도시를 오가다 타원형 유치원과 느티나무 풍경을 다시 마주한다면, 그들은 행복했던 동심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그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추억의 장소가 아니다. 자유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처음 배운 삶의 첫 공동체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