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충칭에서 2025년 9월 열린 스마트 차이나 엑스포에서 유니트리의 로봇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충칭에서 2025년 9월 열린 스마트 차이나 엑스포에서 유니트리의 로봇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 현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현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 현 덴톤스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현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펼쳐지는 인공지능(AI) 혁명은 가상 공간의 텍스트와 이미지 출력 단계를 넘어, 물리적 실체가 있고 현실 세계의 노동을 수행하는 ‘체화된 AI(Embodied AI)’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축이 바로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다. 휴머노이드는 AI, 반도체, 배터리,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미래 산업이다. 

이러한 기술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보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단순한 ‘제조 공장’의 지위를 넘어 글로벌 생태계의 주도권을 빠르게 확대하는 ‘로봇 굴기’를 현실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대한민국은 추격자 딜레마를 극복하고 국가적 생존을 위한 명확한 K-로봇 전략을 정립해야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중국 로봇 기업의 급격한 성장을 정부의 보조금 정책 결과로만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국 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급속도로 장악하고 있는 중국 로봇 산업의 본질적인 파괴력은 정책과 자본시장, 제조 공급망, 대규모 실증 인프라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생태계’로 통합되어 강력한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 ‘로봇+’ 정책, ‘휴머노이드 혁신 발전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국가 차원의 육성 전략을 추진해 왔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지방정부도 산업 펀드 조성과 공공 조달을 통해 기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며 대규모 실증 시장을 마련했다. 정부가 시장을 만들면 지방정부 산업 펀드와 민간 벤처 자본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이는 다시 공급망 확대와 양산 체제로 연결된다. 정부가 창출한 초기 시장을 바탕으로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초고속 부품 공급망을 구축해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춘다. 대량 양산된 로봇을 산업 현장에 대거 배치함으로써 방대한 운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다시 AI 알고리즘 고도화에 밀어 넣는 ‘데이터 플라이휠’ 구조를 확립한 것이다. 축적된 데이터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향상된 AI는 다시 로봇의 성능과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그 결과 중국 기업이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을 빠르게 주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수를 먹는 사이 필요한 부품이 도착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모터, 감속기, 제어기 등 핵심 부품의 내재화와 공급망 속도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나아가 완성형 하드웨어 단품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유지·보수를 패키지로 묶어 매달 구독료를 받는 구독형 로봇 임대 서비스(RaaS·Robotics as a service)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에 성공하며 장기적인 수익성 구조까지 확보했다. 요약하면 중국은 정책(Policy)-자본(Capital)-공급망(Supply Chain)-데이터(Data)가 서로를 증폭시키는 ‘4대 플라이휠(Four Flywheels·4대 선순환 동력)’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과 미·중·일 삼국지

중국 로봇 굴기의 선봉에 선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전략적 치밀함이 더 도드라진다. 유니트리는 핵심 구동 부품을 자체 개발하고 저가 공급망을 극대화하여 휴머노이드 가격을 기존 시장가격의 수십 분의 일인 1만~2만달러 수준까지 낮추며 ‘가격 파괴’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연구 기관과 대학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애지봇 역시 ‘기가 데이터 팩토리’를 통해 대규모 실증 데이터를 축적하며 AI 성능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지형도는 이처럼 제조 생태계를 무기로 독주하는 중국에 맞서, 독보적인 AI 두뇌 설계 능력이 있는 미국과 산업용 정밀 부품 역량을 보유한 일본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삼국지 형국을 띠고 있다. 미국은 테슬라, 피겨AI 등이 주축이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자율주행 기반 연산 인프라를 결합하는 수직계열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엔비디아는 옴니버스와 아이작 플랫폼을 통해 로봇의 학습과 시뮬레이션을 지원하는 글로벌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한편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과 하모닉 드라이브 등 초정밀 감속기 분야에서 독점적인 가치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 로봇 산업 현실과 너트크래커 위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 고밀도 배터리 제조 역량 그리고 전국적인 초고속 통신 인프라라는 훌륭한 하드웨어적 무기를 쥐고 있다. 대기업 진영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대규모 로봇 전용 생산 공장 건설과 실증 허브 구축에 나섰고,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하며 휴머노이드 진입 전략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국내 로봇 기업 98%가 중소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산업 생태계의 허리가 취약하다. 독자적인 AI 파운데이션 모델이 부족하고, 초정밀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도 높아 고부가가치 창출 역량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중국의 가성비 공세와 미국의 소프트웨어 지배력 사이에서 너트크래커가 되지 않으려면, 개별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전체의 역량을 유기적으로 엮는 ‘K-로봇 발전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 핵심은 하드웨어 자립과 소프트웨어 협력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정밀 감속기, 관절 모터, 토크 센서 등 핵심 부품의 자립도를 높이고, 반도체·배터리 역량을 활용해 초저전력 AI 칩과 고에너지밀도 배터리, 전력관리시스템(PMS)을 확보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독자개발과 더불어 글로벌 AI 선도기업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최고 수준의 AI 모델을 한국형 하드웨어에 신속히 탑재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국제 표준 제정에 적극 참여해 휴머노이드 안전·성능 규격 선점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K-로봇 생태계 구축 위한 국가적 종합 전략

중국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한국의 기술 우위를 살릴 수 있는 고부가가치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반도체 클린룸, 배터리 조립 등 초정밀 제조 공정, 환자 이송, 재활 보조 등 의료, 헬스케어, 방산·재난 대응 특수 목적 로봇 등 세계 최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선점해야 한다. 또한 전 세계 연구 기관과 대학이 한국형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고도화된 AI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제공해 글로벌 연구 생태계를 선점하고 기술 협력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해 로봇 실증 환경을 조성하고, 민관 합동 로봇 펀드와 전략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과 투자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또 해외 유망 AI 기업과 핵심 부품 기술에 대한 전략적 M&A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학연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AI·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중소기업도 양질의 학습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우방국과 첨단 로봇 공급망 협력을 강화해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조달과 기술 보호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과거 디지털 혁명의 총아였던 스마트폰 시대의 최종 승자는 고성능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완벽히 묶어낸 플랫폼 기업과 국가였다. 앞으로의 경쟁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 경쟁력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처럼 휴머노이드 시대 역시 개별 기업의 독보적 성공이 아닌, 국가 차원의 총체적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 승부가 갈린다. 한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축적한 제조 혁신과 공급망 경쟁력을 K-로봇 생태계로 확장할 수 있다면 기술 패권 경쟁의 변방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지금은 추격할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