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6월 29일 국민보고회를 통해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이하 메가 프로젝트)’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Physical AI·물리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AI) 등에 4755조원 규모 투자금이 투입되는 한국 경제의 승부수다. 광주 등 호남 지역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8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팹(fab·공장) 4기를 짓겠다는 계획은 단번에 시장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이후 시장은 공급과잉 공포에 짓눌렸다. 국민보고회 직전 거래일인 6월 26일 이후 7월 13일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25%, 31% 하락했다. 코스피도 이 기간 19% 하락하며 지수가 6806.93까지추락했다.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 역사상 최대 분기 영업이익(89조4000억원)을 올린 2분기 실적을 발표했고,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ADR(주식예탁증서)을 성황리에 상장하는 등 호재가 나왔지만, 악화한 투자 심리를 되돌리지 못했다.
투자 빙하기 끝낼 승부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충청·강원 AI 데이터센터, 영남 피지컬 AI 산업단지를 중심축으로 AI 대전환을 추진하는 메가 프로젝트가 나온 배경에는 지난 3년간 한국 경제의 투자 빙하기가 자리 잡고 있다. 설비·건설투자등이 포함된 총고정자본형성(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23년 3분기 이후 2025년 4분기까지 2024년 1분기를 제외한 9개 분기가 모두 마이너스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따른 건설투자 위축과 2023~2025년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사이클 하강기에 반도체 기업이 신규 팹 투자를 늦춘 영향이 경제 전반의 투자 공백을 낳은 것이다. 미국의 AI 투자 붐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3% 안팎으로 반등할 전망이지만, 성장의 온기는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 올해 상반기 수출은 4967억달러로 지난해보다 48% 증가했지만, 증가액(1620억달러) 대부분이 반도체(1195억달러)에서 나왔다. 메가 프로젝트에는 정부가 나서야 메모리 초격차를 국가 성장 동력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AI 대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어렵다고 보고, 정부가 선제적으로 투자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메모리는 여전히 사이클 산업
하지만 영화 ‘빅쇼트’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는 7월 1일(이하 현지시각) 한국의 대규모 자본 지출 계획을 AI 투자 사이클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글을 자기 투자 사이트에 올렸다. 블룸버그는 7월 8일 칼럼에서 한국의 메가 프로젝트가 기존 메모리 업계의 경쟁 질서를 흔들 수 있으며,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공격적인 증설과 함께 다가올 하강 사이클의 충격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 리더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AI 산업이 구조적인 성장 궤적을 그리더라도 부품인 메모리는 공급 부족· 과잉 사이클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알리안츠리서치, 블룸버그인텔리전스 등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평택·용인 팹 증설이 마무리되는 2028년부터는 초과수요가 해소되고 메모리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AI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성장하더라도 메모리는 여전히 경기순환 산업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가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시각은 하이퍼스케일러의 수익성 기반 투자 조절 가능성을 시사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 축소를 권고한 모건스탠리의 7월 6일 보고서에도 드러난다. 6월 28일 연례경제보고서를 발간한 국제결제은행(BIS)은 “AI 투자 수익률에 대한 실망은 자본 지출 붐을 투자 불황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견해와 글로벌 메모리 기업의 증설 계획을 종합한 보고서에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은 “2027년 하반기부터 2029년 하반기가 반도체 수급의 보릿고개에 해당한다”고 했다.
AI 생태계 구축이 성패 가른다
AI 부가가치는 메모리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서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에서 창출된다. 그러나 한국은 전자 산업 등 AI 생태계의 반도체 쏠림이 심각하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치 100으로 한 생산능력지수에서 반도체는 195(이하 2026년 5월)까지 상승해 생산 기반이 6년 새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반면 전자 부품 66, 통신 장비 97, 로봇 등 특수 목적용 기계 89, 컴퓨터는 28로 모두 기준치를 밑돌았다. 특히 2023년 AI 혁명 이후 반도체 생산능력은 40% 확대됐지만, 나머지 전자 업종은 10% 축소되는 등 기초체력이 취약해졌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서버는 설계·생산능력을 갖춘 국내 유일 기업인 KTNF의 지난해 매출이 250억원 수준에 그칠 정도로 시장 규모가 영세하다. AI 생태계와 관련해 정부는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패키징 거점을 육성하고, 영남권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공급망 허브로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우선순위는 아닌 것 같다. 서버·네트워크 육성 전략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이면 메가 프로젝트로 구축되는 AI 데이터센터가 외국산 서버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반도체 팹 증설은 AI 생태계 전략의 일부일 뿐, 추론 칩 팹리스, 네트워크 기술, 소프트웨어, 소부장을 함께 육성해야 한다”는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주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3대 메가 프로젝트 성패는 메모리 경쟁력을 어떻게 AI 생태계 경쟁력으로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메모리 팹 만으로 AI 가치 사슬 구축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AX의 승부처는 투자 규모보다 AI 생태계 구축 방향에 있다.
TSMC 넘어선 대만 AI 서버 수출
한국이 메모리 초격차 유지에 ‘올인’하는 동안 대만은 AI 서버를 중심으로 제조업 전체를 AI 가치 사슬에 편입시키고 있다. 대만 경제부에 따르면, 대만의 2026년(1~5월) 컴퓨터·서버 수출은 1205억6000만달러로 총수출(약 3420억달러)의 35.3%를 차지하며 반도체(1090억6000만달러·31.9%)를 추월했다. 2024년 846억달러에 그쳐 반도체(1650억달러)의 절반 수준이던 컴퓨터·서버 수출이 2025년(1835억달러) 반도체(2092억달러)에 육박한 수준으로 커졌고, 올해는 대만의 최대 수출 상품으로 올라섰다. TSMC 중심의 반도체 산업에 의존하던 대만 경제가 AI 인프라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추가한 것이다. 대만 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9.64%로 전망하고, 두 자릿수 성장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건 제조업 AX(AI 전환·AI Transformation) 전략 덕분이다. 2017년부터 AI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 대만 정부의 ‘AI 타이완 액션 플랜’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대만은 서버와 전력, 네트워크 등으로 제조업 AX를 이뤄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