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7월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부동산 금융정책 경청 토론회에서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청년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이와 정확히 같은 철학으로 설계된 정책이 이미 영국에서 시행됐고, 그 성적표도 나와 있다.

2013년 영국 정부가 도입한 ‘헬프 투 바이(Help to Buy)’다. 신축 주택을 사는 사람에게 정부가 집값의 20%, 런던에서는 최대 40%를 지분 대출 방식으로 지원하고, 첫 5년간은 이자를 받지 않는 제도였다. 덕분에 자기 돈은 집값의 5%만 있으면 됐다. 2019년까지 26만 가구가 이 제도를 이용했고, 정부 대출만 153억파운드(약 30조6600억원)가 투입됐다. 자기자본이 부족한 청년의 내집 마련 문턱을 낮춰주겠다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정책 설계다.

박선영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이 정책 효과를 정밀하게 검증한 연구가있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펠리페 카로치, 크리스티안 힐버, 샤오룬 유가 2024년 국제 학술지 ‘도시 경제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 ‘주택 담보대출 신용 확대 정책의 경제적 영향: ‘헬프 투 바이’ 사례를 중심으로’다. 

연구 방법은 직관적이다. 런던의 행정 경계를 사이에 둔 두 지역은 사실상 같은 생활권이지만, 경계 안쪽에서는 집값 40%까지 지분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바깥쪽에서는 지원 비율이 20%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접경 지역도 같은 생활권이지만,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지원 대상 주택 가격 상한이 60만파운드(약 12억원)와 30만파운드(약 6억원)로 갈린다. 제도만 다르고 나머지 조건은 같은 두 지역을 비교하면 정책의 순수한 효과가 드러난다.

결과는 교과서적이었다. 공급이 꽉 막힌 런던에서는 착공 물량이 전혀 늘지 않은 채 주택 신축 가격만 8% 가까이 올랐다. 정부가 제공한 이자 혜택의 가치는 집값 4% 남짓이었지만 집값은 그 두 배가 올랐다. 연구진 계산으로 런던의 신축 주택 매수자는 이 제도 ‘덕분에’ 평균 3만4000파운드, 우리 돈 약 6800만원을 더 냈고, 제도 대상도 아닌 기존 주택 가격까지 1~2% 올랐다. 반면 주택 공급을 늘릴 여력이 있던 웨일스 접경의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가격 상승 없이 건설 물량만 늘었다. 

그럼 런던에서 이득은 누가 봤나. 제도에 참여한 건설사 매출은 미참여사보다 57% 이상 증가했고, 이익 증가 폭은 그보다 더 컸다. 정책은 ‘구매 지원’이었지만, 연구진 결론은 정반대였다. 정작 집값이 가장 비싸고 공급이 막힌 지역의 청년은 도움받지 못했고, 수혜는 지주와 건설사, 기존 주택 소유자에게 돌아간 역진적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글로벌 주택 위기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2011년 이후 주택 수요가 40% 증가하는 동안 주택 수는 그 절반만 늘었고, 10년 새 임대료가 두 배 넘게 뛰면서 부모와 함께 사는 25~34세 비율이 19%에서 42%로 치솟았다. 소득 하위 3분의 1 청년만 놓고 보면 더블린과 샌프란시스코의 부모 동거 비율은 75%에 달한다. 

런던은 그렌펠 화재 이후 겹겹이 쌓인 규제 비용으로 신축 사업의 채산성이 무너져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한 부지가 쌓여 있다. 

한국은 주택의 ‘공급’조차 가계 빚, 즉 수요자 금융으로 짓는 나라다. 이제는 공급 부족 문제를 수요자 금융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대출 총량 관리 원칙을 지키며 주거 취약 계층의 주거비 경감과 공공 임대주택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빚이 아니라 더 낮은 집값이다.

그런데 주택 문제를 해결한 도시가 있다. 2016년 대규모 용도지역 상향으로 고밀도 개발을 허용한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건설 붐으로 실질 임대료가 제자리에 머물렀다. 미국에서도 가장 건설 친화적인 도시로 꼽히는 오스틴은 명목 임대료까지 떨어지며 자기 집을 마련한 청년이 70%에서 80%로 뛰었다. 임대료 하락 폭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주택에서 가장 컸다. 가격을 잡은 곳은 예외 없이 공급을 늘린 도시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느 쪽인가. 우리 사정은 한 겹 더 복잡하다. 한국은 제도권 주택금융이 없던 시절, 전세와 선분양이라는 사적 금융으로 집을 지어 올린 나라다. 전세의 실질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을 빌려주는 것이고, 선분양의 실질은 수분양자가 건설사의 건축비를 대주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제도권 신용이 이 구조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1998년 165조원이던 가계 대출은 2025년 1853조원으로 11배, 44조원이던 주택 담보대출은 1171조원으로 27배 불어났다. 같은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5배 늘었을 뿐이다. 시행사는 사업비의 3% 남짓한 자본금으로 개발을 일으키고, 부족분은 수분양자의 중도금 집단 대출로 메운다. 요컨대 한국은 주택의 ‘공급’조차 가계 빚, 즉 수요자 금융으로 짓는 나라다. 가계 부채를 조이면 공급이 흔들리고, 공급을 일으키려면 가계 빚을 늘려야 하는 악순환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이 구조에서 신용과 집값은 함께 달린다.집값이 오르면 담보 가치가 높아져 대출이 늘고, 늘어난 대출은 다시 집값을 밀어 올린다. 여기에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산다’는 불안이 얹히면 시장은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과열된다. 경제성장률 전망이 0%대로 주저앉은 해조차 서울 아파트값이 급등을 반복한 것은 주택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신용과 기대 심리임을 보여준다. 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전세 대출이 1% 늘면 매매가 변동률은 0.37%포인트 높아지고, 갭 투자가 1% 늘면 수도권 매매가가 약 0.18% 오른다. 주거 안정을 위한 금융이 집값을 올려 수혜자의 부담을 되레 키우는 조삼모사 구조다.

이 진단으로 보면 6억원 한도 완화 요구성격도 달리 보인다. 첫째, 공급이 막힌 서울에서 차입 여력의 일괄 확대는 헬프 투 바이의 런던을 재현할 뿐이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켜면 마시는 순간에는 갈증이 풀리는 듯하지만, 갈증은 더 깊어진다. 둘째, 분배의 문제가 있다. 6억원의 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요건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청년은 이미 소득 상위 예비 매수자다. 정작 벼랑에 선 쪽은 매매가 폭등의 그림자 속에서 전월세 가격 급등으로 소득 대비임대료 부담이 치솟는 주거 취약 청년이다. 목소리가 큰 쪽은 전자지만, 정책이 먼저 서야 할 자리는 조용한 후자다.

이제는 공급 부족으로 생긴 문제를 수요자 금융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한다. 첫째, 가계 대출 총량 관리와 DSR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지키되, 청년 지원의 초점을 매수 차입 확대가 아니라 주거 취약 청년의 주거비 경감으로 옮겨야 한다. 둘째, 근본적으로는 주택 공급의 자금줄을 가계 신용에서 떼어내야 한다. 시행사의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장기 기관 자본이 임대주택과 개발의 자금을 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재정을 써서 공공 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임대주택 공급 대부분을 민간에 맡기면서 동시에 다주택자 축소를 도모하는 것은 딜레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빚이 아니라 더 낮은 집값이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