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정부 정책과 국정 운영 방식은 여전히 과거 개발도상국형 틀에 갇혀 있다. 정부가 시장을 직접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조급함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소득 5만달러(약 7450만원) 목표를 외쳐도 체질 개선은 불가능하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7월 20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3·4·5 정책 비전’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3·4·5 정책 비전은 정부가 7월 14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 전략’의 핵심 내용으로, 잠재성장률 3%,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강 교수는 경제성장론과 경제발전론을 연구한 국내 대표 노동·성장 경제학자다. 지난 2월에 제56대 한국경제학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국내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반도체 가격 상승에 따른 착시 효과를 두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성장 구간’이라며 자만할 때가 아니다”라며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만능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노동·금융·부동산 등 전 분야에서 예측 가능하고 유연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업가형 지원 국가’로 거듭나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성진 - 한국경제학회 회장, 
고려대 경제학,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의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장, 전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사진 강성진
강성진 - 한국경제학회 회장, 고려대 경제학,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의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장, 전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사진 강성진

정부의 3·4·5 정책 비전에 대한 평가는.

“먼저 비전과 단기 목표가 뒤엉켜 있다고 생각한다. 2026년 반도체 경기회복 등에 힘입어 잠재성장률 3%와 무역 4강 입성은 올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정부가 주도해 만든 정책 성과라기보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현상이다. 비전은 장기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정부는 수치를 목표로 세우기보다 성장 흐름에서 소외된 중소기업·자영업자 등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고소득층 소득은 늘고 저소득층은 감소하는 ‘K자형 양극화’ 에 빠져있다.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이 줄어드는 아래쪽 K를 채우는 사회 안전망 마련에 먼저 나서야 한다. 개인적으로 3·4·5 정책 비전에서 정부 부처 간 협업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다. 특정 부처의 실적 자랑처럼 비치는 단발성 정책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한가.

“반도체 중심 성장은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므로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데이터처의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6만3000명 늘었지만, 15~64세 취업자는 오히려 26만 명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같은 기간 19만7000개 급감했다. 이를 보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고용 축소 성장’ 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 일자리 절벽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특정 학과 신설이나 정원 확대 같은 임시방편을 내놓고 있는데, 2~3년 만에 기술 트렌드가 급변하는 상황을 모두가 봤다. 코딩 교육 의무화 등은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뒷북이 됐다. 그러니 당장 취업이 가능한 졸업 예정자와 졸업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개혁과 노란봉투법 등 최근 현안에 대한 견해는.

“정부의 노동정책은 불확실성과 경직성을 극대화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노란봉투법은 기업 입장에서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폭증시켜 국내외 투자를 위축시킨다. 지금 필요한 건 노동 유연 안정성이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50만 명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2030년대까지는 여전히 일자리 초과 공급이 발생할 것이다. 이미 진입한 기존 노동자에게는 사회 안전망으로 안정성을 주되, 신규 진입자를 위해 시장 진입의 유연성을 강화하는 투 트랙 접근이 필수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시장 논란인데.

“초고위험 금융 상품을 증시 변동성이 커진 시점에 급하게 출시한 건 정책 타이밍의 실책이라고 본다. 레버리지 상품 자체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50%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빚투’와 투기성 자금을 부추긴 꼴이 됐다. 더 큰 문제는 관료의 태도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대전환 시대를 맞아 구조적 전환을 이뤄냈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정책 당국이 과오를 겸허히 인정하지 않고 ‘이왕 출시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시장과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저버린 행태다.”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서울 외곽까지 집값이 폭등하고 전월세 대란이 벌어졌다.

“규제만 하는 부동산 정책은 100% 실패한다. 시장은 규제 시그널이 나오는 순간 오히려 더 오를 것이라고 강하게 기대한다. 실거주 의무화나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징벌적 규제는 1가구 1주택만 남기면서 전월세 매물을 없애고 있다. 고소득층을 잡으려다 조세 전가 효과로 인해 저소득층 세입자의 삶만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격이다. 부동산은 시장 수급 원리에 맡겨야 한다. 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보유세·양도세 등)에 맞춰 예측 가능하게 두고, 서울 진입 1시간 이내 지역을 연결하는 GTX 개통 등 실질적 교통 공급을 늘려야 한다. 동시에 분양 전환으로 투기를 유발하는 임대주택이 아니라, 저소득층이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진짜 공공 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하는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으로서 현 정부 경제 컨트롤타워에 당부하고 싶은 제언은.

“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개발도상국형 정책에 사로잡혀 시장을 통제하고 주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자본주의 역사상 정부가 시장을 이긴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정부는 직접 국영기업이나 펀드를 만들어 플레이어로 뛸 게 아니라,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뛸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기업가형 국가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시장이 규제에서 벗어나 자율화되는 전환기에는 고통과 변동성이 수반된다. 국민과 정치권 모두 이를 견뎌내는 여유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조급증을 버리고 예측 가능성과 시장 자율성을 보장할 때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 시작될 것이다.” 

Plus Point

정부, 반도체 힘입어 성장률 전망 높였는데… 고용은 글쎄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2026년 한국 경제가 ‘3% 성장’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예고했지만, 거시 지표의 부활 뒤 고용 시장에는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정부가 거시 경제지표 전망을 올리며 낙관론을 펼치면서도 정작 고용 전망은 스스로 깎아내리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7월 14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 전략’에서 2026년 실질 GDP 성장률을 지난해(1.1%)의 약 세 배에 해당하는 3%로 전망했다. 2025년 수출액이 세계 8위를 기록한 한국은 지난 6월 수출액이 1023억달러(약 152조원)로 중국,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월 수출 1000억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역대 최고치인 2900억달러(약 432조원) 경상수지 흑자가 확실시되면서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4만달러 진입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잠재성장률 3%, 수출 4강, 소득 5만달러를 골자로 한 3·4·5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거시 지표의 온기는 고용 시장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정부는 2026년 취업자 증가 폭을 기존 16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낮춰 잡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정부가 성장률 수치는 높이면서 고용 전망은 하향 조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강성진 교수는 “고용 창출력이 낮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수출 호조가 실질적인 일자리 늘리기로 이어지지 않는 착시 효과가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2.6%로 예상되는 연간 물가 상승률과 고(高)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 악재는 내수 진작을 가로막는 위험 요인이다. 강 교수는 “반도체 성장이 가져온 성과가 내수 경기와 청년 일자리로 확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윤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