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예술적 재능을 선망한다. 타고난 능력 하나로 세상의 높은 벽을 가뿐히 뛰어넘고 눈부신 트로피를 거머쥐는 이를 보며 삶은 평등하지 않다고, 성공은 선택받은 자의 전유물이라 단정 짓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행간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천재성이 눈부신 꽃을 피우기까지 그 이면에 본인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함께 반드시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 국영 탄광 스무 곳을 폐쇄하고 약 2만 명의 광부를 감원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을 세웠다. 비효율적인 사양산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영국의 고질병이던 노동조합의 힘을 꺾어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로 체질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다. 광부들은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고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시위를 냉정하게 진압해 나갔다. 

김규나 -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탄광 마을 더럼도 파업의 열기와 생존을 건 투쟁의 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에게 탄광 폐쇄는 단순한 실직이 아니라 대를 이어 가문과 지역공동체를 지탱해 온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는 생존의 위기였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가난을 이기지 못한 일부 광부는 대열을 이탈해 다시 탄광으로 향했다. 투쟁을 계속하던 사람들은 그들을 배신자라 부르며 침을 뱉고 야유를 퍼부었다.

재키도 격렬히 파업에 동참했다. 1년 전 아내를 잃은 그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은 이미 광부의 삶을 이어받은 듬직한 동료였다. 열한 살 빌리도 머잖아 광부가 될 거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광부란 직업이 꼭 좋아서는 아니었다. 다만 태어난 후 한 번도 더럼을 떠나본 적 없는 그는 다른 삶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권투를 배울 수 있게 과외비를 내주는 것이 빌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과 후 교육이었다. 

힘 있는 사내가 되어야 한다며 사각의 링 위에서 주먹을 휘두르라고 권투장에 보내는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빌리의 마음은 체육관 한쪽에서 열린 발레 교습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복싱 글러브를 끼는 대신 여자아이들 속에서 토슈즈를 신은 소년. 그것은 노동과 생존만이 전부인 메마른 탄광 마을에서 피어난, 가당치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이질적인 꿈이었다.

거친 사내의 세계에서 발레하는 소년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빌리의 몸짓에서 요동치는 재능을 단번에 간파한 것은 발레 강사 윌킨슨 부인이었다. 그녀는 빌리의 날개가 되어주기를 자원하고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소년을 이끈다. 천재성은 홀로 피는 꽃이 아니었기에 매서운 현실로부터 그 가능성을 지켜줄 스승의 존재는 빌리의 삶에 찾아온 첫 번째 행운이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장면들. /사진 유니버설 스튜디오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장면들. /사진 유니버설 스튜디오

빌리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게 좋았다. 선생님을 따라 까치발을 하고, 다리를 들어 올리고, 어지러운데도 빙글빙글 돌다 허공으로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지금껏 본 적 없는 세상이 보였다. 리듬과 박자에 맞춰 춤을 출 때면 빌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 것도 같았다. 빌리는 가족 모르게 발레 이론을 공부하고 턴을 익히며 춤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빌리가 권투 대신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재키는 당황한다. 사내자식이 춤을 추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링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거친 바닥을 차고 올라 어린 새처럼 춤을 추는 아이의 몸짓을 목격한 순간, 그의 마음은 흔들린다. 빌리의 영혼에는 자신이 평생 품어보지 못한 눈부신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만약 빌리 안에 찬란한 재능이 감춰져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른 체해도 되는 걸까, 그는 자신을 의심했다. 

재키에겐 탄광 안의 세상이 전부였다. 시커먼 탄가루가 폐부를 찌르는 지하 수백 미터 아래의 막장, 그 어둠이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다시 자기와 큰아들에게로 대를 물려 내려온 유일한 인생의 궤적이었다. 런던이라는 머나먼 도시는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재키는 처음으로 꿈을 꾼다. 빌리는 어둠 속에 갇힌 광부의 삶을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오디션에 갈 비용이 없다면 내가 대겠어요.” 

“빌리는 내 아들이에요.”

윌킨슨 부인의 제안을 재키는 단호히 거절한다. 파업의 선봉에 서서 투쟁하던 그는 시위대에서 등을 돌린다. 빌리가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오르게 할 수만 있다면, 배신자라는 낙인과 멸시는 감수할 수 있었다. 평생 지켜온 광부의 자존심 따윈 내던져도 좋았다. 그는 빌리의 오디션 비용과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료의 분노 어린 야유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출근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빌리는 아버지와 형이 지켜온 탄광촌의 시커먼 풍경을 뒤로하고 런던에서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는다. 재키는 붉어진 눈시울로 빌리를 태운 버스가 탄광의 뿌연 연기를 뚫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쓸쓸한 이별이 아니었다. 자기처럼 탄광 구덩이에서 한평생 살아선 안 된다고, 부디 이 지독한 가난과 어둠의 대물림을 끊고 저 넓고 환한 세상으로 날아가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였다. 

빌리는 마침내 무거운 중력을 거스르듯 화려하게 날개를 펼치고 무대 위로 높이 날아오른다. 어두운 객석에 앉은 아버지는 물기 어린 눈망울로 아들의 무대를 바라본다. 빌리의 도약은 시커먼 탄가루 속에서 자식의 인생은 눈부시기를 바라며 자기를 통째로 태워버린 아버지의 굽은 등과 동생의 길을 응원하며 기꺼이 탄광의 어둠을 지켰던 형의 사랑이 함께하는 순간이었다.

문득 생의 막장에 가로막혀 내 안의 재능과 꿈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절망하기 전에 등 뒤를 가만히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그곳에는 내 거친 몸짓에서 가능성을 읽어준 누군가의 온기 어린 시선과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기꺼이 생의 버팀목이 되어준 이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을지 모른다. 홀로 피어나는 재능은 없다. 꿈을 밀어 올려준 사랑을 기억하는 한, 우리의 생 역시 언제든 눈부시게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김규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