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에서 7월 29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동반 발동됐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360.42포인트(5.98%) 하락한 5663.24로 마감했다. 이틀간 증발한 시총만 865조원이다. 코스닥도 43.17포인트(6.12%) 내린 662.68로 마감했다. 앞서 7월 28일에는 10.84% 급락한 6023. 66으로 마감해 사상 최대 일일 하락 폭을 기록했다.
코스피 지수가 6000선 아래로 내려간 건 4월 14일 이후 처음이다. 코스피는 1월 27일 5000선을 넘어선 데 이어 2월 25일 6000선을 돌파했다가 3월 미국·이란 무력 충돌로 5000대까지 떨어지며 조정을 거친 뒤 4월 14일 6000선을 재돌파했다. 5월 6일 7000선, 8거래일 만인 5월 15일 장중 8000선을 넘어섰고, 6월 18일 처음으로 종가 기준 9000선을 넘어섰다. 6월 19일에는 장중 9385.5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6월 22일에는 9114.55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최고치에 올랐다. 이때부터 시장에서는 주식시장 전반의 체질 개선이 아닌 일부 반도체 대형주와 고위험 파생상품이 끌어올린 ‘착시’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외국인 순매도와 레버리지發 왝더독
실제 최근 한 달 새 시장은 빠르게 식고 있다. 종가 최고치(6월 22일) 이후 겨우 37일 만에 6000선 아래로 내려가 5663.24로 마감했다. 6000선을 처음 돌파한 지 약 5개월 만에 다시 60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6월 말 종가(8476.48) 대비 7월 29일까지 하락률은 33.2%로, 하나증권이 7월 28일 기준 집계한 월간 하락률이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인 1990년(-28.9%)보다 낙폭이 더 크다. 7월 30일 코스피는 5593.56으로 마감하며 올해 장중 최고점 대비 40.4% 하락했다. 코스닥도 올해 최고점 대비 47.6% 하락했다. 이번 하락의 배경에는 국내 투자 심리에 영향을 주는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매도가 있다. 노무라증권 신디 박 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은 6월 22일 고점 이후 7월 24일까지 약 15조8000억원(1080억달러)을 순매도했다. 한국거래소 집계로는(코스피 기준) 상반기 외국인 순매도액이 사상 최고치인 148조316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차익 실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확대 여력 둔화, 레버리지 상품 확대에 따른 수급 불안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반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매수 여력이 있었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는 국내 주식 투자 비중 목표치에 근접해 추가 매수 여력이 줄어든 상태다.
또 다른 하락의 주원인으로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인한 매도와 반대매매(마진콜·강제 청산)가 지목된다.
금융 당국은 5월 27일 미국·홍콩 등 해외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서학개미’ 자금을 국내로 유도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주를 기초 자산으로 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ETN(상장지수증권) 18종(상장 규모 약 4조3227억원)을 상장시켰다.
기초 자산 가격 변동 폭의 두 배 수익을 추종하는 이 상품을 개인투자자는 6월 19일까지 약 8조2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누적 순매수 규모는 더 늘었다. 이들 단일 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의 합산 순자산(AUM)은 6월 한때 약 16조원까지 늘었으나, 7월 말 하락장을 거치며 8조원대로 줄었다. 레버리지 ETF는 일간 수익률 두 배를 매일 다시 맞추는 델타 리밸런싱(목표 배율 재조정을 위한 기초 자산 재매매)을 하는데, 하락장에선 대규모 매도 물량이 발생하며 하락을 증폭시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총의 절반을 웃도는 구조에서 상승장을 이끌었던 두 종목의 쏠림 현상이 하락장에서는 그대로 수급 폭탄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여기에 개인투자자의 증거금 부족에 따른 반대매매까지 겹치면서, 파생상품이 기초 자산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금융 매체 배런스는 7월 27일 ‘한국의 레버리지 ETF 도입이 역풍을 맞았다’는 기사에서 “서학개미를 유치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변동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적 좋은데 투매, 지정학 리스크 겹쳐
글로벌 AI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SK하이닉스는 7월 29일 올해 2분기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전년 대비 557.2%↑, 영업이익률 76%)을 내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발표했다. 5개 분기 연속 신기록이다. 하지만 애초 증권가 컨센서스에는 못 미친 데 이어(매출 –5.5%, 영업이익 –6.4%), 주주 환원과 핵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장기 계약에 대한 구체적 신호를 내지 못하면서,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19.61%까지 하락 후 9.61% 하락 마감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올스프링의 게리 탄 매니저는 “SK하이닉스가 양호한 실적을 냈지만, AI 시장에선 실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장기 계약 체결, 주주 환원 확대 같은 추가적인 촉매가 없다면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도 국내 주식시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는 7월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 기술특례시장인 커촹반(科創板)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466% 급등해 중국 본토 시총 1위(약 706조9360억원)에 올랐다. 국영기업 상하이 아이성나 전자기술그룹의 반도체 핵심 장비 액침식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양산 소식이 전해지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계감은 커졌다. 여기에 이란 혁명수비대의 요르단 미군 기지 미사일 공격과 미·사우디의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공습으로 국제 유가도 반등 압력을 받았다. 7월 29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3.50~3.75%로 5회 연속 동결했지만, 위원 세 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다음번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
당국 늑장 대응… 반등 조건 충족될까
개인투자자가 입은 손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품 중 일부는 최근 한 달 새 60% 이상 손실을 기록했다. 매수 심리가 약해지면서, 외국인 매도 물량을 국내 자금이 흡수하는 동력이 약해졌다.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7월 1일 37조3393억원에서 7월 16일 33조3624억원으로 약 4조원(10.7%) 감소했고, 코스닥 신용 융자 잔액도 한 달여 만에 2조원 넘게 줄며 7조원 선 아래로 내려갔다. 예탁금도 한 달 새 32조원 가까이 줄었다.
금융 당국은 시장 상황이 악화하자 대응에 나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7월 29일 국회에서 “금융 당국이 금융시장의 최종 책임자로서 국민의 신뢰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구윤철 부총리,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위원장, 이찬진 원장,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이 참여한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는 레버리지 ETF 개인별 투자 한도(총투자 금액 20% 이내 예시) 설정, 긴급 시장 안정화 조치 법적 근거 마련, 과다호가 부담금 방식의 거래 비용 부과, 모의 거래 도입 등을 즉시 추진하기로 했다. 기본 예탁금 한도를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올리는 시행 시점도 8월 5일에서 7월 31일로 앞당겼다.
증권가는 외국인 매수 전환, 레버리지 ETF 순자산의 적정 수준(약 5조5000억원) 감소, 한시적 공매도 금지, 증권시장안정화 펀드 가동 여부를 반등 조건으로 꼽는다. 하나증권 이경수 연구원은 7월 28일 보고서에서 이 네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돼도 공포 프리미엄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